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노동절 기념 토론회 발제-2]

▲ 권오광 (전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회장, 현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
2008년10월 26일부터 천막농성에 들어간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의 간호부 파견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장기간 투쟁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병원측에 대화를 줄곧 요청해 왔지만 번번이 병원측의 거부로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로 인한 장기간 투쟁뿐만 아니라, 인천성모병원도 2005년 1월 영양과 조합원 집단정리해고 이후 현재까지 4년간 노동조합 탄압을 진행하다가 2009년 1월 1일부로 노동조합과 맺은 단체협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하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반발을 사면서 이로 인해 가톨릭계 사업장의 노사관계가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톨릭계 사업장의 노사관계가 세상의 주목을 받아

흔히 가톨릭교회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하면서 봉사적 차원에서 일해야 된다는 의식이 상식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의 이면에는 많은 노동자들의 불만과 문제의식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80년도 중반 이후 가톨릭교회가 더욱 보수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교회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교회의 선교적 목적에 대한 의미부여가 되지 못하면서 관심밖으로 벗어나고 말았다.

심지어 신자유주의의 정책에 조응하여 교회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문제와 노동조건은 갈수록 열악해지면서 특히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경우 조합원들의 노조탈퇴 종용에 이어 노조의 무력화 정책이 전개되면서 노조의 힘이 많이 약화되어 있다.

2009년 4월 26일 노동자 주일에, 천주교 인천교구 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라는 제목으로 ‘2009년 노동자 주일 담화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현실을 진단하고 있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희망을 나누기 위한 노동자 주일이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노동의 중요성과 노동자의 존엄성을 강조하였고, 사회교리로 가르쳐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노동의 조건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노동에 대한 중요성 보다는 불로소득에 국민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기에 노동은 그 가치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도 그 원인의 하나가 될 수 있음을 걱정합니다.”

이어서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가톨릭교회 사회교리는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교도권은 다양한 직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옹호하는 노동조합의 근본적인 역할을 인정해왔습니다.(사회교리305항) 이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웃을 어떠한 예외도 없이 또 하나의 자신으로 여겨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웃의 생활을 고려하여 그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수단들을 보살펴야 한다(사목헌장26항)”는 인간존엄성에 대한 존중의 원칙에 의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특히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대 기업이나 많은 보수를 받고 있는 직장의 노동자들의 권익보다 중소기업의 노동자들 더욱이 영세기업의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노사는 상생하는 지혜를 모아야 하며 서로 대립보다는 양보와 사랑이 앞서야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벼랑으로 내몰리는 이 시대에, 우리는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마태22,39)”는 예수님의 첫째가는 계명에 대한 말씀을 다시금 떠올려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이 시대에도 인간 공동체를 생명의 길로 들어서게 할 것입니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노동하는 인간」20항에서 “노동자들의 자기보호를 위한 필요성과 더불어 다른 또 하나의 권리 즉 단결권을 갖는다. 노동조합들은 노동자들의 개별작업에 따라 참으로 정당한 권리와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을 대변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시면서 노조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노동조합은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을 대변하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결성초기부터 병원측의 몰이해와 방해공작으로 파업 등을 둘러싼 격심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병원 등 대규모사업장에서는 노조가 건설되어 유지될 수 있었지만 가톨릭신문사나 생활성서사 등 언론출판 분야에서는 수차례에 걸친 노조결성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하였다. 더구나 평화방송 노조는 어렵사리 결성된 노조마저 서울대교구 재단측에서 공권력을 동원하여 해체시켜 버렸다. 이러한 모습은 2002년 강남성모병원에 공권력을 요청하여 파업현장에 있던 노조원들을 해산시키는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는 노조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적 가르침을 통하여 노조가 “정당한 임금을 위한 권리”(새로운 사태 32항, 노동하는 인간 19항)를 위하여 “최후 수단으로서의 파업의 권리, 파업에 참여했다고 해서 어떠한 개인적인 처벌이나 규제를 받아서는 안된다”(사목헌장 68항, 새로운 사태 56항)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보다 먼저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숙고하여 노조와 원만한 관계를 갖기 위해 교회와 재단측이 노력할 때, 이를 통하여 교회가 좀 더 복음적 신실성을 증거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특히 가톨릭계 사업장(가톨릭중앙의료원 강남성모병원, 인천성모병원 등)의 노사갈등과 대립이 장기적으로 치달으면서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교회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1989년 ‘전국교원노동조합’결성이후 가톨릭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만 30명이나 되는 교사가 해직되었다. 그 중 소명여고에서는 5명의 교사를 직권면직 형식으로 해직시켰는데 당시 교장수녀의 말에 의하면 해직시키지 않으면 사학보조금 지원을 중단한다는 교육당국의 압력과 재단 이사장 승인취소 압력 때문에 취해진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한다.

