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노동절 기념 토론회 발제-1]

[ 발제 요약문]

▲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신수동성당)

가톨릭교회는 1891년 <노동헌장>을 반포한 뒤에 사회교리를 계속 발전시켜 왔지만 이 문헌에 대한 과장된 평가도 있다. <노동헌장>이 나오게 된 배경은 그다지 선도적이거나 예언자적이지 못했고 다분히 현실대응 차원이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초기자본주의 축적 과정에서 빚어진 노동자들의 참상을 경험하며 맑스의 종교비판과 사회주의 운동이 번져가면서, 이러한 계급갈등과 교회이탈을 막으려는 대응 차원에서 교회가 반포된 문헌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교리, 예언적이기보다 현실대응적 결과다

그러나 '사회교리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인 <사목헌장>에 '헌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권위를 부여한 것은 큰 발전이다. 늘 변하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문헌을 변치 않는 진리처럼 '헌장'으로 선포하기로 선택한 것은 개혁적인 것이다. 한편 이 문헌에선 "세상 안에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밝히면서, 불균형한 사회문제의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기 보다 먼저 '인간'에게서 찾았다는 점에서 한계 역시 지닌다. 결국 사회문제 해결을 인간 개인의 문제로 보고, 인간의 선택의 문제라고 소극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편 김수환 추기경은 일전에 "교회는 세상질서 안에서 세상을 위해 있지만 세상에 갇혀 있지 않다"라는 말을 했는데, 교회는 스스로 자신을 영적 공동체와 가시적 공동체의 성격을 모두 지닌다고 봄으로써, 자칫 필요에 따라 사회문제에 개입하고 책임질 수도 있고, 회피할 수도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인천성모병원 문제가 생겼을 때 병원장 신부가 "난 사제라서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노조측과 교섭하고 대화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는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노동력을 상품화하면 안 돼

이제 노동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관련해서 <사목헌장> 67항과 68항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교회는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성을 강조한다. 이는 노동이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인간은 노동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계승하는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력이 상품화되는 것은 인간이 상품화되는 것이며, 우리시대의 노동자가 거래대상이 되어 단지 생존하기 위해 노동에 목을 매야 하는 상태는 노예노동으로 전락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자기 노동을 통해 '품위 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한 보수'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기업이 일한만큼 임금을 주고 이윤을 얻은 만큼 보수를 지불하려는 태도와 상반된다고 말했다. 결국 교회는 '인간을 위한 경제'를 추구한다.

 

[박동호 신부,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다 ]

지난 5월 6일 정동프란치스코회관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참석자들의 질문이 아무래도 교회 관련 사업장 문제라서 박동호 신부에게 집중되었다. 박동호 신부는 교회 내 사업장 노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노사 간에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교회 안에 노사 간에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기구가 필요하다

박 신부는 노동자와 사용자측은 힘의 관계에 있어서 동등하지 않다고 전제하고, 통상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등 정치공동체의 개입을 요청하는 경우와 방임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노사정위원회 형식이 있다고 하면서, 이런 구조는 노사가 상생하려는 관계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대립관계에 있을 때 정치공동체의 역할이 정략적이어서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말한다.

사회교리의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자율성을 갖고 있으면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데, 이를테면 국가인권위 같은 경우다. 박 신부는 교회내의 사업장의 갈등하고 있는 노사 양측에 접근성을 갖고 중재하는 전문협상가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전문협상가는 독립성과 자율성,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하며, 우선 주교회의 등에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교회, 이윤추구 사회에서 사업체 계속해야 하나?

한편 가톨릭교회가 기업의 역할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답변이 있었다. 박 신부에 따르면, "근대국가가 국민의 복지를 보호해야 하는 책무가 자리잡기 전까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살핌이랄까. 사회복지에 대한 것이 교회의 몫, 종교의 몫이었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준다. 이제 그런 몫을 국가가 대신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책무는 교육, 의료 분야에 교회가 참여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주의 국가는 국가가 담당하고 자본주의는 절충적인 공공재가 사기업에 넘어가 효율성과 전문성을 축적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성과 효율성이 부족한 교회가 이런 사업을 계속 펼칠만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한다.

교육사업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나 천주교 선교사들에 의해 출발했는데, "시대적인 요청이었고 시대적인 응답이었다고 생각하나 현대국가에서는 이윤 혹은 공공성을 절충한 형태의 사기업이나 국가의 몫으로 넘어갔다"고 말하면서, 박 신부는 "교회가 병원 등 기업활동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성직자 수도사 모두 상당히 고민이 많은 편"이라고 말한다. 이윤추구 사회에서 교회가 여기에 참여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사제는 봉사적 직무상 현실문제에 참여해야 한다

이 문제에서 곧장 가톨릭계 병원에 근무하는 사제들을 성직자로 보아야 하는지 사용자로 보아야 하는지 논란이 제기되었다. 이는 성직자의 신원에 관한 것인데, "성직자는 서품을 받아서 그 신원으로 거룩한 것인가, 아니면 사제의 직무 때문에 거룩한 것이냐"하는 문제다. 결국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좀더 진보적 견해를 대변하는 후자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선 여전히 전자의 입장에 서있다고 한다.  

박동호 신부는 "교회의 복음선포 사명과 봉사적 직분이라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성직자도 이해 당사자로 노사문제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이나 북미교회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유럽교회의 사업장은 형식적으로는 수도회가 운영하는 것처럼 돼 있지만, 성직자 숫자도 많지 않고 사회발전에 맞춰 나가기 위해 전문경영인들이 운영을 실제로 도맡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사회문제를 다루는데 충분히 경험하고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교회가 그저 사회변화에 부응하다 보니 사회변화에 몸을 맡기고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한다. 질적 역량이 미흡하다"고 말한다.

반대자도 존중하는 풍토 생겨야

이어 박 신부는 "최근에 인천성모병원 사태를 보면서 <사목헌장>의 내용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하면서, 사회교리에선 공동체를 건강하게 가꾸어 가기 위한 원칙으로 줄곧 '참여, 연대, 사회정의' 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중엔 '반대자에 대한 존경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반대자들의 의견도 존중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면서 "이 자리에 사제든 수도자든 사용자라고 여길만한 병원측에서 나와서 제 입장을 얘기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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