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시국미사 강론 전문

지난 토요일, 밀밭 파종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온 농민 한 분이 직사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경찰은 1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머리를 정조준해서 쐈습니다. 직사 공격은 사람이 쓰러진 뒤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살기 어린 물대포의 만행에서 보았듯이 이제 모든 국민은 조준 대상이고 가차 없는 타격의 목표물입니다. 악행을 멈추지 않는 권력자에게 죄를 묻고, 마음이 찢어지고 무너져 내린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전하면서 정의를 곧추 세우기 위해 이 미사를 드립니다.

1. 화룡점정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 ⓒ정현진 기자
방금 우리는 제발 눈 좀 뜨게 해 달라고 외치던 어느 딱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루카 18,35-43) 정치가 무엇이냐, 통치가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것은 늘 캄캄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의 눈을 열어 주는 것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하느님의 정치’가 사람의 눈을 열어 주는 것이라면, 인간의 정치도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화룡점정이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점 하나로 그림 속에 갇혀 있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도록 해 주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점 하나로 눈동자가 살아 있게 하고,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게 해 주었다니 놀랍습니다만, 오늘 우리는 어디에다 그 점을 찍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현실을 보면 화룡점정이 아니라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눈을 가려서 사람을 속이고 사람을 홀립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백성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다 안 되겠다 싶으면 아예 백성의 눈동자를 뽑아 버리려고 대듭니다.

백성 민(民)이라는 글자에 그런 서글픈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민주주의 할 때의 자랑스러운 민 자가 고대에는 ‘눈이 먼 사람’을 가리키는 글자였다고 합니다. 커다란 눈에 바늘을 찔러 놓은 형상을 그린 글자가 백성 민이라는 것입니다. 눈에 티 하나만 들어가도 견디지 못하는 게 어린 백성인데, 죄 없는 그 눈에 긴 바늘을 찔러 놓았다면 이보다 극악한 일이 또 있을까요? 이런 것이 독재자들의 못된 소질이고 버릇입니다. 독재자들의 잔인한 소행 못지않게 무서운 것은 그 다음 벌어지는 결과입니다. 백성들은 자기 눈에 무엇이 박힌 줄도 모른 채 사물을 왜곡해서 바라보지만 의심은커녕 확신에 가득차서 독재자를 편듭니다. 그래서 속이는 일도 무섭고 속는 일도 무섭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와 같은 무서운 공작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려는 독재자의 대침입니다. 시중에 나도는 소리가 이렇습니다. 전해 드립니다.

“을사년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 다섯이 있었다더니 을미년에 을미오적이 새롭구나. 박근혜, 김무성, 황교안,  황우여, 김정배.... 너희들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 주랴. 전시작전권 하나 찾아오지 못하는 놈들이 식민사관, 친일매국사관을 국정화하겠다니 이제 결단을 내리자. 을사오적을 애국자로 둔갑시킨 교과서를 아이들에게 물려 줄 것인가 아니면 을미오적을 징치할 것인가.”

박근혜 씨와 그 수족들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백성의 눈을 가리는 정치를 하다가 눈알이 뽑혀 제 나라에서 쫓겨난 임금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섬뜩하겠지만 꼭 읽어 보고 저마다의 교훈으로 삼길 바랍니다. 열왕기 하권 25장 1절부터 7절입니다.

2. 분서갱유

오늘 독서(1마카 1,10-15.41-43.54-57.62-64)는 기원전 2세기 이스라엘이 그리스제국의 어느 악명 높은 황제에게 억눌려 지내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때에 사람은 본색을 드러내고 맙니다. 본문에는 변절한 사람들과 절개를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외세에 아부하고 침략자와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 열중했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제국이 흘려 주는 부정한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후회 없이 싸우다가 깨끗하게 죽어 간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어느 나라 이야기입니까? 바로 우리 역사가 아닙니까. 일제강점기에 자주독립을 위해 가시밭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겨레를 버리고 민족을 배반한 친일 매국노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누구를 낮추고 누구를 들어 높여야 옳은지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대통령은 어디 계시오? 대통령! 아이들 앞에서 어디 한 번 대답해 보시오!

본문을 들여다 보면 폭군은 “율법서가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사랑하던 책을 불태워 버렸다. 이게 무엇입니까? 분서입니다. 그 다음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결국 죽어 갔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또 무엇입니까? 뜻이 높은 선비들을 묻어서 죽였다. 갱유입니다. 미사 중에 봉독되는 성경 본문은 그날그날 맘대로 정하는 게 아니고, 미리 짜인 순서대로 읽게 되는데 오늘 우리가 이런 본문을 마주하게 된 것을 우연으로 돌리지 맙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변절자를 찬양하고 지조를 지킨 자들을 멸시하는 교과서를 만들어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여러분, 대답해 보십시오.