가톨릭중앙의료원, 목포가톨릭병원, 부천성가병원 등의 노조탄압은 물론 이전에 대전성모병원, 평화방송 노조무력화 등등을 볼 때 가톨릭 내부 노사관계를 이제는 감추지 말고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토론할 때가 되었다.

평화방송의 경우, 노조가 존재할 때에는 ‘단일호봉제’에 합의하여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체제였으나, 노조가 공권력의 도움으로 해체된 이후에는 ’만기호봉제‘로 전환시켜서 직급이 오르지 않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성실히 근무하더라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 불이익을 강요받게 되었다. 이는 교회가 일반 사업주들 처럼 “더 많은 이윤을 위한 더 적은 임금지급”이라는 자본주의적 상식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경영에 있어서도 신부와 수녀가 주요 보직에 낙하산 인사로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문제라든지, 평화방송과 신문의 편집권 독립과 노사공정한 보도가 되고있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내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대구 파티마병원, 평화방송, 그리고 가톨릭중앙의료원 강남성모병원의 경우 공권력을 요청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에서 재산상의 이해관계에 있어서 정부와 병원측이 얼마나 공감하고 있으며, 일치된 행동을 유발하고 있는 지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파업으로 인하여 병원측이 손해를 보았다고 하여 15억원의 노동자 임금과 조합비를 가압류하고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자본가의 모습보다 한술 더 뜨는 모습이지 않은가?

교회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 교회는 결코 세상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교회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 교회는 복음의 신실성을 증거할 수 없다. 교회는 가난을 통하여 어떻게 가난이 극복되는지 보여주어야 하며, 무력함으로써 어떻게 권력을 이길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적 기준은 권력의 획득이나 가치증식을 통한 교회재산의 확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은 사랑과 뜨거운 애정으로 노동자들에게 정의와 공평을 실현하는데 있다.

교회의 전통적인 호교론적 권위주의가 청산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빗대어 말하면서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 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너희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마태복음 23장 1-12절)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권위주의가 노조를 실제적인 동반자로 인정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 같다. 가령 본당에서나, 모든 선교단체에서나 항상 윗사람으로 대접받고 평신도들에게 권위있는 존재로 인정받으며, 교회안에서 입법, 사법, 행정의 전권을 가진 사람으로 행세하는 성직자의 경우에 노조가 건설되어 평신도들이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자고 하면 쉽게 받아 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노사협상이 때로는 자존심 싸움으로 부딪히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계 사업장 안에서 노조가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을 때, 이런 도전속에서 교회의 성직자 중심주의가 쇄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병원노동자들이 문제삼는 것은 수녀님들의 낙하산 인사이다. 중요한 보직이나 감독직에 해당되는 것은 보통 수녀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승진의 기회가 제한된다는 점이다. 이역시 중요한 직책은 평신도 격인 노동자들에게 믿고 맡길 수 없다거나, 혹은 비신자에게 맡길 수 없다는 성직자, 수도자 권위주의의 소산이다.

또한 노조에서 인사권의 전횡에 대해 항의하면 이를 경영권에 대한 도전이며, 교도권에 대한 도전으로 문제삼으며 징계하거나 노조의 견해를 묵살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하는 인간」14항은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에 있어서 전문가들과 교회의 최고 교도권에 의해 제기된 많은 제안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즉 노동자들이 기업경영 또는 이윤에 참가하거나 소위 노동에 대한 주권 소유 등 노동수단의 공동소유를 위한 제안들이다..... 오로지 사회의 주체적인 특성이 보장될 때 달리 말해서 각자가 자신의 노동을 근거로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노동하는 커다란 일터에서 자신도 하나의 소유자라고 온전히 생각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사회화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경영권 조차도 기업주들의 독점적 영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교회측은 현재의 직권중재제도 아래서는 누구라도 불성실교섭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비책은 병원경영에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권위주의를 제거하는 것이다.



