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월 15일(연중 제2주일) 요한 1,29-34

요한 복음서는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세례자 요한을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그가 주님의 길을 곧게 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증언한다. 이제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뒤에 오고 있는 예수가 참으로 누구인지 점차적으로 알아볼 때가 왔다.

어린양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다만 몇 줄로 간결하게 세례자 요한이 간접적으로 증언한 것을 통해 그 사실을 알릴 뿐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처음으로 한 말이다. 요한 복음서에서 자주 그런 것처럼, 과월절의 양을 즉시 기억나게 하는 성서는 탈출기다.(탈출 12장) 과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본래의 해방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매달림으로써 양은 희생 제물로 바쳐질 것이다. 예수님이 최후만찬 때에 당신의 살을 내놓음으로써 양은 먹힐 것이다. 양의 이미지는 또한 주님의 종을 표현하고 있다.(이사 49,3) 주님의 종은 희생되는 양을 뜻한다.(이사 53,7) 이 희생의 양은 다른 이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을 깨끗하게 만들 것이다. 복음서 첫째 구절부터 요한 복음사가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명을 강조하고 있다.(요한 묵시록 5-6장의 승리의 양도 참조할 것) 바오로 역시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1코린 5,7)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 '성 세례자 요한', 존 린넬.(1867)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성령

그럼에도 세례자 요한은 두 번씩이나 이렇게 말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요한 1,31.33) 그리고 그가 주는 세례(“물로 주는”, 요한 1,33)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준비이며 징표일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푸는 체험을 계속하였고 마침내 성령이 예수에게 내리어 머무는 것을 볼 수 있었다.(요한 1,32) 그 성령은 창조 처음에 생겨난 물 위에 휘돌고 있는 하느님의 힘의 성령이다.(창세 1,1) (요한 복음서에서는 비둘기의 형상으로) 그리고 이와 똑같은 성령이 야훼의 종에게 내렸고 그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워 주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만든다.(이사 49,6) 이 예수님은 예언자들에 속하며 주님의 성령에 사로잡힌 분이다.

그렇지만 세례자 요한은 주님이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이 예수, 성령을 받는 이 종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분”(요한 1,33)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만들 때까지 예수님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성령의 힘을 입고 난 뒤에야 인류에게 풍부한 생명을 주게 될 분이다.

예수님을 알아본다는 것은 쉽거나 즉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알아봄은 점차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보다 깨어서 새로운 증언을 한다. 이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요한 복음서 전체는 예수님의 사명과 일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처럼 요한 사가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을 가리키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예수보다 앞서 있는 사람들이다.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또한 바오로가 코린토인들에게 예수님을 제시한 것처럼(1코린 1,1-3)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을 제시하고 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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