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심포지엄

지금 대한민국은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이 극에 달하며,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일도 허다하다. 한 심포지엄에서 이런 현실을 조선후기 지배체제에 비춰 보며 그에 저항했던 순교자를 통해 신앙의 의미를 되새겼다.

9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이 ‘신앙과 정치, 조선사회 노론 지배체제와 순교신앙’을 주제로 16번째 정기 심포지엄을 열었다.

연구원은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와 순교는 노론으로 대표되는 당시 권력집단과의 충돌에서 비롯됐고, 당시 권력과 충돌했던 한국 천주교 신앙의 저항을 오늘날 되살리자며 심포지엄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당시의 순교가 사회적, 정치적 결단의 결과라는 발표에 대해, 신주공경과 제사를 거부한 순교자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 이영춘 신부(왼쪽)와 한만삼 신부. ⓒ배선영 기자

우선 한만삼 신부(수원교구)는 ‘조선사회 천주교 박해의 정치 사회적 의미와 순교의 신학적 고찰’을 발표했다. 수원가톨릭대학에서 사회윤리를 가르치는 한 신부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현실에 대해 답답함을 느껴 지금의 권력계층과 사회구조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지배계급의 사상적 폐쇄성과 배타성”으로 천주교가 박해를 받았다는 것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한 신부는 조선시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당시 신자들을 “반사회적 행위자로 규정하고 국사범으로 처형한 극도로 배타적이며 정치적인 사건이고 조직적 사회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순교에 대해 그동안 성인품에 올리기 위한 인물중심 연구에 몰두했다며, 이제는 ‘왜, 어떤 정치적 이유와 사회적 배경 때문에’ 박해받고 순교했는지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 학자들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가치관의 배경을 성리학에서 찾았다. 이성에 치우진 인식론으로 발전한 성리학이 심각한 사대적 교조주의와 배타성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성리학 학자들이 중심이 된 지배계층의 사상 논쟁은 정치 싸움이 됐고, ‘사상의 다름’은 ‘정치적 틀림’이 되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거나 없애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한 신부는 그래서 성리학자들은 천주교의 세계관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으며, 개인적인 욕망이라고 낮게 평가 했으며, 순교자 윤지충의 ‘양심적 자유’행위를 사상적, 정치적 사악함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한 신부에 앞서 발표한 이영춘 신부(호남 교회사연구소 소장)는 순교를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더욱 뒷받침해줬다.

이영춘 신부는 박해는 종교적, 사회적 요인 외에도 천주교를 왕권과 지배체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파악한 정치적인 요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치적인 당쟁, 세도정치, 쇄국정책 등이 박해에 영향을 미쳤다.

이 신부는 을사추조적발사건, 진산사건, 신해박해 등 천주교 박해의 굵직한 사건 등을 들며 당시 남인 내부의 갈등, 이로 인해 천주교가 노론의 공격대상이 된 사실, 그러면서 천주교를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게 된 과정 등을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사상이나 종교, 학문, 문화만이 옳고 바르다는 선민적 독선이 박해를 가한 지배체제가 가진 문제였으며,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 폐쇄적 행위가 오늘날까지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 신부 역시 성리학이라는 지배이념으로 만든 ‘배타적이고 종속적이고 불평등한 세계관’이 전통으로 이어져 지금도 정치권력과 경제적 부의 지배 안에서 세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 침탈에 주권을 넘겨준 이들이 양반 사대부였고, 노론이라는 독재 권력이었고, 세도 정치가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구조적 불의의 불평등에 맞선 근대적 사상가”이며, “불의한 권력에 맞선 저항”을 실천한 순교자의 영성을 한국 천주교회의 모든 신앙인이 끊임없이 배워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논평자 장동훈 신부(인천교회사연구소 소장)는 “순교가 개인적이고 심리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결단의 결과”라고 발표를 지지하면서도 “천주교 박해가 권력 장악을 위한 기득권의 정치적 학살이었다면 제거된 남인 학자들과 천주교 간의 심층적이고 구체적인 고리를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장 신부는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이 제사를 거부한 행위는 그 자체로 어디까지나 종교적 신념의 차원이라고 말했다.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원장 함세웅 신부는 발제자가 모두 남자며 사제인 것에 아쉬워하며 한 수녀에게 발언기회를 줬다. ⓒ배선영 기자

이날 심포지엄에는 120여 명의 평신도, 사제, 수도자들이 참석했지만, 대부분 연령대가 높았다. 질의응답 시간에 “왜 심포지엄에 젊은이가 보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나왔고, 이날 기조강연을 했던 김인국 신부(청주교구)가 “뼈아픈 반성을 한다. 젊은이의 변화에 부흥하는 형식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지학순 주교 당시에 신부들이 의기투합했는데, 지금도 그때만큼 사회가 어지러운데 왜 신부들이 의기투합하지 않는가?”, “본당차원에서 신자들의 현실참여를 독려할 방법” 등의 질문이 나왔다. 이에 김인국 신부는 본당에서 버스를 마련해 함께 현장을 가 보는 것과 “한국 순교자 영성”이라는 책을 읽어 볼 것을 권했다.

끝으로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의 원장인 함세웅 신부가 마무리를 지으며, 발제자가 모두 사제이고 남자인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여자와 평신도 중에서 발제자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으며, 참석자 중 수녀와 여성 평신도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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