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5지구, "살던 곳에 살게 해 달라"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말도 못 합니다. 여기 이 골목에서는 저녁마다 밥상이 차려졌어요. 이 집에서 이 반찬 나오고, 저 집에서 저 반찬 나오고.... 그렇게 살던 곳인데....”

만덕동에서 40년째 살았다는 한 주민이 철거된 집을 둘러보는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깨진 유리와 시멘트 덩어리가 엉킨 더미, 아직 불 켜진 집 앞에도 함부로 쌓아 둔 자재를 덧없이 바라보다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다시 들어선 만덕공동체 사랑방에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밥상으로 쓸 평상을 나르는 주민들의 사진과 색색의 슬레이트 지붕이 빼곡한 마을의 풍경 사진이 걸려 있다.

부산 만덕5지구 주민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최수영 대표가 9미터 망루에 오른 지 13일째인 4월 26일. 적게는 20여 년, 많게는 40여 년 살던 6가구 주민들과 연대 시민들이 망루 아래 공동체를 지키고 서 있다.

부산지방법원이 4월 4일 자로 만덕공동체에 ‘부동산인도 강제집행 예고장’을 보내면서 18일까지 살던 집을 비우라고 통보한 직후, 최수영 대표는 더는 할 것이 없다며, 14일 자정 망루에 올랐다.

▲ 만덕주민공동체 최수영 대표가 올라 있는 9미터 높이의 망루.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든 곳에서 그는 한 가닥 희망을 위해 싸운다. ⓒ정현진 기자

주거환경개선사업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덕5지구라 이름 붙이기 전, 이곳은 1553가구가 살아가던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이었다. 1972년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는 부산 영도, 초량, 수정 등지 산동네 판자촌 주민들을 이곳 만덕동 금정산 산비탈에 강제 이주시켰다.

공동묘지와 저수지가 있던,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있는 그 어떤 가옥이나 시설도 없던 곳에 비닐천막을 치고 살기 시작했던 이들은, 일용직이나 폐품 수집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벽돌 한 장씩 쌓아 집을 지었다. 그렇게 만덕동을 ‘제2의 고향’으로 삼으며 보금자리를 만들고 안정된 생활을 할 즈음인, 2001년 말, 부산시는 이 지역을 ‘주거환경개선 지구’로 지정하고, 2002년 북구청은 이를 고시했다.

2009년 10월,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통합되어 한국토지주택공사로 출범한 뒤, 2011년 9월 주민들에게 2007년 공시지가 기준으로 보상을 시작했고, 주민들은 이에 불복해 주민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2013년 10월에는 이주하지 않고 남은 주민 30여 가구가 ‘만덕주민공동체’를 꾸려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부산시에 불법 사업 진행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공사 측에 본래 사업 취지와 법적 규정에 맞는 사업을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공사 측은 “사업 방식을 전환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2011년 이후 6년째 마지막까지 남은 만덕공동체 6가구는 끊임없이 “그대로 살게 해 달라, 제발 법대로 사업을 추진해달라”며 싸우고 있다.

최수영 대표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만덕5지구의 주거환경개선사업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만덕공동체는 이 사업에 대한 인가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년 6월 24일, “상고 이유 없음”으로 기각,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재판 과정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의 법률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는 부산시가 법을 위반한 것을 인정하고 법원에 ‘사정판결’요청을 한 것에서도 입증된다고 밝혔다.

그는, 부산시는 만덕5지구를 사업지역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주민 동의서를 조작하고, 주택불량률을 조사하는 데 전문가가 아닌 통, 반장을 동원한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 사업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고 설명했다.

보상금이 아닌, “법대로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최수영 대표는 “처음부터 요구했던 것은 주민들이 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며, 보상금도 모두 반환하겠다고도 제시했다”면서, 주민들이 이 싸움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가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만덕공동체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대해 공지한 것처럼, 기존의 열악한 주택을 보수해서 그대로 살거나, 일부 지역에 아파트를 짓더라도 기존 주민들이 그대로 살 수 있도록 일부 토지를 내어 달라는 것이다.

