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훈 신부 인터뷰

쌍용차 노동자들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 단행, 7년간의 복직 투쟁은 해고와 같이 삶을 파괴하는 행위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합법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가에 대한 충격과 함께, 그에 맞선 싸움, 연대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도록 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충격과 깨달음은 교회에도 마찬가지였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뤄진 쌍용차 해고자들과의 연대는 지난날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미사, 이웃 종단과의 연대를 넘어 교회는 ‘해고’로 인해 무너지는 사람들, 그 가정의 삶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2012년,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의 죽음이 시작되면서 교회는 노동자 해고가 무엇인지 다시 들여다보게 됐고, 노동, 노동조합, 신자유주의 광풍에 대한 통념을 전환해 갔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쌍용차 문제를 구체적으로 만나던 시기, 정평위 총무로서 그 한 가운데 있었던 장동훈 신부는 이에 대해 “쌍용차 문제는 교회가 새로운 연대의 차원을 연 하나의 사건이며, 쌍용차 해고 문제를 통해 다른 현장을 들여다보게 됐다”고 말한다.

▲ 장동훈 신부는 쌍용차 연대를 통해 교회는 노동자들에 대한 시각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대에 새롭게 눈을 떴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쌍용차 해고자 복직 투쟁과 함께 연대한 7년, 교회는 어떤 체험을 했고, 무엇을 받았으며, 그 결실을 어떻게 이어 갈 것인지 장동훈 신부를 통해 들었다.

“쌍용차 해고자들과 연대한 것은 과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어요. 아주 구체적으로 연대했고 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죠. 쌍용차 해고 사태, 해고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교회는 신자유주의가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밑둥부터 파괴할 수 있다는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장동훈 신부는 교회가 쌍용차 사태를 통해 시대의 징표를 읽었고, 노동자를 비롯한 평범한 이들이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 감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2600여 명을 한 번에 해고한 그 규모와 파급력의 심각성도 있었지만, 노골화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우리가 무엇을 잃고, 어떤 상처를 받을 것인지 극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이미 교회의 눈을 뜨도록 한 사건은 용산참사였다. 평범한 이들이 집에서 쫒겨나고 죽음을 당한 용산참사와 뒤 이은 쌍용차 해고는 그렇게 교회가 가진 오랜 통념에 균열을 가져왔다.

장 신부는 쌍용차 사태로 인해 교회의 노동관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오래전 노조활동이 불법이었을 때, 교회가 산파 역할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 뒤 10여 년 노동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그 바뀐 흐름을 처음으로 실감한 것이 쌍용차 사태였다는 것이다.

노조활동이 합법화된 뒤 십 수년 간 세간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도 노조의 이익집단화, 귀족노조, 비정규직에 대해 공감 없는 대기업 정규직노조에 대한 인식이 있었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이들이 첫 번째 타깃이 됐어요. 그동안 노동자의 문제는 노동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인식이 무너졌죠.”

2009년 이후 거의 잊혀졌던 쌍용차 문제가 다시 공론화된 것은 2012년 해고자들과 그 가족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나면서다. 교회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해고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의 고통을 보면서 교회는 해고자들의 가정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과거 노동자 문제를 노동운동권의 문제로 이해한 것에서 해고 노동자 가정의 삶을 걱정한 것이다.

“해고는 죽음”이라는 구호가 생겨난 것처럼 해고가 평범한 가정의 생계 문제는 물론, 이혼, 자살, 청소년문제로 이어지는 현상을 목격한 주교회의 정평위는 2012년 6월, 생계지원과 자녀들의 학자금 지원을 위한 범 교회차원의 모금을 시작했고, 3차에 걸쳐 진행했다.

경제적 지원과 동시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더 이상 동료를 떠나보낼 수 없다”며 상경투쟁을 결정한 해고노동자들이 대한문에서 공권력의 탄압을 받는 모습을 보며, 2013년 4월부터 225일간의 매일 미사를 시작했다.

▲ 2013년 4월 8일부터 시작된 대한문 매일 미사는 11월 18일까지 225일간 계속됐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동훈 신부는, 그 이전부터 해당 지역교회인 수원교구 공동선실현 사제연대와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도 있었지만, 주교회의 정평위 차원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데는 당시 위원장이었던 이용훈 주교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한상균, 복기성, 문기주 세 해고자가 쌍용차 본사 앞 송전탑에서 126일 째 고공농성을 하던 2013년 3월 25일에 이용훈 주교님이 송전탑에 올라 이들을 만났어요. 당시 정평위원장으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 크게 체감하고, 지역과 계급을 넘어 이 문제는 교회가 껴안아야 할 고통이라고 인식하신 것 같아요.”

