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열의 떼제 일기]

한동안 연재가 중단되었던 '신한열의 떼제 일기'가 다시 찾아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꾸준히 기고해 주시는 신한열 수사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3년 반 만에 독일을 다녀왔다. 쾰른 근처 비퍼퓌어트라는 도시에 일본 불교 일련종(日蓮宗)에서 세운 다이세이온지(大聖恩寺) 설립 15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받아서다. 이 지역의 불자와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일본에서 대규모로 순례단이 왔다. 오전에는 화려한 예복을 갖춰 입은 스님들의 불교 의식으로 시작해서 일련종 지도자들과 비퍼퓌어트 시장, 지역 가톨릭, 개신교, 대표들의 기념사와 축사가 길게 이어졌다.

오후에는 이 절의 설립자 다케우치 닛쇼 스님과 인도 바사이에서 온 펠릭스 마차도 대주교, 터키 이슬람 연합의 사무총장 베키르 알보가 박사의 발제와 토론이 있었다. 원론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종교간 대화였다. 자신의 신앙을 버리거나 적당히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차이를 초월하려는 노력이 강조되었다. 다원화된 서구 현대 사회를 유지시키는 것은 바로 대화라는 것에 모두들 공감하였다. 다른 종교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그 대화는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 가고 우애를 건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토론이 끝날 무렵에 청중 가운데 한 여성은, 여러 종교의 보통 신자들 특히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나누는 대화와 우정의 관계에 주목했다. 중요한 지적이었다. 두 주 전 떼제에서 종교간 대화 모임이 열렸을 때, 유대교, 이슬람, 가톨릭, 불자 여성들이 친자매처럼 정답게 어울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 다이세이온 사 15주년 기념식에서. ⓒ신한열

새로운 패러다임과 가치

다이세이온지 15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나는 전날 밤에 도착해 일본 순례단과 한 호텔에서 묵었다. 이튿날 아침 행사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옆에 앉은 분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일본에서 함께 온 50명은 하나같이 사업을 하는 분들이었다. 모두 일련종 신도들은 아니지만 불자들이고 다케우치 스님의 제자들이라고 했다. “스승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았느냐”고 물어보니 “새로운 패러다임과 가치”를 배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선했다. 사실 참된 종교란 무릇 사회 통념이나 기존 가치를 넘어서는 시각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던가? 문제는 그것을 실천할 의지와 힘을 주어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느냐다.

이 사업가는 하네다 공항에서 식당을 개업할 무렵부터 스님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여러 곳에 체인을 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경영하는 공항 식당의 무료 음료권을 여러 장 내게 건네주었다. 그가 말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더 알고 싶었지만 버스 여정이 너무 짧았고 공통의 언어가 충분하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처세술이나 성공학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일본 순례단 대부분이, 독일에 있는 이 사찰의 후원자들인 것 같았다. 순례단의 짧은 독일 일정에는 쾰른대교구와 대성당 방문, 그리고 메쉐데(Meschede)의 베네딕도 수도원 체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인 사업가들은 “우리가 월요일 저녁에 수도원에서 식사를 하는데 굉장히 좋겠지요?“ 하고 기대 섞인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일본의 사업가들이 수도원의 조촐한 식단에 실망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15년 전 일련종의 한 분파가 종교간 대화를 목적으로 가톨릭이 대다수인 이곳에 불교 사찰을 세우자 처음에는 지역 주민들이 무척 경계했다.

2년이 되지 않아 누군가 법당에 불을 질렀다. 방화범은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이런 시련과 좌절에도 일본 불자들은 법당을 재건했다. 이들이 그리스도인을 불교로 개종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주민들도 차츰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쇼묘를 연주하러 들어가는 일본 스님들. ⓒ신한열

불자들이 부른 떼제의 노래

이날 오후 약 200명이 참석한 심포지엄을 시작하기 전에 1시간 동안 연주회가 열렸다. 일본에서 온 한 무리의 스님들이 먼저 일본 전통 불교 음악인 쇼묘를 연주했다. 소박하면서도 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어서 내가 인도할 순서였다. 주최 측에서는 떼제의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다. 이 지역에서 떼제를 다녀간 사람들을 중심으로 25명 가량이 모두 6곡을 불렀다. 나는 원어 가사와 독일어 영어 일본어 번역을 준비해서 회중들에게 미리 나누어 주었다. 노래 중에 아주 짧은 성경 구절과 기도 그리고 침묵을 곁들였다. 마지막 곡 Laudate omnes gentes는 일본말로 불렀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떼제의 노래가 늘 그렇듯, 몇 차례 반복되자 일본말을 할 줄 아는 몇몇 독일인들이 따라했고, 이어서 일본 스님들도 함께 부르는 것이 아닌가. “스베테노 히토요 슈오 타타에요.” (주님을 찬양하라, 온 세상이여!) 독일의 사찰에서 일본 불자들이 부른 떼제의 노래....

