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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주님의 빛 속에서 걷기[구티에레스 신부] 11월 27일(대림 제1주일) 마태 24,37-44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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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4  11: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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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매주 목요일 '해방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의 강론이 전례력에 따른 가, 나, 다해 순으로 3년간 연재됩니다. 2017년은 '가'해입니다. 강론 번역본을 제공해 주신 '참사람되어'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대림 시기는 역사 속에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기다리면서 깨어 있는 시기다. 회심으로 우리는 우리들 사이에 태어나는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깨어 있기

대림시기는 희망을 강화하면서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지만 동시에 생명, 역사, 희망과 약속의 하느님께 대한 태도를 더욱 분명하게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는 위대한 대림이며 미래를 향하여 가는 여정이다. 그것은 하느님과 그분의 다스림이 우리 역사에 육화하게 되는 미래다.

바오로는 폭력, 거짓 그리고 절망을 가져오는 갑옷이 아니라 평화를 지켜 주고 정의를 세워 주며 사람들 사이에 연대를 만들어 주는 갑옷을,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한다.(로마 13,12) 이 갑옷의 얼굴과 모형은 세상의 빛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바오로의 초대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하는 것이다.(로마 13,14)

그분의 성령을 입을 때에 우리는 깨어나고 그분의 오심을 준비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와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마태 24,44) 특히 당신이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날 때에 오신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할 요구는(마태 24,42) 해방에 대한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백성들의 가장 깊은 희망을 지지하고 강화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하느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 속에 개입하는 것이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하느님은 오셔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희망은 모호하지만 가치 있는 것이다. 이 희망은 우리들의 행동에 있는 일치되지 않은 부분들, 우리의 개인 생활에서 보이는 거짓되고 공정하지 않은 부분들을 알아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며 생명과 정의를 옹호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서 희망적인 것이 무엇인가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 '대립의 극치 : 꽃과 총검', 마르크 리부, 1967년 미국 국방부 앞에서 고등학생 얀 로즈 캐스미어가 꽃을 들고 군인들 앞에 서 있다.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칼로부터 쟁기로

오늘의 전례는 이사야서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운 인류의 유토피아를 상기시켜 준다.(또한 미카 4,1-3 참조) 말씀은 주님의 현존의 자리와 그 상징인 집과 성전을 말하고 있다.(이사 2,2-3) 주님은 역사의 중심에서 백성들의 길을 이끌고 힘을 주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어느 방향으로 우리는 가고 있는가? 바라건대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는 갈망, 즉 모든 사람을 위한 평화와 연대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당황스러운 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라”는 말에 익숙해 있으며 이런 길은 우리의 기대와 맞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하느님을 국가들 사이의 중재자요 심판관으로 선택한다면, 그 전제조건은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는 것”(이사 2,4)이다. 대신 정치와 경제 분야에 화해를 가져오는 프로그램이 “칼을 쳐서 낫으로 만드는” 것임을 환기시키며 제시된다. 우리는 엄청난 자원을 전쟁의 산업, 파괴, 그리고 죽음에 쓰고 있다. 이사야서는 전적인 무장해제를 제시한다. 이 무장해제는 불의한 폭력이 시작되는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전쟁을 준비하는 구조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현명하고 밝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환호한다.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 한 국가나 국제적 차원에서 특히 우리의 어두운 시대에 이런 표현은 너무나 중요하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의 리마 출생. 의학대학 졸업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 수품 뒤에 리마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해방신학의 선구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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