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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나무뿌리에 닿아 있는 도끼[구티에레스 신부] 12월 4일(대림 제2주일) 마태 3,1-12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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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1  14: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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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으로 들어오시는 주님께 대한 희망을 새롭게 한다.

주님의 길들

마태오, 마르코 그리고 루카에 의하면 복음서, 기쁜 소식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를 처음으로 선포한다. 그는 이 기쁜 소식을 광야에서 말하는데, 이곳은 우리의 신앙이 시험되고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자리다. 유대 백성들은 약속된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를 건너도록 초대되었다. 그리고 우리들도 지금 초대를 받고 있다. 이것은 태도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회심 없이 그리스도를 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례는 이러한 변화의 표징이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을 수 없다. 세례 요한은 소위 종교인들의 외모와 특권에도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마태 3,7) 요한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권력이 강한 그들에게서 변화의 의지를 발견하지 못한다. 주님이 후에 사용하는 그런 어조로 요한은 그가 추구하는 변화는 어떤 공식적이고 외적인 예식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8)고 요구한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행동에 근거하여 정해진다.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의 뿌리에는 이미 도끼가 닿아 있다. 주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알곡인가 쭉정인가,(마태 3,12) 받아들임인가 거부인가가 있을 뿐이지 중간 길은 없다. 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음식을 주었고, 그들은 나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고.(마태 25,31-45) 요한은 그리스도보다 앞서 오고 있다. 그러나 요한보다 뒤에 오는 우리들 역시 무언가 앞서 뛰는 사람의 징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다스림을 증언한다는 것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웃을 환영하는 우리의 태도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환영하는 조건이요 표현이다.(로마 15,7)

   
▲ 하느님나라는 깊은 평화와 조화의 세계로 표현된다. 시골 풍경은 이러한 선포를 더욱더 강화시켜 준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의로움으로 판단하기

세례 요한에 의해 인용되는 이사야는 우리에게 메시아가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이사 11,4)고 상기시킨다. 정의의 실천은 세례 요한의 복음 선포에 있어 중심적인 부분이며, 그 때문에 세례 요한은 당시의 권력가들의 반대를 받았고 마침내 목숨까지 바쳤다. 예언자에 의하면 하느님나라는 깊은 평화와 조화의 세계로 표현된다. 시골 풍경에서 뽑은 아름다운 모습들은 이러한 선포를 더욱더 강화시켜 준다.(이사 11,6-9) 그러나 그 결과로 정의의 건설이 없어서는 안 될 조건으로 부상된다.

남미 대륙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이해하여 왔다. 평화를 위한 그들의 투쟁은 정의를 위한 싸움을 포함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쳤다. 최근에 우리는 고통과 공포 속에 살인을 겪었다. 즉 엘살바도르에서 6명의 예수회 사제들과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던 두 사람(모녀)이 살해된 것이다. 그들의 결단은 분명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원했고 살해된 사람들 중 한 사람인 이냐시오 엘라쿠리아는 백성들을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평화를 얻기 위하여 엄청난 일을 하였다. 그러나 로메로 대주교를 죽였던 사람들은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목숨을 바친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예수의 길을 예비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하여 우리가 회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학대학 졸업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 수품 뒤에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해방신학의 선구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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