이날 행사를 마치고 역까지 나를 태워 준 부부에 의하면, 근처에는 베트남의 스님들이 세운 선원도 있다. 자신들을 포함해서 이 지역의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들이 가끔 간다고 한다.

불자나 이슬람 신자들과 함께 만날 때면,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는 정말 사소하게 느껴진다. 하긴 차이가 클수록 대화가 많아지고 더 풍부해지는 법이다. 가깝기 때문에 대화가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지금 유럽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이슬람의 이해와 이슬람교인과의 대화다. 그런데 종교간 대화는 무엇보다 “믿는 이(신자)”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그런데 유럽 교회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신한열

신자가 감소하는 독일 교회

떼제에는 독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온다. 나는 몇 해 전에 소임을 바꿀 때까지 18년 동안 독일인들을 맞이하고 동반하는 책임을 졌다. 매년 한두 차례씩 독일을 방문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독일 교회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지켜봐 왔다.

그런데 그 시기의 독일교회를 특징지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구조 조정”이다. 가톨릭의 경우 여러 본당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신자들의 반발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이 어려우면 통합사목단위 (Seelsorgeeinheit)라는 말로 여러 본당을 하나로 묶었다. 이런 현상은 거의 모든 교구에 공통적이다. 신자수의 감소 탓도 있지만 사제 부족이 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내 조카들이 첫영성체와 견진을 했던 작은 도시의 성당에는 몇 해 전부터 사제가 상주하지 않고 토요일 저녁에만 미사가 있다. 신학생 수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어서 이 사정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폴란드와 인도 케랄라에서 '수입'된 사제도 많아졌다.

전통적으로 개신교 지역이던 북부 독일에는 세계대전 뒤에 이주해 온 가톨릭 신자들이  경제 부흥기에 지은 성당이 많다. 그런데 영광의 30년이 지나고 1990년대부터는 문을 닫는 경우가 여럿 생겼다. 자기 손으로 지은 성당이 문을 닫거나 다른 용도로 팔릴 때 신자들의 실망과 반발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역피라미드의 인구 구성도 신자 수가 계속 감소하는 한 요인이다. 여기에다 세제 개혁으로 교회의 수입은 더 줄었다. 독일에서는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 신자 수만큼 교회와 교구에 전달한다. 비록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세금을 내는 명목상의 신자도 적지 않다. 보통 소득세의 10분의 1 정도가 교회세(Kirchensteuer)로 원천징수되는데 소득세율이 낮아지면서 교회 수입이 자동으로 줄었다.

거기에다 결정타로 지난 20년 동안 교회를 탈퇴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났다. 독일 주교회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가톨릭교회를 떠난 사람이 18만 명이다. 한 해 전보다 50퍼센트가 많은 수였다. 그해에 림뷔르흐교구에서 주교관 수리비용으로 3000만 유로를 지출한 것이 연일 보도된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림뷔르흐교구에는 탈퇴자 수가 전해에 비해 80퍼센트가 늘었다. 어쨌든 매년 한 도시의 전체 인구만큼이나 교회를 떠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교회를 탈퇴하는 사람은 대개 오래 전에 이미 교회에서 멀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를 탈퇴한다고 세무소에 신고할 때는 그 사유를 적어야 한다. 그런데 개신교 신자들이 내세운 교회 탈퇴의 이유 가운데 “교황(의 입장과 가르침)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아주 많았다는, 웃지 못할 사실도 있다. 비신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종 이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북독일 개신교회의 책임을 맡고 있는 한 친구는 독일 교회의 현황을 이렇게 요약한다. “교회에서 세 명의 장례를 치르면 한 명에게 세례를 주고, 세 명이 교회를 탈퇴하면 새 신자가 한 사람 들어온다.” 이러니 교회의 미래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독일 개신교는 매년 최고 20만 명가량의 신자를 잃었고 1950년에 전체 인구의 50퍼센트이던 신자율이 이제 28퍼센트가 되었다. 가톨릭은 탈퇴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탓에 이제는 인구의 30퍼센트가 되었다. 마틴 루터의 나라에서 개신교보다 수가 많아졌다고 기뻐들할까? 하지만 교회의 생명이 신자 수에 달린 것은 분명 아닐 터이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교회에 나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전통이나 관습은 지금의 노인 세대로 끝이 난 듯하다.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과거와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교회는 장차 신앙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소수가 모이는 곳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 현상이 벌써 시작되었다. 그에 따른 문제와 새로운 희망과 함께.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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