▲ 철거가 90퍼센트 이상 진행 된, 만덕5지구. 그러나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는 17가구의 삶은 이곳을 포기할 수 없다. ⓒ정현진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 홈페이지 내용에 따르면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낡고 오래된 주택이 밀집된 지역에 도로, 주차장, 공원 등 정비기반시설을 설치하고, 불량주택을 개량함으로써 쾌적하고 살기 좋은 주거단지로 바꾸는 사업”이다. 그 방법은 현지개량방식, 공공주택건설방식, 혼합방식 등으로 기존 주택을 주민 스스로 자금을 융자받아 증, 개축, 신축하는 방법, 오래된 주택을 철거하고 아파트 등을 건설해 주민에게 재분양하는 방법,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함께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

만덕공동체 주민들은 처음에는 현지 개량방식을 요구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철거를 상당 부분 진행하자 혼합방식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는 “남아 있는 일부 주민들에게만 혜택을 줄 수 없으며, 이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거부했다.

최수영 대표는 “우리의 요구는 법에도 규정된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취지를 살려 달라는 것이고, 살던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내 집을 돌려받도록 해 달라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공사 측은 터무니없는 보상금을 제시할 뿐이라고 말했다.

2011년 당시 토지주택공사가 주민들에게 제시한 보상금은 2007년 기준 공시지가다. 공사 측이 제시한 보상금은 평당 280-320만 원이었지만 2011년 인근지역 평당 시가는 약 700만 원이었으며, 2015년 현재 900만 원 이상이다.

최 대표는 보상금으로 이주한다면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월세입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점도 문제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 합병 뒤, 공사 금액은 1340억이 늘어난 반면, 보상금은 1888억에서 1659억으로 줄었다면서, “이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가진 100조의 부채 때문인데, 이 책임을 왜 우리에게 떠넘기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우리의 요구는 법에 정해진 내용인 만큼 공사 측도 방법이 없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안 하려는 것이고, 이런 전례를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공사 측이 언급하는 남은 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형평성에 대해서는, “끝까지 남아서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싸운 만큼의 몫이다. 형평성으로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의 강제 이주로 만들어진 마을, 그 딸이 다시 쫓아내”

만덕동에서 20년을 살았고 현재 공동체 총무를 맡고 있는 김문식 씨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사업이라면서 어떻게 서민들의 삶터를 빼앗나”라고 물으며, “처음부터 이것은 공기업 이윤을 위한 사업이었고, 주민들은 그래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무엇보다 주민들의 동의와 의견 반영이 중요하다. 주민들의 거주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만큼, 주민들이 어떤 방식을 원하는 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산시와 토지주택공사는 정당하지 못한 절차를 통해 집과 토지를 일괄 매수했다. 처음 사업에 대한 동의를 받을 때, 일괄매수방식으로 진행될 것을 알리지 않았고, 그 사실이 소송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는 무엇보다 주민들이 돈으로 협상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오히려 보상금을 내놓겠다고 했음에도, 보상금 문제로 매도하는 언론에 원망이 많았다.

“결국 철거되겠지만, 우린 신념이 있으니 끝까지 갈 것”이라는 그는, “이런 식의 재개발이나 사업은 결국 원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국민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다른 지역에서라도 바로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일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싸운다”고 말했다.

▲ 소식을 들은 부산교구 사제들과 신자, 수도자들이 이곳을 방문해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더 많은 그리스도인, 연대의 자리에 나서주길

한편 부산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역 사제들은 14일 이후부터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26일 저녁, 미사에 참석한 전나미 씨(구포성당, 율리안나)는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이 법에 보장되어 있음에도 전례가 없다며 거부하는 것에 너무나 놀랐다”면서,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주민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선례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부산시와 공기업은 지금이라도 법대로 해야 한다”면서, “만덕5지구 주민들을 비롯해, 살고 싶은 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바람을 지켜줘야 한다. 이 일이 그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지순 수녀(전교가르멜수녀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연대가 너무나 필요한 자리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만덕공동체를 찾은 이유에 대해, “힘없는 형제들이 철저하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데, 어떻게 찾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예수가 우리에게 준 이웃사랑의 소명을 위해서는 과연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를 집전한 김종화 신부(작은형제회)는, 상황을 알아보니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신자들과 미사를 드리고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덕5지구뿐만 아니라 곳곳의 재개발은 토지공사가 돈을 추구하기 때문에 벌이는 일”이라면서, “이곳에서 제대로 주거권을 위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더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대의 현장에 더 많은 그리스도인이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사회교리, 공의회문헌을 배우는 자리는 많이 있는데, 늘 만나는 이들만 만나게 된다”며, “사회교리를 배우는 것은 약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또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제와 수도자의 우선 참여가 필요하다면서, 연대의 현장에 더 많은 사제와 수도자가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