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월 1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루카 2,16-21

성탄 시기의 성서 구절들은 구원의 역사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또한 첫 번째 신앙인으로서 그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증언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청한다.

여성에게서 태어나다

바오로는 마리아에 관해 간결하고도 강력한 입장을 취한다.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갈라 4,4)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우리 신앙의 핵심 요소인 하느님의 아들이 지닌 인간적 조건을 강조한다. 이러한 조건으로 예수님은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고 역사의 심장부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신다. 인류의 역사적 흐름 속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들어와 마리아라고 하는 젊은 유대 처녀의 승낙을 얻고, 그의 육체를 통과한다.

베들레헴의 목자들은 어머니와 요셉 옆에서 말구유에 겸손하게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발견한다. 그들은 “아기에 관하여 주님께서 알려 주었기” 때문에(루카 2,17) 예수를 찾아 나섰고, 그리하여 새로운 탄생의 증인들이 되었다. 아기에 대한 이런 모든 반응들이 어머니에겐 중요했고, 그래서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또한 2,51) 일반적 용어인 “일들”은 하느님의 예언적인 말씀을 표현하며, 또한 사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느님께 대한 마리아의 신뢰는 그로 하여금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해 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사명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

▲ 마리아라고 하는 젊은 유대 처녀의 승낙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그의 육체를 통과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믿는다는 것은 여정이며, 더 깊고 철저한 탐색의 과정이다. 마리아 역시 자신의 여정을 가야 했으며, 그래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그의 가족 친지들이 살고 있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마음속에 간직한 것이다. 이처럼 자궁 속의 아들과 육체적으로 가까우면서 한편으로 예수님이 성취해야 할 사명에 관해서도 계속 깊어지는 친교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역시 변화가 다양한 신앙의 과정, 빛과 어둠의 시기를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러나 마리아의 증언은 우리가 우리의 희망이신 하느님께 이르는 길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 주고 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예수님은 “율법 아래”(갈라 4,4) 태어나시고, 여드레 후 그분이 유대 민족에 속한다는 할례를 받는다. 그리고 또한 “구원하는 존재” 라는 의미의 예수를 이름으로 받는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압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힘을 가져다주는 존재다.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준다. 그리고 요한과 바오로에게 자녀가 된다는 것은 자유롭게 되는 것과 같은 의미다.(갈라 4,6-7)

마리아 덕분에, 나자렛 예수님의 인간적인 얼굴 모습을 통하여 주님은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6) 인간이 됨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은 모든 인간의 얼굴을 하느님의 현존과 도래의 표현으로 변화시킨다.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은 멕시코 푸에블라 총회에서 가난한 이들의 고통 받는 얼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하도록 초대하였다. 그리고 산토도밍고 총회에서도 “굶주림에 의해 손상된 모습”과 다른 학대, 착취들에 의해 일그러진 모습들을 길게 나열하면서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보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가 복음에 더 충실하기를 요구하고, 질문을 던지기 위하여 현존하고 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김으로써 이 세계의 비천하고, 소외된 이들은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계시(공현)가 될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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