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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떼제 수사일까?[신한열의 떼제 일기 - 17]

“왜 떼제의 수사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다. 일반적인 호기심도 있지만, 거기에는 “많은 수도회 가운데 왜 하필 떼제를 택했느냐? ”는 뜻도 포함된다. 초교파 국제공동체에다 프랑스에 사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좀 독특하게 보이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여러 수도회를 비교 검토한 끝에 떼제를 택한 것이 아니다. 가까웠던 수도회를 손꼽자면 '예수회'가 첫째가 될 것이다. 20대 시절 여러 해 동안 만났던 예수회원들의 사랑과 모범, 동반과 가르침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든든한 바탕이 되었다. 한번도 표현할 기회는 없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나는 훌륭한 예수회 교육의 산물이다. 그분들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무엇보다 '남을 위한 삶'을 배웠다. 자신의 재능과 소질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키우되 “배워서 남주라”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 지식과 교양을 정의를 위한 투신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을 예수회원들에게 배웠다. 그분들 곁에서 융통성과 포용성 있는 신앙을 접하고 나는 얼마나 큰 해방감을 맛보았던가? 거기서 나는 자연스럽게 국제적인 시각도 익혔다. 하지만 그때는 수도생활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을 떠난 뒤에도, 또 떼제의 수사가 된 이후에도 여러 나라 예수회원들의 삶과 글은 계속 나를 비추어 주었다.

   
ⓒ신한열
수도 생활의 위기 ?

며칠 사이에 프란치스코회, 베네딕도회, 살레시오회의 수도자들이 거의 동시에 떼제를 다녀갔다. 우리는 역사와 전통이 있고 틀이 잘 갖추어진 수도회와 교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먼저, 로마에서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의 총장 수사와 책임자 6명이 왔다. 며칠 뒤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80여 명의 유기 서원자와 양성 담당자 몇 분이 왔다. 우리는 식사 때마다 이분들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20여 년 전에도 당시의 총장 헤르만 수사와 수백 명의 형제들이 떼제에서 며칠 동안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오늘날 가장 잘 새겨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로 떼제를 지목하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에는 우리 수사들이 아시시로 가서 성인의 족적을 따라 프란치스칸들과 함께 기도하고 나누었다. 그때 아시시에 갔던 우리 형제들 가운데 내가 제일 어렸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당시에 떼제에 아직 없었던 후배 형제들이 절반 가량 된다. 공동체에서 내 위치가 꼭 중간이다.

작은 형제회는 최근에 사회학자인 한 살레시오 회원의 도움으로 전 세계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내년에 열릴 총회에서 그 결과를 토대로 수도회가 당면한 모든 문제와 도전에 대해 검토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온 미국인 마이클 페리 총장 수사는 이렇게 얘기했다.

“1969년에 우리 회원은 약 2만 8000명이었어요. 지금은 1만 3500명입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65살 이상 형제들 일곱 명에 45살 이하인 형제 한 사람이 있다면, 아시아나 아프리카에는 45살 이하 네 명에 65살 이상이 한 사람 꼴인 나라도 많습니다. 어려운 것이 확실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마다가스카르, 콩고, 베트남에는 젊은 회원들이 넘쳐납니다. 중앙아프리카, 수단,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도 성소자가 있어요.”

   
▲ 떼제 공동체에서 모임을 가진 작은 형제회 회원들 ⓒ신한열

우리의 나눔은 격식이 없었고 솔직 담백했다. “수도자로서, 프란치스칸으로서의 은사와 신원(정체성)의 위기입니다. 놀랍게도 수도원에서 5년, 10년, 15년씩 살다가 갑자기 떠나버리는 형제들이 있어요. 어려움을 얘기하고 상의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기로 결정하고 나서 알리는 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의 경우, 처음에는 몰랐던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문제가 한참 뒤 드러나기도 합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핸드폰 등에 빠져,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거나 공동생활에서 고립된 채 사는 사람도 생겨 납니다.”

보편적 우애를 살아가기

종신 서원을 쉽게 포기하는 문제와 공동 생활이 약화되는 위험은 오늘날 여러 수도회에 공통적인 것 같다. 마이클 수사는 우리 시대야말로 보편적 우애를 살아가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새삼 느꼈지만 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후예들에게는 평온함과 선함, 단숨함이 배어 있다. 작은 형제들은 시리아와 레바논, 리비아와 중앙아프리카 등 전쟁과 폭력이 극심한 곳에 여전히 남아서 차별 없이 모두에게 형제애를 베풀고 있다.

긴 밤색 수도복을 입은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눈에 익숙해질 때쯤 독일에서 성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베네딕도회원 18명이 도착했다. 인솔자를 제외하면 모두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양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유서 깊은 여러 수도원을 방문한 다음 마지막으로 떼제에서 며칠 머물렀다. 한국인 세 분과 중국인 한 분도 포함되어 있어 반갑게 만났다. 다른 베네딕도회와 달리 오틸리엔 연합회는 선교 수도회다. 예레미아스 수석 아빠스는 “기도와 전례가 중요하지만 그것을 선교와 따로 떼어서 생각하거나 살 수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분들은 최근에 쿠바에 수도원을 세웠다. 원장은 이번에 함께 온 아프리카 토고 신부님이었다.

토요일 늦은 오후 우리 형제들은 모두 작은 형제회와 베네딕도회 수도자들과 함께 떼제의 언덕 아래 샘터로 순례를 했다. 살레시오 회원이자 공동체의 오랜 친구인 인도의 토마스 메남파람필 대주교도 우리와 함께 했다. 따뜻한 가을 햇살 아래, 부활 이콘(성화)을 모시고 떼제의 노래를 반복해 부르며 걸었다. 세 수도회의 복장이 자연스럽게 뒤섞였고, 떼제에 머물던 순례자 수백 명이 합류해서 행렬은 아주 길게 이어졌다.

   
▲ 순례 행렬 ⓒ신한열

로제 수사는 언젠가 “떼제는 수도생활의 커다란 나무에 접붙인 새싹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20대 시절 베네딕도 규칙에 관해 연구하고 논문을 쓴 그였다. 떼제에 아직 개신교 출신의 형제들만 있을 때, 작은 형제회의 수사 3명이 와서 8년 동안 함께 살면서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중 한사람인 93세의 타대 수사도 이번에 우리를 방문했다.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자들도 여러 해 동안 떼제에 머물렀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갈라진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향한 염원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분들에게 배웠다.

다른 수도회와의 교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떼제가 여러 대륙에서 개최하는 젊은이들의 국제 모임이 살레시오 학교에서 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 예수회와 작은 형제회를 비롯한 여러 수도회의 협조를 받는 경우도 흔하다. 나만 하더라도 한국, 중국, 독일을 다니면서 “베네딕도회의 환대”를 수없이 많이 받았다. 그러고 보니 35년 전 고등학생 시절, 내가 떼제를 처음 알게 된 곳도 왜관의 베네딕도 수도원이었고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통해서였다. 그 뒤에 떼제의 수사를 처음 만난 곳은 다름 아닌 예수회 대학에서였다. 어떻게 보면 그분들 덕분에 내가 오늘 떼제에 있게 된 것이기도 하다. 감사하는 마음이 새삼 커진다.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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