[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지난주에 전례 행렬시 선두에 서는 십자고상의 방향에 대해 다뤄 봤습니다.("전례 행렬시 십자가의 방향은?") 행렬을 할 때, 행렬의 진행 방향으로 향하는 십자고상을 통해 주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원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추가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사족으로 말씀드렸던 제대 위에 놓이는 십자가의 방향에 관해 한 독자께서 이의를 제기하셨습니다. 제대 위에 놓은 십자가는 항상 사제를 향해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 설명드리면, 제대 위에 놓이는 십자가는 통상 신자석을 향할 수도 있고 제단 위의 사제를 향할 수도 있습니다. 그 기준은 제단(신자석보다 계단 한두 단 정도 높이 있어 미사가 진행되는 것이 보이도록 만들어 놓은 장소. 제대는 제단의 중심에 있는 요소입니다)에 그리스도께서 매달린 십자가가 걸려 있느냐 여부입니다. 그 십자가가 있으면, 제대 위의 십자가는 주례 사제를 향하고, 신자들이 바라볼 십자가가 없다면 제대 위에 놓인 십자가는 신자들을 향하는 것이 일반적 배치입니다.

하지만 이의를 제기한 분이 알고 계신 내용이 원칙상 맞는 것인지를 확인해 보긴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전례학을 공부하신 선배 신부님께 질문을 했고 이야기를 나누던 과정에서 오히려 더 흥미로운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대(altar)에 관한 의미였습니다.

먼저 제대 위에 놓이는 십자가가 생겨난 배경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자리합니다. 이 공의회를 통해 전례가 혁명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라틴어 문화권과는 거리가 있고,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일천한 곳에서는 별로 고민해 볼 만한 주제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오랜 세월 그리스도교 문화 안에서 지내 온 유럽인들 일부에게 전례의 변화는 현대 교회를 떠나는 일까지 서슴지 않도록 만들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 자체를 부정했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전례, 즉 사제가 벽을 바라보고(신자들을 등지고) 라틴어로 경문을 읊던 그 전례를 유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가 오래된 흑백영화에서 보듯이 사제는 벽을 향하고, 신자들은 정장을 하고 나와 미사책을 들여다보는 동안 미사가 진행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제가 유일하게 회중을 향했던 순간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였습니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에는 사제와 회중이 벽면에 붙은 제대 앞에서 미사를 드렸고 사제는 회중을 등지고 있어야 했다.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그러므로 옛날에는 제단 위의 제대가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제대 위(제대와 떨어져서 위쪽에)로 십자고상이 걸려 있었고요. 그 십자가를 사제든 신자든 모두 함께 바라보는 모양새로 미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주님의 백성을 향해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획기적인 전례가 만들어졌습니다. 벽에 붙어 있던 제대가 떨어져 나와 사제와 회중 사이에 놓이게 되었고, 사제와 신자들은 제대를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며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었습니다.

제대의 배치가 이렇게 되다 보니, 신자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사제는 십자가를 등지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런 사연으로 제대 위에 작은 십자고상이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이것을 확인해 보느라 전례학자인 선배 신부님께 또 여쭤봤습니다. 제대 위에 놓이는 작은 십자고상이 놓이는 방향에 대해 지침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리고는 전혀 예상치 않은 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대 위에 작은 십자가는 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제대는 항상 거룩한 구조물이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상징'이며 '주님의 식탁'을 가리키는 감사와 공경의 중심이 되는 장소이기 때문(조학균 신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미사 이야기 II", 대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51쪽 참조)이라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누가 제대 가운데에 십자고상을 놓은 것인가?

전례학자 신부님은, 어느 누군가가 시작한 일이 거의 전례처럼 되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전에 십자가를 바라보며 미사 봉헌을 하던 습관이 유지되었던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로마미사경본 총지침" 117항을 보면, "제대 위나 둘레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는 십자가를 놓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제대 표면 위에 십자가를 두라는 의미가 아니라 제대에서 떨어진 위쪽이나 주변에 신자들이 바라볼 수 있는 십자고상(혹은 부활십자가)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리하자면, 축성받은 제대(성당이 지어지고 축성하는 예식 중에서 정점의 예식입니다)는 그 자체로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제대용 작은 십자가를 둘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사제는 그 의미를 기억해야 합니다. 반면 그 의미를 안다고 해도 신자들에게는 제대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이 보이는 십자가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미사가 거행될 때, 회중들을 향한 십자가가 필수적으로 배치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신자들과 함께 교회를 통해서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를 제대를 중심으로 하여 봉헌하고 있음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또한 제대는 주님과 나눈 최후의 만찬, 그리고 하늘나라의 잔치가 벌어지는 식탁이기도 합니다.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마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만들어 미리 천상잔치를 맛보게 만드는 장소입니다.(조학균 신부, 같은 책, 53쪽 참조)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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