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메리놀 외방선교회 하유설 신부

가톨릭일꾼운동의 창립자, 도로시 데이

사람들이 선해지기 쉬운 사회는 협력을 통해 함께 사는 사회

<가톨릭일꾼 Catholic Worker>를 발간했던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는 “사람들이 더 선해지기 쉬운” 사회를 갈망했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이 더 선해지기 쉬운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사회일까요?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에 관련된 일 중에는 재미있는 것이 많아요. 그들이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과 직접 같이 생활한 것이 한 가지 핵심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들의 언어로 설명한 것이 다른 한 가지입니다. 노동자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것, 저는 그걸 ‘관점 이동’이라고 불러요.

피터 모린은 생각하는 삶에 대해 고민한 사람이에요. 그는 대화를 통해서 의식을 넓히려고 노력했어요. 다른 계층, 다른 나라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이것이 환대의 정신입니다. 그러면서도 노동자들의 아픔을 보다 넓은 평화와 가난에 대한 이해로 연결시켰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왜 가난한지, 그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노력하면서 의식을 넓히는 것 그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죠.

도로시 데이는 직접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피터 모린은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점에서 둘이 함께 일을 한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가난에 대해 이해하고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구조나 우주까지 연결시키는 것이죠. 사람들이 더 선해지기 쉬운 사회는 ‘관점 이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 겁니다.

<사목헌장>은 평화를 정의의 실현이라고 말하는데요, 우리 사회는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지만 그 이후에도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의 삶이 크게 개선되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진보정권이라던 지난 10년과 지금의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오히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등 노동환경은 오히려 후퇴한 것 같아요.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로, 민주화가 많이 되었지만 아직도 사회구조, 정치구조, 경제구조가 많이 쇄신되지 못한 것을 지적하고 싶어요.

이 시대의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보세요. 최강대국이라는 미국도 지금 무너지고 있고, 일자리 잃은 사람들도 많고, 비정규직도 많습니다.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문제를 보면 자본주의 구조가 이제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부자 나라 미국은 다른 나라에 공장을 지어 생산하면서 저임금을 주고, 그 나라의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기고 있어요. 이런 것은 올바르지 못해요. 구조가 한계를 보이는데, 특히 이번 경제위기가 한계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요.

물론 우리는 아직 새로운 구조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아직도 자본주의만이 퍼지고 있고요. 아직 낡은 구조 속에 살고 있으니까 한계에 부딪히면서 후퇴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는 창의적으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 구조도 그렇고 정치구조도 그렇죠.

다행히 새로운 경제구조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분주히 일어나고 있어요. 한국에서 도농 간의 연대, 농촌 살리기 운동, 협동조합 같은 것은 창의적으로 새로운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죠. 이런 시도들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협력을 통한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성령이 이끄는 대로 두려움 없이 사회 속으로 들어갈 때 교회는 희망이 있다

가톨릭일꾼 노동자 회원들이 시위에 나서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세상 안의 교회’를 선언하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회로의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교회 안에는 공의회의 정신에서 후퇴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요, 후퇴하는 교회를 보면서 아쉬운 점이나, 교회 쇄신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공의회를 통하여 분명 우리 교회는 새로운 단계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고 그래서 후퇴도 하는 거죠. 그러나 공의회에서 논의했던 정신과 그 문헌들이 남아 있고,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요.

일면 후퇴한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후퇴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후퇴하면 안 되죠. 다행히 성령께서 계속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뜻에 따라 교회를 좀 더 평등한 교회로, 좀 더 파트너십적인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부분적으로는 그런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고 있어요.

공의회 이전의 삶의 양식으론 우리 교회가 이 시대에 적응할 수 없어요. 공의회를 통해 교회는 사회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현대사회에 대해 문도 열리면서 현대사회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 문이 열려서 교회가 이 사회의 좋은 모습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쇄신하면서 교회가 사회와 함께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지나치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안에 있는 성령을 신뢰하여 성령이 우리를 이끌 수 있도록 두려움 없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회로 부르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죠. 하느님이 이끄심대로 이 시대로 들어가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하느님을 새롭고 깊게 발견할 수 있고,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발전 안에서 교회도 발전할 수 있어요.

한 사람이 아니라 네트워킹이 중요한 시대

우리 교회 안에는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이나 김수환 추기경 같이 괜찮은 사제들도 많지만, 이제는 쉽게 이동하고 인터넷으로 누구나 접촉할 수 있는 지구촌 시대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삶이 부딪히는 문제가 크고 복잡해졌어요.

예전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영향을 크게 끼쳤다면 이제는 그룹을 통한 영향이 큽니다. 어떤 한 사람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노동운동에서도 어떤 한 사람이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네트워킹을 통해 움직이는 시대입니다. 미국에서 대통령으로 오바마가 나왔지만 이 한 사람으로만 움직임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이끄는 한 사람이 아니라 네트워킹을 통한 그룹의 힘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천주교 안에서도 이런 소그룹들이 중요하고요. 촛불집회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어떤 한 사람이 나와서 촛불을 들자고 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과 네트워킹을 통해 거리로 나왔잖아요. <지금여기>같은 그룹들도 그런 면에서 중요합니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불의 앞에선 분노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 고동주가 석방되던 날, 찾아가 준 하유설 신부

신부님에 대해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나는 이들에게 항상 겸손한 자세로 대하시는 신부님을 보면 가끔 ‘화를 낼 줄 모르나?’ 싶기도 하고요(웃음). 누군가에게 분노가 느껴질 때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화를 내죠, 당연히(웃음). 특히 불의 앞에서는 당연히 화가 나요. 개인적인 어려움 앞에서도 화가 나고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화가 날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앤서니 드 멜로 신부님이 좋은 방법을 제시하는데, 우선 한걸음 뒤에서 갈등이 생긴 상황을 보는 거죠. ‘내가 왜 화가 났나?’ 생각하며 제 감정을 우선 봅니다. 그 뒤에 그 사람의 감정도 보죠. 그 사람의 말을 통해 상대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해해 보고,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곰곰이 관찰도 해요.

상대가 무슨 의도에서 제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고민해 보죠. 아니면 악의 없는 실수였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아닌데 저한테만 유독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럼 제 안의 무의식을 보려고 해요. 제 안의 그림자를 보려고 노력하죠. 이 상황 안에서 제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도 고민해봅니다.

바로 즉시 이야기하면 그저 싸움만 되기 때문에 잠시 뒤로 물러서서 마음이 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에요. 마땅한 해결 방법이 있으면 그때 비폭력대화를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하죠.

그러나 노동자 탄압 같은 불의 앞에서 화가 나면 조금 다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멸시, 탄압이 있으면 당연히 분노를 느낍니다. 그 화를 가지고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노동자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하는데요, 우선 제 역할은 뭔가 고민합니다. 누가 여기에 관심이 있나, 누구와 같이 할 수 있는지도 고민하고요. 촛불도 들고 인터뷰도 하고 기도도 하고 미사도 해야겠죠. 혼자만이 아니라 같이 하면서 건설적인 방법을 강구해봅니다. 그냥 화가 나는 것을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건설적으로 선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백승덕/ 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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