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레시다 문헌 - 92]

6.1.2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장소들

254. 화해의 성사는 죄인이 단일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이 성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그분의 자비로우신 용서의 선물을 주시며, 사랑은 지은 죄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며, 개방적이고 관대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그분을 선포하는 기쁨과 열정을 우리에게 되돌려 주십니다.

 
255. 말씀과 성찬례로 길러진 제자는 개인 기도와 공동체 기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우정의 관계를 맺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받들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매일 드리는 기도는 선교하는 제자의 여정에서 은총의 수위성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그러므로 “천상 스승의 입술로부터 언제나 새로워지는 기도를 배우듯이 우리는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ueunte), 32항 참조) 
 

256. 예수님은 믿음과 형제애 안에 살아 있는 공동체 속에 현존하십니다. 그분은 공동체 속에서 그분의 약속을 이루십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예수님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삼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숨겨진 자신의 생명을 살기 위해(콜로 3,3 참조) 애쓰는 모든 제자들 안에 그분은 계십니다. 그들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하였듯이 그분과 깊은 일치를 이룰 정도로 예수님 부활의 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분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목자들 안에 계십니다.(마태 10,40; 루카 10,16 참조)

주교들은 교회의 목자들이므로, 주교의 말을 듣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고 주교를 배척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인류의 빛’(Lumen Gentium), 20항)

정의와 평화 그리고 공동선을 위한 투쟁에서 때로는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가면서까지 증언하는 이들 안에, 그리고 우리가 때로는 고통스럽게 압도당하는 한계를 지닌 모든 인간적 현실 속에서도 더욱 정의롭고 더욱 형제애적인 세상을 추구하게끔 우리를 청하는 우리 민족들의 삶의 모든 사건들 안에 그분은 계십니다.

257. 우리는 또한 가난하고 고통 받고 병든 이들 안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분을 만납니다.(마태 25,37~40 참조) 그들은 우리의 헌신을 회복시켜 주고 믿음을 증언하고 고통을 인내하며 삶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힘을 줍니다.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이 실제로 우리를 복음화하는 일이 그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의 존재와 친분을 깨닫고 배척당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교회의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함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ueunte), 49항 참조)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 신앙의 결정적 차원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그들 안에서 예수님의 고통 받는 얼굴을 관상하는 데서부터,(‘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ueunte), 25항 참조) 그리고 고통 받고 버려진 이들 안에서 그분과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한없는 존엄성을 지녔음을 친히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그 마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가난한 이들과 친구가 되게 하고 그들의 운명과 우리를 일치시킵니다.
 

번역 : 배우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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