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2년 만에 대규모 시국미사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더욱 절실해졌다. 어떤 처지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곳에 새로운 세상의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그 싹은 잘려도 다시 자라나기 때문이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11월 16일 서울광장에서 비상 시국기도회를 열고 매주 월요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기도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시국기도회를 연 것은 2013년 9월 ‘국정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미사’ 뒤 2년 만이다.
사제 200여 명, 신자와 수도자 약 1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시국 기도회에서 사제단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악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민을 밀어붙이고도 용케 살아남았던 권력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며, “종신집권을 꿈꾸던 어느 독재자가 검인정을 국정으로 바꾼 지 겨우 5년 만에 참담한 종말을 맞았던 사실을 되새겨 보기 바란다”고 정권을 향해 경고했다.
이어, “민족을 위한다는 역사, 민주를 위한다는 정치, 민생을 위한다는 감언이설에 더 이상 속을 수 없다”며, “국가는 개인의 사물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소유이니 다 함께 일어나서 죄를 따지고 꾸짖어야 한다. 엄정한 정의 없이 국가는 유지되지도 통치되지도 않는 바, 공정 회복을 모든 일의 우선으로 삼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미사에는 세월호 유가족과 노동자, 농민, 해직교사 등이 참석해 시국 발언을 이어갔다.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 씨는 지난 14일 민중총궐기에 대해 폭력시위라고 발표하는 정부에 대해 “우리의 몸짓은 폭력이 아니라 의거이며, 말도 안되는 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저항의식”이라며, 지금 정부의 말은 100여 년 전, 이완용이 독립투쟁을 하는 백성들에게 했던 말과 똑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이토록 비상식적인 국정화와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것은, 친일을 했던 이들, 독재에 부역했던 이들이 그렇게 해도 잘 살수 있다고 배웠고, 현재까지 잘 살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 엄중한 시기, 우리가 할 일은 용서하지 않는 것, 타협하지 않는 것이며, 세월호참사의 모든 책임자들을 강력히 처벌하는 것도 그 맥락에서 반드시 이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유경근 씨는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했던 일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바리사이와 장사치들을 쫓아낸 것이었으며, 예수가 진정 사랑하고 가슴으로 아파했던 이들은 권력자와 부자가 아니라 바닥에서 피눈물 흘리던 이들이었음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준식 연구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가 정권의 것, 독재자 후손인 대통령의 것이라고 선언한 것은, 과거 친일과 독재로 부끄러운 일을 했던 이들의 기록을 세탁하고, 독재자 후손들이 영원히 정권을 잡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하면서, 헌법과 민주주의 가치에 위배되는 국정 교과서는 반드시 막아야 하며, 정부의 고시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싸워서 반드시 철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김경봉 씨는 노조의 투쟁으로 회사가 문을 닫은 것이라는 김무성 대표의 거짓말을 바로잡기 위해 43일째 단식투쟁 중인 노동자를 기억해 달라고 호소하면서,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의 사람답게, 노동자답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국가톨릭농민회 정현찬 회장(미카엘)은 현재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하면서, “농민들은 20년 전으로 돌아간 쌀값을 보장해 달라고, 안전하게 농사짓게 해 달라고, 국민들이 비소 섞인 수입쌀을 먹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하러 온 것인데, 무자비한 물대포로 응답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이대로 간다면 오늘 한 농민이 죽어 가는 모습이 우리 국민 중 누구의 모습이 될지 모른다면서, 이 독재 정권, 살인 정권을 반드시 국민의 힘으로 심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날 강론을 맡은 사제단 대표 김인국 신부(청주교구)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악을 시도하는 정부에 대해 국민들의 눈을 찌르고, 율법서를 불태운 폭군과 같다며, “1980년 5월 이후, 35년 만에 다시 학살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다 죽을 테니 모두 일어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신부는, 우리의 몸에는 79년 부마항쟁, 80년 오월항쟁, 87년 시민항쟁의 전통과 성체성사의 대동정신이 살아 있다면서, “그날로 돌아가 방방곡곡에서 일어난다면, 폭력과 죽음에서 해방된 나라,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는 민주주의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국 신부는 “우리의 믿음, 희망의 보증은 예수 그리스도”라며, “스스로 기억하고, 행동하라고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당부를 따르며, 역사에 대한 기억을 남에게 미뤄서 지배당하지 말고,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뤄 종살이를 면치 못하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사가 끝난 뒤, 사제단과 참석자들은 서울광장부터 광화문 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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