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어 세상으로 8] 니체, 백승영 옮김, "안티크리스트", 책세상, 2002

벌거벗은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난 신! 역사 안에서 살아간 한 인간에게서 찾은 신의 모습, 그리스도는 우주가 생겨난 138억 년, 태양이 탄생한 50억 년, 지구가 생겨난 45억 년 이후에 비로소 인간의 자기 인식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인류는 2000여 년 전에 비로소 한 인간에게서 신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진리임을 고백하였다. 인간이 자기 존재의 근거인 신과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이들은 모진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새로운 인식과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황제의 종교로 제도화된 교회 안에서도 그리스도 사건의 속살을 헤집어 보려는 이들이 끊임없이 나타났고, 그 전통은 새로운 삶의 혈맥을 형성하였다.

요한 복음 1,1-18의 대서사에서 요한 사도는 예수에게서 우주의 한 처음에 있었던 그리스도를 인식하고 고백하였다. 인간 예수의 일생을 증언했던 공관 복음서들의 시간에서 불과 20여 년 뒤에 놀라운 우주의 신비와 그리스도를 연관해서 이해한 것이다. 2000년 교회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라는 알밤을 담고 있는 가시투성이의 밤송이에 비유한다면, 요한처럼 그 밤송이를 깨뜨려서 알밤의 정수를 맛보려는 이들이 맥을 이어서 나타난 것 또한 역사의 신비이다. 신비가 혹은 예언자로 불렸던 그들은 교회라는 제도를 넘어서 늘 새롭게 불어오는 영을 만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그리스도를 인식했다. 위 디오니시우스, 고백사제 막시모, 카바질라스와 쿠자누스, 힐데가르트와 에크하르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중세의 평신도 베긴, 현대의 신비가인 시몬 베유와 테야르 드 샤르댕 등, ‘힘에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은 우주의 신비와 인간이 소통하는 관계에 공감하였다. 그중에 자신의 시대를 비추고 지나간 혜성 같은 인물이 있으니, 바로 현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다.

▲ 니체, 백승영 옮김, "안티크리스트", 책세상, 2002
그는 카를 마르크스(1818-1883),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와 함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둥지를 깨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현대의 문을 열어젖힌 철학자이며 ‘초인’이라는 개념으로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온 열정을 바쳤던 인물이다. 쇼펜하우어의 작품을 탐독하던 청년 니체는 염세주의적 관점에서 “비극의 탄생”을 서술했지만, 사상적 성숙과 함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저술하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특별히 니체는 1888년 한 해 동안 절정에 이른듯 많은 작품들을 저술하였고, 일관된 자신의 사상적 결로 현대 종교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냈다. 그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위해서 일련의 작품들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시우스 송가”를 탈고하였다. 특별히 “안티크리스트”에서는 이제까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그리스도교의 관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철학자 니체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예수를 로마 식민지의 청년으로 그의 시대 안에서 만나고, 종교철학적 관점에서, 모든 종류의 유형화를 넘어서서, 다가오는 현대의 지평 위에서 그리스도로 인식하였다.

하지만 니체는 그 지점에서 멈추었다. 1889년 1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졸도하면서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그의 저작에서 이미 그의 정신은 매우 분주하고 이성과 감성의 경계를 넘는 모습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온 힘을 다해서 그리스도교라는 우상을 부수던 그의 자유정신은 결코 다 드러낼 수 없는 그리스도 신비의 한 자락만을 열 수 있을 뿐이었다. 니체는 현대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1900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시선은 현대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다. 근대의 인간 키르케고르가 신 앞에 단독자로 홀로 섰다면, 니체는 모든 이념과 종교를 넘어서 연대하고 사랑하는 자유로운 현대인으로서 살아갈 것을 선언한 것이다.

▲ (표지1, 왼쪽), (표지2)

그의 의도는 두 가지로 표현된 제목에 잘 나타나 있다.  (표지 1)은 “안티크리스트 / 그리스도교 비판의 시도 / 제 1권 / 모든 가치의 전도”로 쓰여 있다. (표지 2)는 “안티크리스트 / 모든 가치의 전도 / 그리스도교에 대한 저주” 로 쓰여 있다. (니체전집 15권, 210쪽, 212쪽 참조)

이 작품은 62항의 단편과 ‘그리스도교 반대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왜 니체는 그리스도 사건을 그리스도교의 전복, 가치전도라는 주제와 연관해서 풀어 나간 것일까? 니체의 철학적 태도에 근거해서 이야기하자면, 그가 인식하는 그리스도 사건은 이제까지의 어떤 영웅사건들의 유형을 적용시킬 수 없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고, 더욱이 종교화된 위선적인 그리스도교에 의해서 그 가치가 훼손된 사건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교회가 그 자체로 부패의 시작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모든 진리를 영혼의 비열성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

