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에코포럼, 힐데가르트 성인을 살피다

“온 세상은 하느님의 운동장과 같으며, 지구 행성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과 인간이 하느님의 충만함을 드러내고, 하느님이 활동하시는 성사다”(빙엔의 힐데가르트 성인)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20회 에코포럼을 열고, 힐데가르트 성인이 이 시대에 제시하는 생태 영성과 그 비전을 짚었다.

이른바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인은 격변기였던 12세기 독일에서 여성이자 수도자로 살면서, 10여 권의 저서를 남긴 유일한 인물이다. 학자, 신학자, 철학자, 의사, 작곡가, 신비가, 생태주의자 등의 여러 수식어가 붙을 만큼, 예술과 신학, 의학 등 인간 삶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통합하고 연구했으며, 특히 그가 제시하는 비전과 개념은 오늘날 생태 영성과 여성신학에 영감을 주고 있다.

2012년 10월 7일, 죽은 지 833년 만에 시성된 힐데가르트 성인을 ‘교회학자’로 선포하면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힐데가르트의 가르침은 그의 해석이 근본에 깊이 닿아 있고 바를 뿐만 아니라, 그의 비전들은 당시 시대를 훨씬 넘어서는 새로움을 지녔다. .... 그의 텍스트들은 가장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와 육화, 신비 안에서, 또한 교회와 인류 그리고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이를 바라보고 돌보고 섬겨야 하는 자연의 신비 안에서 성찰될 때, 특별한 생명의 힘(Viriditas)과 신선함을 가져다 준다.”고 교령에 밝혔다.

이날 발표는 박유미 연구원(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과 정홍규 신부(대구가톨릭대)가 맡았으며, 힐데가르트의 주요 개념인 ‘비리디타스’(Viriditas, 창조, 생명의 힘), 그리고 힐데가르트의 통합 생태론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하느님으로부터 온 ‘푸르른 생명의 힘’은 인류 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 깃들어 있다”

‘비리디타스’는 세상 모든 만물과 행위에서 ‘하느님의 힘’을 찾았던 힐데가르트 세계관의 중심이며 독보적 개념으로, 생명력, 생명의 신선함, 생명으로 충만함 등의 의미로 읽힌다. 박유미 연구원은 ‘비리디타스’는 창조의 힘이자 모든 창조물에 담긴 생명의 힘이며, 이성과 감성, 지각 등 삶의 모든 부분에 생동감을 주는 “푸르른 생명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우주인 자연과 소우주인 인간에게 함께 작용해 생명을 주는 단일한 힘으로, 우주 전체의 맥을 뛰게 하며, 창조 안에 머물러 있는 자기 치유의 힘으로, “파괴된 질서를 정상화시키고 재생을 목표로 하는 힘”이다.

또 ‘비리디타스’는 창조의 힘이자 인간 영적인 ‘덕의 힘’으로, “자신의 약함에 맞서 싸우고 쓰러졌을 때, 하느님께 되돌아가 치유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 행함으로써 하느님의 작업에 관계 맺고 창조의 완성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덕의 힘’은 마음의 참회, 식별, 겸손, 사랑, 영혼의 모든 힘, 금욕, 순명 그리고 자비라는 일곱가지 힘의 통합으로 작용하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질서와 내적 질서를 연결하고 균형 있게 유지하도록 하는 것과 이를 지혜롭게 구분하는 ‘식별’이다. 힐데가르트는 적당한 정도를 식별해 푸른 생명력에 연결되는 것이 바로 ‘건강’이라고 말한다.

▲ 5월 24일 열린 '가톨릭 에코포럼'에서 박유미 연구원(왼쪽)과 정홍규 신부가 힐데가르트의 영성에 대해 발표했다. ⓒ정현진 기자

힐데가르트 영성의 특징은 통합, 연대, 조화와 합일, 대화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힐데가르트는 먼저 신앙생활에서 ‘개인적 죄과’를 묻는 경향과 달리,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한 전능한 분이 창조 속에 담아 준 ‘사랑’을 강조하며, 창조된 세상 모든 것 안에서 서로 연대하도록 일깨우는 잠재력, 사랑으로 작용하는 사랑의 영성, 신학으로 연결한다.

