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어 세상으로 1-윌리엄 페이든, “비교의 시선으로 바라본 종교의 세계”, 이진구 옮김, 청년사, 2004

신앙을 다루는 책들을 소개하는 첫 이야기로 굳이 종교학 개론서인 윌리엄 페이든의 “종교의 세계” 를 뽑은 것은 우리 안에 살아있는 성스러움과 그를 향한 욕망의 보편성을 읽어 내기 위해서다. 페이든의 책은 처음 종교를 접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각기 신앙하는 종교에서 동일한 거리 두기를 하고 종교들의 공통 분모를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 윌리엄 페이든, "비교의 시선으로 바라본 종교의 세계", 이진구 옮김, 청년사, 2004.
“종교”를 개념화하기 시작한 서구의 시각은 그리스도교를 기준으로 다른 종교들을 평가하고 상대화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저자는 정상적인 종교의 기준을 그리스도교로, 다른 종교들과 그에 따르는 삶의 방식을 타종교로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서구중심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는 그 특정한 시기와 지역의 공동체에 따라 정체성을 가진 고유한 형태로 형성된다는 것을 전제로 종교를 소개한다. 즉, 각각의 종교는 고유한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이해하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그 다양한 구성 방식들 사이에는 성스러움에 대한 인간의 공통 경험을 표현하고 “종교”를 종교가 되도록 하는 공통 요소들 – 신, 신화, 전례, 시간, 순수한 원형 등 – 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스러움에 기반하는 종교적 세계의 유형은 물리적 장소와 환경에 의해 다양한 종교적 제도들과 공동체로 구성되며,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면적 자기 변형과 초월을 따르는 경험을 통한 공동체로 형성되기도 한다. 이렇게 구별되는 세계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전승과 신화를 가지게 되고, 고유한 의례방식과 구별되는 시간을 통해서 성스러움을 경험하게 되며, 특정한 형태로 신을 체험하며 제물을 바치고 그 대가를 통해서 초월적 신비와 맺는 종교적 관계를 이어 간다.

이렇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제의를 통하여 종교적 원형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행위는 원형적 순수함을 회복하기 위함이며, 자신의 소유나 일부를 드리는 희생 제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순수가 부재하는 일상의 상황은 성과 속의 이분법적 갈등 상황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이분법을 초월하는 과정을 통해서 성과 속의 재통합을 이루어 내고 일상은 새로운 가치를 향한 승화의 전환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스러움을 향한 변증법적 과정은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공통된 요소로서 고유한 제의를 통해서 구체적인 종교적 실천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일상의 세계가 거룩한 공간과 시간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며, 그 안에서 성스러움으로 표현되는 종교성은 어떻게 실현되며, 일상의 더러움과 악함을 치유하게 되는가?

▲ 세월호참사를 추모하는 광화문의 시민의례.ⓒ지선미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것은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다양한 종교 의례들이다. 특별히 광화문광장이 도심 한가운데서 성과 속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재구성되면서 각 종교들의 의례와 함께 일상 안에서 구별되는 종교적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시민들의 추모행위들 역시 종교적 감수성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세월호 사건 뒤의 1년을 반성할 때, 시민들의 자발적 활동들이 기존의 종교들과 공존하며 억울한 희생과 사회악을 치유하고, 나아가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제안하며 시민적 성숙을 이루어내는 시민종교로 자리잡는 것에 주목할 수 있겠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미사가 예정되어 있던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과,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과 홍보가 진행되고 있었다. 교황 미사를 준비하기 위해 그곳에서 진행되던 행사 천막들을 철거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맞서 농성장을 지켜내기 위한 연속 기도회와 미사가 시작되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이루어진 수도자들의 기도는 마침내 그곳을 지켜냈고, 노천 미사로 예정되었던 교황미사는 한국 천주교에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잡은 “길 위의 교회”에서 교황님과 유족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감격으로 완성되었다.

사제들에게 성당에서 앉아있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명령한 교황의 메시지가 새로운 복음의 실천으로 증언되었고, 역사적으로 순교의 흔적이 있던 그곳에서 세월호의 희생자들이 새로운 희생제물로 전례 안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안전한 국가를 기원하는 성스러운 희생으로 새롭게 해석되었다. 즉, 광화문광장에서 이루어낸 성스러운 공간이 가톨릭 교회 안에서 “길 위의 교회” 전통으로 재확인 된 것이었다.

나아가 길에서 이루어지는 전례와 길에서 탄생하는 교회는 제도화된 자기종교 안에 갇혀 있지 않는 개방성으로 성숙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미사가 봉헌된 그 자리에서 개신교의 예배가 드려지고, 스님들의 기원이 올려지고, 제도적 종교를 넘어서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로하는 시민 제의들이 열린다.

세월호참사 1주년을 맞이하며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커다란 노란 배는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그 희생을 종교적 차원에서 승화하며, 새로운 사회를 기원하는 쪽지들을 싣고 있다. 그 배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저승을 향한 세월호의 또 다른 모습이지만, 위로와 희망을 싣고 미래를 향해 가는 배이기도 하다. 종교를 구별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통합의례에서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는 시민의례의 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숙한 시민의례 안에서 비로소 성숙하는 교회의 모습도 전망할 수 있겠다.

길거리에서 시작된 예수의 가르침과 치유를 따르고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전례 안에서 거듭나는 교회, 평신도들의 이름없는 희생과 함께 시작된 조선 천주교회의 전통에 충실한 교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나누며 열린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교회! 광화문의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전례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이 살아 숨쉬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아 ~ 바람이 많이 분다.
훌렁 훌렁 뒤집어 엎는구나
먼지보다 가벼운 어른들의 거짓말 세상
더 세게 바람아 불어라.
가짜 연민은 깡그리 날리거라.

아 ~ 비가 많이 온다.
겨우내 막혔던 울음이 터진다.
봄이면 새싹이 돋는다고 누가 말했는가
몰아쉰 아이들의 마지막 울음이 이제야 천둥으로 찾아왔구나.
우룽우룽 슬피 울며 오늘에야 찾아왔구나
하늘의 큰 울음이 이제야 터지는구나.

실컷 목놓아 울어라.
365일 흘러내리는 어미들의 피눈물을 어루만지며
굶어도 죽을 수 없는 아비의 텅 빈 뱃속을 눈물로 채워 넣으며

뒤집어진 바다는 하늘아래 헤쳐진 가슴을 여전히 드러내고,
하늘은 그 멍든 가슴을 쓸어안으며 이제야 바다로 내려앉는가
바다여 이제는 드러누운 아이들과 울다 잠든 어미들을 깨워라.
304개 새 별들을 받아 안고서, 제발 하늘이여 이제는 잠들지 말아라.
두 눈으로 부릅뜨고 새 빛으로 빛나라.

아 ~
아이들은 바다에 누워
별이 되고 바람이 되고

언젠가는 분명히 알게 되리라,
하늘의 별이 된 그 아이들이
온몸으로 마주한 이 땅의 진실들을!

그때까지
우리는 싸우리라!
별빛이 된 그 아이들을 따라서
흔들리며 흩어지며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기어코 가리라!
정의와 연민이 제대로 살아있는 그 나라를 향하여!
2015. 4. 16

 

최우혁(미리암)
신학과 종교학을 교차하며 공부하였다. 영성신학과 마리아론을 전공으로 논문을 썼으며 작업을 한다. 서강대학 강사로 학생들과 함께 일상을 나누며, 한국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가톨릭 여성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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