작품의 전반부에서는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잘못 이해한 기억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증거를 수집하기에 분주한 니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동정의 종교가 되면서 인간의 힘을 상실하도록 했고, 고통 자체가 동정에 의해 감염되어서 삶과 생명력의 총체적인 손실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신 개념은 희생이 필요한 인간의 필요에 따라 설정되었기 때문에 감사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자유정신과 열정을 앗아 간다고 비판한다.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기반이 된 최하층과 결별한 뒤에 야만족들의 권력추구와 궤를 같이하기 시작한 것을 지적한다. 이와 함께 예수가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었다는 그리스도교의 수난 개념을 정면으로 공격한다. 또한 교회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교회의 전역사로 바꾸고 유대교의 사제들을 위선자로 왜곡하는 것을 비판한다. 즉,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 성스러움을 주도하는 그리스도교의 사제 계급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권력으로 재등장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니체는 신 개념을 폐기한 불교의 유산을 기반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할 것을 권고한다. 왜냐하면 불교는 더 이상 ‘죄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싸움’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예수가 주모자로 오해되었던 그 봉기가 유대교회, 즉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바로 그 의미로 이해된 교회에 대항하는 봉기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에 대항하는 봉기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선한 자와 의로운 자’에 대한 봉기였고, ‘이스라엘의 성자들’에 대한 봉기였으며, 사회의 위계질서에 대한 봉기였다.... 이에 대한 증거는 십자가에 붙어 있는 명패다.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었다. 그가 다른 이들의 죄 때문에 죽었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자주 주장된다고 하더라도 근거 없는 말이다.(27항)

니체는 로마제국 식민지의 청년으로 민중봉기를 주장하다가 정치범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수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예수는 모든 이들이 다 함께 신의 자식으로서 동등하다고 보았으며, 예수의 죽음은 다른 이들의 죄를 대신하기 위한 희생이 아니었다. 따라서 십자가의 예수가 전한 복음의 본질은 예수를 따르는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안에는 구세주의 유형이 강하게 왜곡된 채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의 심리 전체에는 죄와 벌의 개념이 없다: 보상이라는 개념도 없다.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죄’가 없어졌다는 것. – 바로 이것이 ‘복음, 기쁜 소식’이다. 지복은 약속되지 않으며, 조건들에 묶여 있지 않다: 이것이 유일한 사실이다. – 나머지는 이러한 사실을 말하기 위한 기호일 뿐이다…. 신에게 향하는 길은 ‘회개’도 아니고, ‘용서의 기도’도 아니다. 오로지 복음적인 실천만이 신에게 인도하며, 복음의 실천이 바로 ‘신’이다. - 복음과 함께 없어진 것, ‘죄’, ‘죄의 사함’, ‘신앙’, ‘신앙을 통한 구원’ 개념을 갖고 있는 유대교였다 – 이런 유대교회의 교설 전체가 ‘기쁜소식’에는 부정되었다. (33항)

십자가에 매달린 좌우의 도적들이 정치범이었던 것을 이제는 모두 안다. 예수 역시 정치범으로 그들과 함께 죽어 가면서 자신뿐 아니라, 함께 달린 그들도 신의 자식인 것을 확인한 것은 니체가 그 특유의 애정으로 섬세하게 묘사한 대목이다. 죽기까지 자신의 결정에 자유로운 사람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드러낸 사람, 예수! 그를 그리워하는 니체는 현대의 감각으로 그리스도 사건의 속살을 드러내 보여 준다.

이 ‘기쁜 소식을 가져온 자’는 그가 살아왔고, 그가 가르쳤던 대로 죽었다 –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죽었다. 그가 인류에게 남겨 놓은 것은 바로 실천이었다: 재판관과 호위병과 고발자와 온갖 종류의 비방과 조소 앞에서 보여 주었던 그의 태도 – 십자가에서 보여 주었던 그의 태도.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리를 변호하지 않는다. 그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사태를 도발한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 신적인 사람이었구나, ‘신의 자식’이었구나”라고 그 도적은 말했다. “네가 그것을 느끼면 – 구세주가 대답하기를 – 그러면 너는 낙원에 있는 것이다. 너 역시 신의 자식인 것이다....” (35항)

