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르누아르-마리 드뤼케르,양영란 옮김, 신의 탄생, 김영사,2014

갓 구운 과자처럼 바삭하고 신선한 종교학 도서 ‘신의 탄생’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제자로 철학자이며 종교사학자인 프레데릭 르누아르와 프랑스 국영방송의 뉴스 진행자인 저널리스트 마리 드뤼케르의 대화로 탄생하였다. 신에 관한 다양한 종교들의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자신의 관점을 포기하지 않는 프랑스 지성인들의 유머와 역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재미있다.

▲ 프레데릭 르누아르-마리 드뤼케르,양영란 옮김,
김영사,2014

탄생 이전과 죽음 뒤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특권인 것 같다. 인간은 그 미지의 시간과 공간을 신들의 영역, 즉 초월의 세계로 이름 짓고 그 알 수 없음을 성스러운 신비로 이름 지었다. 그 알 수 없는 신과 그 신비에서 비롯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바로 종교였다. 즉, “종교”(religion)는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가늠할 수 있는 시간과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관계를 연결하는 re-ligare (연결하다)와 해명하는 re-legere (다시 읽다) 활동에서 기원하는 개념이다. 종교는 만 년 이전에 인간들과 그가 사는 세상, 나아가 세상을 포함하는 우주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길로서 등장하였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보다 더 세분화된 영역으로 인식의 범주들이 나뉘어져 독립하고, 그 남은 빈 둥지에서 종교의 기원을 기억하고 세상과 신들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작업은 종교학의 역할로 남겨졌다. 즉, 종교학은 다양한 종교들의 시원과 그 활동에 비로소 정당한 이름을 부여하면서 탄생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르누아르는 다양한 종교가 고백하는 다양한 신의 모습은 그저 다양한 문화 덕택에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 안에서 각기 다른 이해 관계의 권력과 사회체제들이 갈등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표상으로서 발생하고 변환되었으며, 그래서 세상에 알려진 신들은 인류학적인 흔적과 역사적 계보 안에서 그의 탄생을 추적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즉, 신은 인간을 만들었지만 그 신은 인간의 불림을 통해서 신으로 인식된 것이다. 마치 아이가 엄마를 부를 때, 비로소 엄마로서 탄생하고 인식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다. 그 엄마는 언어에 따라서 엄마, 맘마, 마더, 마미, 무터, 마드레, 마망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그리고 원시시대의 인류가 이해한 신을 엄마에 비유하는 것은 르누아르의 관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그는 이만 년 이상된 석기 시대의 작은 여성상들이 여성 경배를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초자연적인 존재, 즉 신을 재현한다고 볼 수 없다고(15쪽)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1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신의 계보에 관해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특별히 신앙하는 신이 없어서 다양한 신들의 탄생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거나, 자신이 신앙하는 유일신이 다른 신과 함께 섞여 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자신의 신을 사랑하는 성숙함이 있기 때문이다.

르누아르는 기원전 7000년 전에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고, 흑해와 에게 해, 동지중해로 둘러싸인 큰 반도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황소를 다스리는 모습의 여신상이 등장했다고 소개한다. 그런데 기원전 3000년-2000년 사이에 도시가 생겨나고 제국으로까지 발전하면서 사제 계급의 구성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화하고 신들 역시 여신에서 남신으로, 신들의 거주지는 땅에서 하늘로 전환되는 가부장제 사회가 등장했다고 전한다.(29-30쪽) 석기 시대의 여사제들이 자신의 몸으로 성스러움을 느끼고 전달했다면, 남성 사제들은 희생제의를 통해 성스러움을 만들기 시작했다. 희생은 신들에게 선물을 주고 그 대가를 요청하기 위한 교환방식에서 시작되어 희생양을 설정하는 것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폭력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정형화되었다.

여신이 지배하던 일신교 형태에서 남신과 여신이 공존하던 시대를 지나 남신을 섬기는 일신교로, 나아가 단일신으로 정착하는 과정은 가부장제 사회의 정착과 함께 이루어졌다. 다양한 여신을 물리치고 유일신의 형태로 정착한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이 유대교 신앙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유일신 신앙이 확립된 것은 기원전 721년에 아시리아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이 정복당하고,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에 의해 남왕국 유다가 정복당한 무렵이다. 바빌론의 유배시기를 거치며 유대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야훼 신앙을 근거로 하는 모세 오경과 그들 고유의 역사를 완성하였다.(47쪽) 야훼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전전하던 유랑민들에게 탈출을 허락하고 그 백성과 계약을 맺고 제사를 통해 섬김을 받는 신이었다. 그런데 유배에서 돌아와 페르시아의 보호 아래에서 성전을 재건한 사제계급과 함께 모세 오경을 읽고 재해석을 통해서 신앙 공동체를 이끈 유대교 회당의 랍비들은 말씀과 법으로 재구성된 유대교의 전통을 세우고, 야훼를 유일한 창조주로 섬기는 신앙을 토대로 유대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다.

