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노동절 기념 토론회 -토론 4]

     백정석 씨는 광주대교구청에서 16년동안 직원으로 일했으며, 노동조합에서 사무장으로 일하다 노동조합이 해산된 뒤에는 교구청을 그만 두고 전남 장흥에 귀농하여 진짜 농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쁜 농번기에 짬을 낼 수 없어 2003년에 <경향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수정해서 토론문으로 보내왔다. -편집자

교회 안에서 일한다는 자부심

▲ 백정석 (전 광주대교구청 노동조합 사무장)

교구청 직원이 된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내게 비춰진 교회는, ‘함평 고구마 사건’을 비롯하여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 노동사목, 도시빈민사목 등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권익을 위하여 애쓰는 단체였기 때문이다. 특히 5․18 광주민중항쟁 기간과 잔상규명 운동 등, 우리 나라의 민주화 과정에서 보여준 교회는 예언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너무도 가슴 벅찬 존재였다. 그 시절에 교회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고 헌신 봉사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적어도 그 당시까지 교회에서 일하며 축재를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동참한다는 일념 이외에 다른 뜻이 있을 수 없었다.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사람들이야 경제적으로 힘들겠지만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성직자들은 더 많이 주어야 하는데 재정사정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겼고, 직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죄송해 하며 서로 아끼고 생각하는 공동체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도 거세게 밀려드는 자본주의, 물신주의, 신자유주의의 물결에서 예외 지역일 수 없었다. 가족적인 관계는 서서히 무너져 갔다. “직원들의 능력이 이러쿵저러쿵, 구조조정이 어쩌고저쩌고, 실직자들이 많아 일할 사람이 많다.”는 등 서서히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 내몰았다. 이런 현상은 특정 교구만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대체로 그런 분위기로 변해갔다. 직원들은 교구청 사제들에 대하여 전과 같은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그 동안 많게는 수십 년, 적게는 수년 동안 박봉에도 헌신적으로 일한 직원들에 대한 대접은 좌절과 상처로 얼룩지기 일쑤였다.

변하는 세상과 변하지 않는 교회

교회의 직원은 국가의 공무원과 같이 교회의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국리민복을 위하여 일한다. 이들은 국가에서 채용하여 체계적인 인사관리를 통하여 대국민 서비스의 질과 양을 높여가고 있으며 국가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활용된다. 국가가 발전할수록 애국심에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는 더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려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사기업과 경쟁한다. 교회도 신자나 사회에 대하여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좋은 인재를 확보하여야 하고 직원들을 끊임없이 양성하여야 한다.

사실 교회 직원들에게 공무원 수준의 대우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국가는 공무원의 대우를 중견 사기업 수준으로 맞춰가고 있다. 교회가 더욱 발전하려면 인재 확보와 양성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이 시기상조일까?

교회 지도자들의 전략적 사고가 요청된다. 신앙심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한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성가정을 이루고자 자식을 낳아 기르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상당히 많은 재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말 달라졌다. 교회 안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 동안 교회가 밖을 향하여 외쳤던 말들이 이제는 교회를 재는 잣대가 되었다. 불과 십여 년 전에 교회의 이름으로 인권, 민주화, 노동해방을 외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앞장섰던 교회의 직원들이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기 시작했다.

세상은 변했는데 자신들의 처지는 오히려 훨씬 초라해졌고 가난과 까맣게 탄 가슴만 남았다. 이런 현실인식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신자와 직원 사이

교구청 직원들의 직장은 교회이다. 그들은 교회에 고용된 사람들로서 그에 따르는 의무와 권리가 있다.
임금이나 복지에 대한 직원들의 요구에 교회는 “여러분은 봉사자”라는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그러면서 근무자세나 생활태도에서는 최고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설사 직접 요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직원 스스로 조심스럽게 처신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은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사는 데서 오는 말 못한 애로를 안고 살아간다.

쇄신은 곧 나의 회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개인의 윤리문제는 접어둔다 할지라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사고방식이나 행위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죄를 짓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을 바르게 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다.

하느님께 받은 자기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당한다면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것이 노동자 의식을 갖는 것이고, 나와 상대방 서로가 바로 서는 단초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표현해도 직원들은 교회에 고용된 노동자다. 자원봉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지도부나 직원 모두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노동이나 노동자란 말이 거북하다면 근로자라도 좋다.

일꾼들이 신자라고 해서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정당한 보수보다는 봉사를 먼저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잘 살펴볼 일이다. 교회는 그것을 죄악이라고 가르쳐왔다. 일터가 교회이고 직원이 신자이기 때문에 겪는 고충도 헤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다.

2001년 7월 교회의 사회적 소명에 부응하고 교회의 내적 쇄신과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한 천광노(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노동조합)가 2003년 11월 해산총회를 하지않으면 안될 상황으로 이끈 광주대교구의 지도부의 행위는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도 복음적이지도 더군다나 합법적이지도 않다. 노조에 참여한 직원들이 최고위층의 술안주로 회자되었단 소식이 요즘도 들려온다.

그렇게도 옆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어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겠다는 건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교회의 모습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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