동지가 지난 직후인 12월 25일 태양신의 축일을 그리스도의 탄생 축일로 바꾼 것은 그리스도교가 황제의 종교가 된 덕분이었다. 통속화되고 야만화된 교회는 그 신앙마저 그렇게 병들고 천박하고 통속적이게 만들었다. 니체는 “병든 야만성 자체가 결집되어 드디어는 교회라는 형식으로서 권력이 되어 버렸다”(37항)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의 비판은 21세기에 더욱 더 유효하다. 교회는 부패한 것이 아니라, 부패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혹독함을 넘어서 독설에 이른다.(42-44항 참조)

예수 자신은 자기의 죽음을 통해 가장 혹독한 시험을 공개적으로 치르면서 자기의 가르침을 입증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사도들은 그가 죽음을 통해 용서해 주는 데에서 멀리 있었다. 용서하는 것이 최고의 의미에서 복음적이었을 텐데도.... 예수의 복음은 바로 그런 ‘나라’가 현존하고, 이루어졌으며,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예수의 그런 죽음이야말로 바로 이런 ‘신의 나라’였던 것이다.(40항)

누일 자리가 없어서 동물의 먹이통에 누인 아기 예수는 그 출생에서 죽음을 예고한다. 오히려 그의 죽음 뒤에 그의 탄생을 기억해냈을 것이다. 저항하지 않는 인간,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그 생명의 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한 젊은이. 니체는 십자가에 매달린 신, 고통받는 모든 것, 십자가에 매달린 모든 것이 신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회의 역사는 어떠했는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영혼들의 광포해진 숭배심은 만인이 신의 자식이라는, 예수가 가르쳤던 복음적 평등권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의 복수는 터무니 없는 방식으로 예수를 치켜세우고, 그들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예전에 유대인이 자기네 적에 복수하기 위해 자기네들의 신을 자신들로부터 분리시켜 높이 치켜세웠듯이. 단 하나의 신과 단 하나의 신의 아들: 이 두 가지가 다 원한의 산물이다.(40항)

니체의 언설은 마치 오십 년 뒤,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날 대학살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 대참사 뒤에 그리스도교의 신학자들은 ‘십자가에 달린 신’이라는 개념으로 구원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니체에 의하면, 인간은 그렇게 죽음으로써 인간이 살아가는 신적 지평을 드러내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따라서 우리는 신적이다… 우리만이 유일하게 신적이다.” (51항)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성탄절이 이미 권력의 수혜를 받아서 만들어진 축제라면 그의 출생을 기념하는 것은 결국 그의 희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 아닌가? 마치 바보왕의 축제처럼.… 게다가 성탄 대목을 기다리는 상가의 불빛은 쿠바의 어느 빛바랜 골목의 풍경만큼이나 쓸쓸하다. 경제가 얼어붙은 탓이란다. 성탄이 상품성을 잃어버린 빛바랜 축제가 되는 것은 전락하는 것인가, 역설적으로 본래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일까? 대림의 한가운데서 가슴에 날카롭게 꽂히는 뉴스는 세월호참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위원회의 조사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보도다.

작년 여름 광화문을 지나다 세월호 안에 있던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담겨있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죽음을 직감하고 항의하는 한 남학생의 모습과 목소리가 그 순간 내 안에 각인되었다. “왜 죽어야 하느냐고!” 울부짖던 그 아이는 우리가 그 모습을 볼 때에는 이미 죽은 지 몇 달이 지나 신의 나라로 돌아간 뒤였다. 그렇게 죽을 수 있는 것이 신성을 가진 인간의 모습이라고, 그 아이들은 이 시대를 위해 희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 대림 시기에 죽고 싶지 않다고 피땀 흘리며 간청했던 예수의 모습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죽는 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복음서는 예수가 그렇게 자신의 Fiat를 바치고 죽임을 당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죽을 각오를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가? 신의 아들 딸인가? 자유롭게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살고 싶은 오늘날의 이름없는 사람들인가? 예수는 오늘도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인간들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살았던 것처럼 살기로 결심하면서 성탄을 축하하는 것인가?

중세와 근대의 유산들이 끈끈하고 무겁게 남아 있는 유럽의 한 모퉁이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현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교에서 주장하는 “신은 죽었다”고, 혹은 “진정한 신”을 찾기 위해서 등불을 들고 거리를 헤매던 니체의 결을 그림 한 장에 담아 본다. 니체의 간절함이 현대 이후에 여전히 존재하는 교회를 꿰뚫고, 고귀한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생명과 힘의 의지로 회복되기를, 또다시 아기로 오는 그리스도 안에서 혁명으로 탄생하기를! 더 이상 종교적이지 않지만 영적인 한 걸음이 인간의 신비를 실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 "안티크리스트"를 쓰는 니체.(최우혁 그림, 20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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