▲ 이날 미사에 참석한 신자와 수도자 1500여 명은 국정화와 노동개악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정현진 기자

3. 더러운 고기, 더러운 생각

7년 전.... 2008년 여름 바로 이 자리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우리가 무슨 말씀을 드렸습니까? 아이들에게 더러운 고기를 먹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더러운 생각, 더러운 역사관을 주입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더러운 음식으로 육신을 괴롭히려던 자들이 다시 더러운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어제는 강을 죽인 자들이 오늘은 우리의 얼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두었더라면 멀쩡했을 강을 건드려서 죽인 자들, 가만히 있으라면서 아이들이 죽어 가게 가만히 있었던 자들.... 살려야 할 것은 죽여 없애고, 없애야 할 것은 무럭무럭 자라게 키우는 자들.... 이런 자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성경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릅니다.

“너희 권력을 잡은 자들아.... 모태에서부터 잘못된 자들아, 나면서부터 빗나가서 거짓말만 하는 자들아.... 독사 같고 살무사 같아서 누구의 목소리도 듣지 않는 너희들아.... 너희가 정말 바른 판결을 내리느냐? 백성에게 공정한 재판을 내리느냐? 하느님 저들의 이빨을 부수소서. 야훼여 저 사자들의 송곳니를 부러뜨리소서.” 시편 58편의 말씀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다”라고 말했다지요. 워낙 기상천외의 화법을 구사하는 분이니 봐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진짜 혼이 없는 인간, 혼이 비정상인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 손에 들린 사회과 교과서 실험본에서,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또 히로부미”로 나옵니다. 의병학살은 “의병대토벌”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하는 ‘올바른 교과서’가 이런 식으로 이미 아이들의 책상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러면 유신독재는 뭐라고 해 놨을까요? “민주주의 제한정책”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제한이라구요? 독재면 독재지 민주주의 제한이라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망발입니까?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해대는 인간을 저는 “혼이 없는, 혼이 비정상인 사람”이 아니라 얼이 빠진 “얼빠진 사람”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얼이 맛 간 얼간이! 얼이 썩은, 어리석은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것이 바른 말, 고운 말, 우리말입니다.

4. 썩은 고름을 짜 내야 새살이 돋는 법

지난 백여 년의 우리 역사는 35년 단위로 끊어집니다. 일제강점 35년 만에 해방의 날이 왔고, 해방 돼서 35년 만에 5.18 광주항쟁이 있었으며, 광주항쟁부터 딱 35년이 흘러 오늘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일제강점 35년 내내 줄기차게 이어지던 독립투쟁을 밑거름 삼아 광복 이후 35년을 살았고, 역사의 밑천이 다 떨어지던 1980년 그해에 광주항쟁이 벌어졌고, 오월의 민중민주 항쟁을 밑거름 삼아 살다가 다시 35년이 흘렀는데, 그래서 광복 70주년이 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역사의 밑거름을 다 떨어져서 이제 다시 마련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걸 어디서 마련해야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가운데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하얼빈의 안중근이 되고, 우리가 평화시장의 전태일이 되고, 우리가 오월의 윤상원이 됩시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손으로 저 썩은 고름들을 짜 냅시다. 그래야 이 나라에 새살이 돋습니다.

광복 70년 중에서 전반 35년이 분단과 전쟁으로 시작하는 죽임의 시대였다면, 후반 35년은 각종 참사와 자살이 끊이지 않는 죽음의 시대였습니다. 학살의 시대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살의 시대가 개막된 셈인데, 이제 다시 학살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다 죽습니다. 그러니 모두 일어납시다!

우리는 꿈꿉니다. 사람의 나라, 사랑의 나라를 꿈꿉니다. 그 나라는 이룰 수 있는 나라, 반드시 오고야 마는 나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어떻게 해야 폭력과 죽음에서 해방된 나라,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는 민주주의를 만나게 될까요?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우리 몸에는 빛나는 항쟁의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밥을 나누고 피를 나누었던 성체성사의 대동정신이 살아 있습니다. 마산, 부산은 79년의 부마항쟁으로 돌아가고, 광주는 80년의 오월항쟁으로 돌아가고, 서울과 모든 도시는 87년의 시민항쟁으로 돌아가 방방곡곡에서 일어나면 됩니다. 친일매국노들이 보란 듯이 들고 일어났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습니까!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5. 너희가 기억하라, 너희가 행하라!

우리의 믿음, 우리 희망의 보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의 당부를 상기시켜 드리며 강론을 마칩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 기억하라 하셨고, 행동하라 하셨습니다. 기억하되 십자가의 기억을 남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행동하되 그 일을 남에게 미루며 물러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역사에 대한 기억을 남에게 미뤄서 지배당하지 말고,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을 내일의 남에게 미뤄서 종살이를 면하지 못하는 천한 인생은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잠시 침묵 중에 기도합시다. “국가권력의 폭압에 맞서 싸웠고 살인마귀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으며, 최후에는 십자가의 죽음을 방불케 하는 기꺼운 피의 봉헌으로 훗날 무수한 순교자들을 이끌어 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던 80년 빛고을 광주 오월의 시민들을”생각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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