교회안에서의 노사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노사간에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인 힘을 앞세워 자신들의 불법 부당한 주장을 관철하려는 노동조합의 잘못된 관행으로 인하여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였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불법파업을 통해 환자들을 기만하고, 국민불편을 가중하며, 법질서를 무시한 그 동안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병원 경영을 악화시키고, 한국 의료발전을 저해하며, 국민보건의 백년 대계를 위태롭게 하는 불법파업을 즉각 중단하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올바른 노사문화 정착에 적극 동참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 2002년 10월6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


이는 현재도 교회가 노동조합을 바라보고 있는 관점을 나타내고 있다. 즉 노조는 법질서를 외면하고 환자를 볼모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키 위해 불법 부당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가 결코 동반자로서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노조를 사업장의 이윤에 부합되게 잘 길들여진 조직으로 만들거나 무력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하는 인간」22항에서는 “노동조합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결코 없어서는 안될 권리”라고 말한다. 이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며 결국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요인“이 되며, 나아가서는 ”정의투쟁의 대변자“(노동하는 인간 20항)라고 말한다. 더구나 이 사회에서는 아직도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인 수단으로서 노동조합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때 교회 내 사업장의 노조를 보호하는 것은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의 하나로 모아야 한다.

따라서 ‘사회정의’와 ‘올바른 노사문화’에 대해 새롭게 재인식되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회의 기본적인 의료사업의 목적은 가난하고 병든 이를 돕는 것에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하에서 다른 거대병원과 똑같은 경영방식으로 사업을 한다면 이때부터 교회는 ‘의료봉사’라는 명목아래 밑지지 않는 장사의 논리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핑계로 거대한 사업을 하는 집단’으로 비추게 되고 스스로 가난으로부터는 무관심하게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노사가 모두 주체로 함께 해서 나아갈 때 병원경영은 더욱 발전될 수 있다고 본다면 사업장의 노조뿐 만 아니라 상급조직인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도 같은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노동현장 복음화가 교회쇄신 활동이다

가톨릭계 사업장은 사회적 노동문제가 교회 안에서 응집되어 있는 현장이다. 그리고 교회의 복음에 대한 신실성과 사회적 가르침에 대한 충실성이 단련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톨릭계 사업장을 복음화시키는 작업은 곧 사회의 일부분인 노동현장을 복음화시키는 사회선교인 동시에 교회를 복음화시키는 교회쇄신 활동이 된다.

그러므로 노조가 이교도적이고 이기적인 집단이 아니라, 교회의 복음선교 사명의 정당한 동반자로 인식된다면, 가톨릭계 사업장은 수도성직자와 평신도 노동자들이 합심하여 교회성원들의 선교활동을 지원하고, 그 지도자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으며, 그 힘으로 세상에 대한 봉사에 매진하려는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봉사’라는 미명아래 강요당해왔던 어려운 노동조건에 대한 환멸과 그 집행자인 수도성직자들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고 그야말로 복음에 기초한 공동체적 환경이 마련될 것이다. 진정한 봉사란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전해진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교회에도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되어야

앞에서 교회가 노사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살펴보았지만, 사실 교회안에서 이미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들도 한편에서는 전개되고 있다.

2000년 인천교구 대의원회의(시노드)에서는 교구내의 종사자(노동자)들이 교회운영에 참여하는 평신도로서 자부심과 사목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 보다는 일정하게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 어려움을 느끼고 교회종사자(노동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교회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다는 문제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하여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대의원 총회를 거쳐실천요강으로 통과된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본당종사자의 경우 종사자들이 직장으로서의 안정성과 전문적인 역량을 쌀을 수 있도록 임금과 근로조건에 있어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고 고용의 안정과 노동관계법의 적용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본당은 이들을 사목의 협력자로 여겨야 하며 업무만족을 높여 본당공동체 운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본당 종사자들의 인사와 고용, 임금, 복지 등에 대한 관리는 교구에서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구종사자의 경우, 교구는 이들의 근무의욕과 업무만족도를 높여 직원들의 전문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교구는 이들의 고용형태에 있어 장기적으로는 정규직의 절대적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유도하여야 한다. 또한 교구는 이들의 근무조건, 복지후생, 임금수준의 향상과 노동관계법 준수에 대한 기준마련과 이를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며, 이들의 의사를 올바로 반영하는 공식적인 통로를 만들기 위해 직원협의회와 같은 자주적인 모임이 만들어지는데 협력하고 제도화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이처럼 교회가 교회내의 노동자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내용이 실현되려면 교회가 먼저 자기변화를 위한 노력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천주교 인천교구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님의‘2009년 노동자 주일 담화문’ 입장으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교회는 노동현장에서 소외된 이들과 힘든 조건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 및 이주노동자에 대해 관심 가져주시기를 교우들에게 요청합니다. 정부도 일방적 노동정책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노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노동자를 위한 정책수립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실업난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일할 권리와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노동자,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에 대하여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생활의 기반이 되는 이러한 문제를 외면할 때 사회는 불안해지고 사회의 악한 고리는 부메랑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노동문제에 관심과 해결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존귀함을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뜻에 부합한 일입니다. 인천교구는 그간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노동자주일인 오늘, 노동의 중요성과 노동자의 존엄성을 되새기며 우리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