그 뒤 주교회의 정평위는 교구와 교계 조직, 소속을 불문한 사제, 수도자 서명운동을 벌였다. 대선 후보 시절 쌍용차 문제 해결을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쌍용차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진행된 서명운동에는 5038명이 참여했다. 2013년 8월 26일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염원하는 선언’을 발표한 이들은 “더는 잊지 않고, 더 이상 한 생명도 잃지 않을 것이며,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또렷이 기억하며 정의롭게 다그쳐, 세상의 거짓 약속을 부끄럽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용훈 주교는 “노동자의 고난은 노동자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며, 정권을 향해 “약속은 목숨이고 국민들 앞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같은 관념의 궁전을 내려와 이 땅의 평범한 일상들의 애환을 먼저 바라보라”고 촉구했다.

▲ 2013년 8월 26일, 전국 사제, 수도자 5038명은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하고 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장동훈 신부는 쌍용차 사태는 교회가 노동문제가 얼마나 심각해질 것인가를 읽은 통로이자 상징이었고, 더불어 시대의 고통을 바라보게 된 일대 전환과 같은 사건이기도 했다면서, “노동자들을 아버지, 삼촌, 형제, 자매로 만나게 됐고, 다른 사업장까지 만나게 했다. 노동자 문제와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창이 되었다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동훈 신부가 강조하는 것은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연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다.

“처음에 우리가 연대하면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중엔 그것이 오만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하는 장 신부는, “연대는 우리가 힘이 있어서 나누고 돕는 것이 아니라 결국 약하고 못난 약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함께 하는 것이며, 엄청난 무엇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장동훈 신부는 연대의 현장에서 어느 순간 무력감을 느끼면서 문제 해결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싶었던 유혹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하면서, “하지만 나중에는 우리가 해결의 구심점이 되거나 지렛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옳고 정의로운 일에 공감하는 것이고, 문제 해결은 당사자들의 스스로 결정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부여받은 몫은 옆에 서 있는 것이고, 특히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복음적으로 옳은 것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좋은 영감과 자신들의 길을 걸어갈 힘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신부는 아무 힘이 없는 우리를 친구로 맞아 주고, 옆에 있는 것을 허락하고, 왜 이것밖에 해 주지 못하느냐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해고자들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다면서, “연대의 시간은 우리 모두가 오해와 반발, 몰이해를 감수하며 겸손해지고 가난해진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또 사제단, 정평위, 어느 수도회 그리고 소위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구분이 무색했던 커다란 연대의 체험이 그 이후의 사건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도 큰 의미였으며, 그것이 교회를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또 하나의 의미는 수도자들의 역할이다. 장 신부는 특히 여자 수도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첫 현장이었고, 해고자들 역시 사제의 연대와 수도자들의 연대를 다른 결로 받아들였다면서, “수도자들은 복음의 감수성이 가장 높은 이들이었고,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수도자들의 존재 자체가 많은 것을 시사했고 수도자를 스스로에게도 경직되어있던 수도 문화가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쌍용차 사태에 대한 교회의 연대가 노동자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체험을 하는 계기였다면, 이 결실을 어떻게 이어 가야 할까.

장동훈 신부는 이 체험을 신학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고, 과거의 통념을 버리지 못하는 교회 내 대다수에게 이것을 신앙의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쌍용차 사태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그럼에도 소수이며, 더 많은 신자들에게 전달해야 할 과제가 생겼다면서,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교회적으로 식별하고, 개입하는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해야 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의 마음을 복음의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신학적인 정리와 함께, 노동문제에 대한 전문가적 시선과 식별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지역 교회에서 겪는 여러 노동문제에 교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식별 기준과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주교회의 정평위는 이같은 작업과 노동소위원회 활동을 위해 노동소모임이 이뤄지고 있으며, 교회의 노동 관련 문헌을 수집하는 등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동훈 신부는 사회교리를 비롯해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들을 삶의 현장으로 끌어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론과 현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고, 그것을 어떻게 마련하고 안내할 것인가는 교회의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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