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올랜도 참사의 희생자 49명의 영령을 위로하고 명복을 비는 추모의 물결이 한물 지나가면서 비극의 충격에 가려졌던 문제의 핵심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총기관리 문제다

물론 처음에는 오마르 마틴의 범행 동기를 찾는 데 집중했다. 마틴의 단독행동인지 이슬람국가(IS)의 조종이 있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마틴의 아버지 세디크는 마틴이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마틴이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나이트클럽 펄스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데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한 것을 전연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와 가까운 친구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보다는 마틴의 과격한 이슬람주의적 사고가 더 강하게 작용한 것 같다는 것이 그의 행동을 관찰한 다수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자기 자신의 결정에 의한 것이지 IS와 접촉한 결과는 아니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자생적 테러리스트라는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러한 의견들을 대표해서 오마르 마틴의 행동은 IS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자생적 테러행위라고 공식 규정했다.

동기를 알아내는 것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아무나 총기를 자유롭게 구입하고 휴대할 수 있게 해서 자기가 원할 때 사람을 살상할 수 있게 하는 관리 문제가 사실은 더 중요했다. 총기 규제는 이슬람국가 테러와는 별도로 미국이 오래전부터 안고 있는 심각한 정치사회 문제였다.

총기 관리문제는 현재 미국이 안고 있는 중요한 문제다.

이번 참사에서 설사 마틴이 IS의 지시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가 총기를 쉽게 살 수 없었으면 어떻게 49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이고 53명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었겠는가? 마틴은 올랜도 펄스 나이트클럽 고객들을 살해하는 데 쓴 여러 자루의 총기를 바로 1주일 전에 샀다. 총기를 쉽게 구입할 수 있으니까 원하는 순간에 자신의 분노를 대형 테러로 확대시킬 수 있었고 그래서 자생적 테러가 가능했던 것 아닌가.

한국 신문에도 보도된 것이지만 미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참사가 일어나고 있다. 큰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은 총기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하지만 총기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 감시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으면 누구나 원하는 총기를 살 수 있으니까. <워싱턴 포스트>가 12일 재무부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의하면 2013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총기 수가 3억 5700만 정에 이르고 있다. 미국 인구 3억 1700만 명보다 4000만 정이 더 많다. 총기보유 수는 1996년 2억 4200만에서 2000년엔 2억 5000만 정, 2009년에는 3억 1000만 정으로 해가 갈수록 시민이 보유하는 총기가 늘고 있다.

▲ 2012년 미국 시민들이 NRA에 합리적인 총기 규제 법안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flickr.com)

인구와 총기사건을 비교해 보면 미국 인구가 세계 인구의 5퍼센트인데 지난 수십 년간 세계에서 일어난 4명 이상이 살해된 총격사건 통계를 보면 31퍼센트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그만큼 미국에서 총기에 의한 참사가 많이 나고 있다는 증거다. 2013년 미국에서 총기로 죽은 사람이 1만 2253명이나 된다.

총기 보유가 많다 보니 총기사건이 잦을 수밖에 없고 총기사건이 잦다 보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사고가 하나의 의식으로 굳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총기를 구입하는 사람이 늘고 총기 남용으로 인한 대형사고가 늘어나게 되고 총기를 규제하지 않으면 대형 총격사건이 자주 발생해서 사회문제 정치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여러 차례 이런 사건들이 터졌었다. 당연히 총기 규제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면 총기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진 효과가 있었나? 없었다. 총기규제에 관한 한 대통령 말도 안 통하는 것이 지금 미국의 현실이다. 대형 총격 사건이 2-3년 걸러 일어난다. 그때마다 대통령이 총기 구입규제를 역설하지만 효과가 없다. 총기규제 반대하는 공화당이 의회에서 벽을 쌓기 때문이다. 때로는 민주당도 가세한다. 총기 규제를 입법화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누가 규제반대를 선도하는가? 그게 악명 높은 전국총기협회(NRA)다. NRA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조직으로 유명하다. 회원은 400만 명 내외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 공화당 후보 매케인의 부통령 후보였던 사라 페일린 등 명사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주로 공화당이 많다. 영화배우 찰턴 헤스턴은 5년간(1998-2003) NRA 회장을 역임했다.

NRA는 누구나 총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제2조를 내세워 무기 매매와 휴대를 기본권과 같은 권리로 주장하고 있다.

NRA회원은 아주 열성적이고 활동적이다. NRA에 우호적인 인사는 발 벗고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반면 NRA와 등진 사람은 낙선시키는 데 앞장선다. NRA에 미움 타면 정치적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이래서 정치인들은 NRA에 반대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NRA의 총기 규제에 대한 반대가 지나쳐, 방탄조끼를 관통하는 총기를 일반인이 구매할 수 있게 한 법을 개정하는 것조차 반대해서 통과를 저지시켰다. 이건 원래 일반인을 위한 총기가 아닌데도 한번 법이 제정되면 이렇게 개정이 어렵다. 그래서 NRA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없지 않다. 몇 차례의 총기 참사로 총기규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상한선에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총기 규제에 대한 NRA의 지나친 부정적 태도가 미국 민주주의의 기능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칼을 이용하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태 26,52)는 성경 구절을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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