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불의한 권력앞에 대항하며 공동체를 건설한 정일우 신부

 

제정구기념사업회에서 <정일우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정일우 신부는 예수회 회원으로 1935년 미국에서 태어나 1960년 한국에 들어와 제정구씨와 빈민운동을 하다가 아예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책을 처음 봤을 때 짧은 문장으로 이어지는 글들이 신문기사를 보는 듯 했다. 아름답고 따뜻한 묘사 없이 사실을 간략히 설명하는 문장을 보고 글쓴이는 정일우 신부가 직접 쓴 글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정일우 신부 말을 받아 쓴 글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건조 하게 보였던 책을 보자마자 아무런 지루함 없이 끝까지 읽고 말았다. 글을 읽노라면 그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했고 때론 눈물도 흘렸다.

이 책은 내면의 영적여정을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내면의 갈등, 고통 속에서 깨달아가는 하느님의 섭리, 내적인 변화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철거민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 그들과의 갈등, 조촐한 잔치, 기쁨 등이 있다. 그러나 너무나 간략해서, 때로는 건조하게 그려내는 정일우신부의 삶이 반대로 하느님나라와 신앙의 신비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2000년전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다가왔다’고 선포한 이후, 교회 안에서는 많은 신비가들과 영성가, 신학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많은 책들이 전문적인 용어사용, 논리적 해설에 치우쳐 일반 평신도가 읽기에는 어려운 책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려운 신학용어 하나 없이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활과 하느님의 나라를 쉽게 느끼고 그려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주로 정 신부와 철거민들이 함께 살아가며 겪는 일상을 말한다. 신부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철거민들 속에서 정신부는 철저히 그들과 하나가 된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동료, 같은 동네 철거민으로 다가선다.

하지만 철거민들이 쫓겨날 판이면 이들과 함께 살아갈 땅을 찾아 직접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간다. 이 과정 안에서 오해와 싸움도 생겨 정신부는 그의 동지 제정구씨에게 같이 죽자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죽음을 각오하는 심각한 상황도 있지만, 정신부와 철거민들은 천막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이 살아갈 마을을 직접 만들고, 소박하게 잔치를 벌이며 기뻐한다.

책에서 정 신부와 같이 생활했던 여러 철거민들은 힘겨웠던 생활과 더불어 한결같이 정신부와 기쁘게 살았던 시절을 이야기 한다. 가진 것 없어 가난한 처지에도 공동저녁식사 후 장난기 어린 농담으로 행복하게 보냈던 시간, 마을 공동잔치, 다른 철거민들을 도와주는 연대활동 등.

어떻게 이들은 그토록 기쁘게 생활할 수 있었을까? 철거민이라는 깊은 마음의 상처, 가난한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희망,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연대활동은 어떻게 가능할까? 철거민으로 살아온 삶, 가난하고 억눌려, 이리저리 쫓겨 살아온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이 아름답고 행복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하느님의 섭리, 신앙의 신비가 아니면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을 부활한 삶,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온 삶이라고 설명하면 틀린 말일까?

종교적 규율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공동체 철학이고 정신이였다는 정 신부, 그러나 그는 한곳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떠나는 삶을 살아간다. 이어지는 철거민 공동체 건설 나중에는 농촌공동체까지 이어지는 삶의 자취, 그 안에서도 정 신부는 자신의 내적투쟁에도 엄격했다. 매년 십여 일씩 단식기도를 했던 정신부는 2004년 11월에 64일 단식기도를 하고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다.

"우리 예수회 회원들은 쉼이 필요하고 마음이 힘들거나 어려우면 곧잘 괴산에 계시던 신부님을 찾아뵙고 며칠씩 쉬려 했다.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그저 신부님과 함께 밥상을 대하고 술 한 잔 기울이고 이야기나 몇 마디 나누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나면 모두들 다시 기운을 추슬러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어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곤 했다."라고 유시찬 신부는 말한다.

1973년 정 신부가 서강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주위사람들이 물었다. "신부님 여기서 뭐 하세요?" 정신부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여기서 살고 있어요" 이렇게 시작된 정신부의 삶은 후배수사에게 ‘나는 다시 태어나도 예수회 회원이 될 것입니다’라고 끝맺고 있다.

여섯 살 어린애가 철거용역들에게 목숨을 잃자 ‘씨팔’이란 말을 하루 종일 달고 다녔던 사람, 정신부가 내뱉은 욕이 거룩해 보이는 것은 글쓴이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려운 신학용어 없이 부활과 신앙의 신비를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 ‘정일우 이야기’를 독자들도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두현진/ 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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