박 연구원은, 힐데가르트의 영성에 따르면, “창조의 완성은 도덕적인 의무나 보속이 아니라 대화와 기쁨”이며, “은총은 어떤 상태에서도 사랑으로 일깨워지는 것, 이성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으로 잠재된 신성을 깨닫고 작용하도록 일깨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러한 사랑의 영성은 창조 세계에 대한 경외감과 긍정을 포함하며, 모든 창조물이 서로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우주적 연대성’을 일깨운다.

박유미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구원사에서 ‘비리디타스’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힐데가르트의 ‘비리디타스’는 예수의 성체성사로 세워지고 마리아, 사도들의 신앙에 성령의 역사로 작용한다”며, “‘비리디타스’는 언제나 구원과 치유를 향하는 자연의 힘이 특별히 각성된 원리며, 모든 죄악을 없애고 모두의 아픔을 치유하는, 모든 역사가 푸르른 생명력으로 응답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말론적 위기에서 필요한 것, 새로운 종교가 아닌 예민한 통합 생태론

두 번째 발표를 맡은 정홍규 신부는 힐데가르트 성인의 영성과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통합 생태론’을 함께 살폈다.

정홍규 신부는 생태 회칙의 중심 개념은 ‘통합’이며, 하느님과 인간, 자연을 분리하려는 접근을 지양하고 우주적 친교와 우주적 형제애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학, 음악,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합, 쇄신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체적 통합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던 힐데가르트의 비전과 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통합 생태론’이 세상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연보호와 죽음의 문화를 별개로 생각하고 있으며,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통합적으로 귀 기울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우주적 친교’는 피조물 보호나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가치’인 정의 구현 문제가 별개가 아님에도 “사목 현장에서 사회노동운동가는 생태를 자주 무시하고, 생태운동가들은 자주 사회정의를 소홀히 해 왔다”고 말했다.

▲ 이날 에코포럼에는 100여 명의 청중이 참가해, 이 시대 힐데가르트 성인의 의미를 함께 살폈다. ⓒ정현진 기자

통합 생태론과 관련해 정 신부는, 통합적 생태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통합적 생태 교육이 여전히 특별하고 특수한 성격으로 머물러 있다면서, “생태 교육은 인간 내면이 전체적이고 통합적 특성을 갖는 만큼, 생태나 녹색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전인적 접근을 가져야 한다”며, “힐데가르트가 제안하듯, 텃밭 약초 가꾸기를 통한 교육은 공동체적 경제, 거주와 양육의 문제를 동시에 배울 수 있으며, 이러한 통합적 생태 교육은 인간을 재창조하는 위대한 과업”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비리디타스’와 ‘체액 병리학’ 개념을 오늘날 먹을거리와 건강 나아가 삶의 질 문제와 연결했다.

정 신부는, 특히 GMO(유전자조작작물) 농산물 문제를 짚으면서, 이는 단순 먹을거리와 유해물질 차원을 넘어 전반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자연인 대우주와 인간인 소우주가 일치하며, 인간의 체액들이 적당한 혼합 비율의 상태가 아닐 때 질병이 생기고 신체의 질병은 영혼 즉 심리적 영역까지 파괴한다는 힐데가르트의 생각과 어긋난다”며, “반대로 신적인 것, 우주, 신체, 심리 등 네 가지 통합 영역에서 동시에 치료한다면 인간 삶은 실제로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아직도 이원론, 인간중심주의 그리고 자연과 분리하는 초월적 태도로 자연세계를 적대시하는 죄와 구원의 전통이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신앙 전통에는 힐데가르트처럼 창조 중심의 영적 전통과 우주적 비전이 현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오늘날 종말론적 위기에 필요한 해결책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지구와 인간에 대한 관계에 대해 힐데가르트 성인에게서 배워야 할 예민하고 통합적인 생태론 영성”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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