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배척주의는 공포와 증오심 이용"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공화당의 예비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이주민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는 가운데 미국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이 트럼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정면 비판하고 있다.

이번 달에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세계가정대회를 주최하는 필라델피아 대교구의 찰스 차퓌 대주교는 9월 1일, 세계가정대회의 사전행사로 열린 한 토론회에서 트럼프의 문제 발언들을 겨냥해, 그리스도인들은 모국에서의 가난과 폭력, 그리고 미국에서의 송환 사이에 끼여 있는 이주민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에 따라 우리는 이주민 가정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면서 “이민은 인간에 관한 것이며, 따라서 윤리적 함의가 있다”고 말했다. 차퓌 대주교는 낙태, 동성애 등에 관해 아주 보수적인 주교로 평가받는다. 이번 세계가정대회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만이 아닌 몇몇 정치인들이 속지주의 국적주의를 포기하자고 하지만, 이는 아주 나쁜 생각”이라며, “그런 생각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최악의 공포와 증오심을 이용한다. 그리고 미국의 건국 원칙과 정체성 가운데 중요한 한 기둥을 훼손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반 이주민 발언으로 공화당 지지층의 인기를 얻자 공화당에서 제일 유력한 후보였던 젭 부시 후보도 동아시아인에 의한 원정출산을 비난하는 비슷한 발언을 했다가 급히 해명한 바 있다.

혈통을 따르는 속인주의의 한국과 달리 미국은 국적 취득에서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어서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누구나 미국 국적을 얻게 된다.

▲ "불의 기둥" 교회가 1928년에 출판한 "열렬한 십자가의 영웅들". 가톨릭 신자와 주정뱅이, 그리고 빨갱이는 미국 땅에 입국 금지라는 내용이다.(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차퓌 대주교는 속지주의 국적원칙은 “(첫) 이민 가정은 우리 국민으로 온전히 통합되지 않은 한 세대”(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그 다음 세대는 온전히 통합되었다고 본다는)라는 뜻이며, “사실상 무국적자인” 이들을 (국적을 주지 않아서) “영구 하층민”으로 만드는 것을 방지한다고 설명했다.

차퓌 대주교는 프랑스계로서 자기 성인 Chaput을 영어식 발음인 “채펏”이 아니라 프랑스어식으로 “차퓌”로 부르고 있다. 아버지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이었으며 어머니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이다.

차퓌 주교는 트럼프가 “호전적이고 과장된 수많은 발언으로 이민에 관한 토론을 추악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화당에 비해 온건한 이주민 정책을 펴고 있는 현 오바마 정부에서도 불법이주민 강제송환 정책으로 약 260만 명이 영향을 받았다고 개탄하고, 특히 그들의 미국에서 태어난 7만 5000명의 미국 국적 자녀들이 강제로 부모와 떨어지거나 부모와 함께 낯선 나라로 가야 했다고 지적했다.

차퓌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에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사이에 있는 람페두사 섬을 방문해 “무관심의 세계화”를 개탄했던 것을 상기하며 이번 미국 방문 때 한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했다. 그해 10월 북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난민들이 람페두사 섬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해 360여 명이 죽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또한 예수를 비롯한 요셉과 마리아의 성가정 자체가 이주민이었던 것을 상기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과 이주의 연관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편, 뉴욕대교구의 티머시 돌란 추기경은 얼마 전부터 트럼프의 반 이주민 과격 발언들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그는 6월 29일에 <뉴욕 데일리>에 실은 한 칼럼에서 이주민 배척주의(nativism)는 이주민은 위험하고 이주민이 없어야 미국인이 더 잘 살 것이며, 이주민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미국인들의 깨끗하고, 고결하며, 올바른 시민성을 훼손한다고 믿는다고 지적했다.

돌란 추기경은 자기가 주교가 되기 전에 대학에서 미국 종교사를 강의했었는데 “이주민 배척주의라고 불리는 것의 추악한 모습”을 가르치는 데 상당한 중점을 뒀다고 회고했다.

미국의 이주민 배척주의는 (아메리카 인디언이 아니라) 청교도 이래 이주해 온 백인 개신교인들이 미 대륙의 “토착 주인”이라는 전제 아래 그 뒤에 온 타인종과 타종교, 문화를 가진 이주민을 “미국적 정체성”을 위협하는 외부의 이질 요소로 간주한다.

돌란 추기경에 따르면 이들은 이주민이 “더럽고, 주정뱅이이고, 무책임한 자들로서, 깨끗하고, 백인이고, 개신교인이며, 영국계(앵글로색슨)인 미국을 위협한다”고 믿는다. 그는 흑백 인종차별단체인 KKK단 같은 것이 이 흐름에 속한다고 예를 들고, 현대에도 지금의 트럼프처럼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는 자신의 대선운동 출정식에서 “멕시코가 자기네 국민을 (미국에) 보낼 때, 그 사람들은 멕시코에서 제일 좋은 사람들이 아니고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보낸다.... 이들은 마약을 갖고 오고, 범죄를 갖고 오며, 강간범들이고, 물론 내 생각에는 좋은 사람도 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돌란 추기경은 학자인 레이 앨런 빌링턴의 말들을 빌어 이주민 배척주의를 “ 백인, 개신교인들의 가톨릭 이주민에 대한 조직적 적대감”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에서 가톨릭교회는 영국 청교도들의 첫 이주민 뒤로 아일랜드, 이탈리아, 폴란드, 독일 등지에서의 2차 이주민 대열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이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였다. 또한 지금 미국에서 논란이 되는 이주민 대부분은 멕시코와 중남미 등 가톨릭 강세 지역 출신이다.

돌란 추기경은 자기는 지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톨릭 신자로서 “구약과 신약에서 윤리적 절대명령으로 아주 자주 언급되는 것 가운데 하나인, 우리는 이방인을 환대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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