유대교를 재해석하고 그들의 유일신을 인격적인 아버지로 불러서 사랑의 관계로 재정의한 이가 바로 예수이다. 그는 유대교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새로운 종교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79쪽) 르누아르는 예수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적 존재로서 예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예수 연구를 하는 오늘날의 연구 방향과 궤를 같이 하는 입장이다. 예수는 신이 인간들에게 드러나지 않으며 인간의 내면에서 말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을 분리한 것처럼 보이는 예수의 모습은 오히려 그를 정치적 인물로 드러나게 하였고, 결국 그는 십자가의 죽음을 맞게 되었다. 신들의 탄생 계보에서 역설적인 전환이 바로 여기에서 일어났다. 역사적 인간인 예수가 신으로 고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를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신으로 고백하는 새로운 공동체는 삼위일체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종교, 그리스도교로 정착되었다.(95-100쪽)

.... 신의 이름을 달리 부르면서 탄생한 종교들은 그리스도교 뒤에도 이슬람이 있고, 유일신과 관계없는 동양의 종교들은 여전히 다양하고 수많은 신을 동시에 신앙하거나, 신적인 존재가 아닌 깨달음을 통해서 신비와 관계를 맺기도 한다. 또는 인간의 이성 안에서 신을 이해하는 이들과,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들, 신에게 무관심한 이들, 신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을 신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 하는 인간들, 신의 이름으로 여성을 억누르는 것을 정의라고 굳게 믿는 마초들, 사제들의 추행 때문에 신을 포기하는 현대인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누아르는 여전히 인간을 부르는 신을 이야기한다. 종교를 넘어서는 영적 체험들과 그 감동에서 탄생하는 예술작품들,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서 대화하는 신비주의자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인용하여 인간의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는 신을 찾을 수 있다고, 그것이 미래에도 신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313쪽)

그런데 특정한 이름을 붙여서 신을 부르는 것과 구별해서 신성을 만나는 것은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왜냐하면 신은 초월적인 동시에 내 마음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110쪽) 즉, 인간은 초월적인 신을 인식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영성은 전통과 집단의 무게에서 개인을 해방시키고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진리로 이끈다. 또 영성은 집단에서 단절된 인간을 새로운 차원에서 다시 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이끈다.(113쪽) 신비하고 초월적인 영은 경계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인간들에게도 그 자유로움을 누리도록 유혹한다.

르누아르는 대담에 덧붙인 후기에서 간곡하게 당부한다: “인류의 인식과 진보를 저해하는 주요 장애물 중의 하나는, 지난 수세기 동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신앙 혹은 신앙의 부재가 아니라 교조주의적 신념의 확산이다.... 수많은 중대한 도전을 감수해야 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종교, 그리고 신이라는 문제 때문에 다툼을 벌인다는 것은 더없이 위험하면서 동시에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우리가 어떤 신앙심을 지녔든, 중요한 것은 우리를 하나되게 묶어 주는 보편적인 가치, 즉 정의와 자유, 사랑처럼 인류의 미래가 걸린 가치들을 키워나가고 보급하는 것이 아니겠는가?”(336-337쪽)

▲ 지난 5월 24일 ‘위민 크로스 디엠제트(DMZ)’ 대표단과 한국 여성단체, 종교계 회원들이 걷고 있는 모습.ⓒ이인희

신의 탄생과 연관하여 르누아르는 진한 농담 한마디를 남겼다. 그가 소개한 유대교의 농담은 천국에서 신이 아담이 아니라 하와를 먼저 만들었다는 것이다. 심심한 하와는 신에게 친구들을 만들어 달라고 졸랐고, 그래서 신은 아담을 만들었다. 그런데 신은 하와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아담에게 하와가 먼저 창조되었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남자의 자존심이 상할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신은 “이건 우리.... 여자들만 아는 비밀이야” 라고 말을 마쳤다.(279쪽)

르누아르의 농담을 받아서 신의 미래는 오래된 원형에서 찾을 수 있음을 확인한 사건 하나를 소개한다. 유대교의 농담을 들으며 성령을 떠올렸다. 누군가 Theology(신학)는 'The'에 관한 logic (학문)이라고 했듯이 서방교회에서 성령은 남성격인 Logos 로 불리고 모든 이성적 논리의 잣대가 되지만, 동방교회에서 성령은 여성격인 Sofia로 불리고 지혜를 의미한다. 따라서 Philosophia(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성령의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서, 즉 신의 호흡을 따라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루어 내는 21세기의 여신들이다. 그 여신들이 올해 2015년 성령강림절에 또 하나의 경계를 허물었다.

세계여성들이 평화운동단체인 '위민크로스디엠제트'(WCD)를 결성하고,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메어리드 매과이어와 201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라이베리아의 리마 보위를 비롯한 15개국의 여성 30명이 5월 24일 북에서 남으로 휴전선을 넘으며 한국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행진을 했다. 임진각에서는 그들을 맞이하며 한국여성들의 평화걷기대회가 열렸다. 대회장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81살 노년의 지혜를 발휘하여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을 북돋우는데 세계의 여성들이 함께 하는 기쁨을 나누었다. 임진각에서 열린 ‘국제여성평화걷기’ 축제에서 발표한 선언문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다 △이산가족의 재결합을 돕는다 △무고한 시민에게 해를 끼치는 제재 조치를 철회한다 △여성과 소녀에 대한 전시 폭력을 금지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성노예였던 위안부 여성들을 위한 정의를 바로 세운다 △세계 평화 구축의 주춧돌로서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전세계인의 지지를 촉구한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DMZ가 단지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평화의 올레길로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5월 24일은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이고, 올해는 성령강림대축일이었다.

종교와 정치는 사람이 맺는 관계를 해석하는 데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기억한다면 인류의 초기에 삶을 지탱하는 토대였던 어머니 여신은 맨처음 알려진 신이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엄마의 품에서 젖을 물고 있는 아기에게 세상은 엄마인 것처럼 초기 인류는 모성에서 신성을 인식하였고, 그 신은 생명과 음식을 주는 땅과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70년이나 지난 그 분단의 철책선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녹이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여성들은 분명 여신의 후예들이다. 초월적 신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살아 있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 응답한 신의 동반자들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적 지층을 발굴하는 사건들에서 우주와 세상(지구)의 신비와 내재적 신성의 포괄성을 발견하는 것은 새로운 신의 미래를 전망하는 신바람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인희

최우혁(미리암)
신학과 종교학을 교차하며 공부하였고, 영성신학과 마리아론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강사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한국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가톨릭 여성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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