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범 신부, "이원론 벗어나 평신도 정체성 찾아야"

사목상담과 영성 분야의 권위자 셀범 신부(S. M. Selvaratnam)가 한국을 찾아, 21세기 교회를 위한 평신도 영성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사제와 평신도를 구분하지 않는 보편적 영성을 이야기하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차별없는 교회, 평신도의 적극적인 사도직 실천을 한국 신자들에게 되새겼다.

지난 8일 국제가톨릭형제회(A.F.I)와 우리신학연구소의 주최로 셀범 신부의 세미나가 열렸다. 그는 미국에서 사목상담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전 세계를 돌며 세미나를 진행한다. 이날 행사에는 90여 명의 평신도, 수도자, 사제가 함께 했다. 그는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산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에 왔으며, 전국 사제, 수도자 피정을 지도하고, 12일에 한국을 떠난다.

셀범 신부는 보편적 영성, 나아가 평신도 개개인의 고유하고 다양한 영성을 설명하기 위해 심층 영성을 이야기했다.

“하느님은 이미지가 없다. 하느님의 이미지는 우리가 만든 것이다.”

셀범 신부는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이미지)대로 만들어졌다고 교리를 통해 배우지만, “사실 하느님의 이미지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배운 하느님의 이미지는 진짜 하느님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 셀범 신부 ⓒ배선영 기자

그는 따라서 처음에 누구에게 어떤 이미지의 하느님을 배웠는지가 중요한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요한 복음사가는 하느님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는 모두 사랑, 영, 하느님(이 세가지는 같다) 안에서 태어나지만, 사회 속에서 여러 관계를 통해 슬픔, 분노, 질투 등을 배우며 그 이미지가 변한다고 설명했다. 세속에서의 경험으로 자아가 만들어지면서 점점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다.

셀범 신부는 비움을 강조한다.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은 자기 비움의 필수요건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내려놓는 과정이 중심(core)으로 향하는 내적 여정이다. 우리가 향하는 중심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에 안에 있다는 것” 또는 사랑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비우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대부분은 세속에 얽매인 채로 산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다는 명제는 보편적 영성과 관련이 깊다. 그는 성직자와 평신도, 수품자와 비수품자, 엘리트와 일반인 등의 이원론을 바탕으로 한 구분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중 ‘평신도 교령’과 1987년 주교시노드 문헌 “평신도와 그리스도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 등을 말하며 “(친교와 선교는) 각자에게 맡겨졌으며 따라서 사제들과 평신도 모두, 곧 전체 교회의 일이 된다”(“평신도와 그리스도인” 중)고 이른다.

그는 “부르심은 성소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부르심은 앞서 말한 하느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 부르심을 받지만(The call is universal), 돌아가는 방법 즉 성소는 다양하다. 다시 말해 성소는 부르심이 발현되는 자리며, 생활양식, 목표를 위한 한 수단으로 결혼, 독신, 사제 등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 셀범 신부의 강연 뒤에 참가자들이 조별로 나눔하는 모습 ⓒ배선영 기자

“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셀범 신부는 성체성사에서 예수가 자신의 몸을 “취하고, 축복하고, 쪼개고, 나누는” 이 강력한 말씀이 다른 이에게 헌신할 때 의례적인 것을 넘어 비로소 실현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사제직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그는 또 우는 이들과 함께 울어주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한 이들의 목소리에 함께하고, 억압된 이들의 해방을 돕는 것이 예언직의 수행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악한 국가에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저항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데 애쓰는 것이 왕직의 사명이다.

그는 이런 사명의 실천에는 모든 평신도가 예외없이 참여해야 하며, 교회 구성원 각자는 다른 이들이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과제가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정치, 과학기술, 인권, 교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언직을 실천하는 평신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셀범 신부는 결국 21세기에 어떤 차별도 없는 모든 이를 환영하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공동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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