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공감, 대화, 그리고 열매

교황님이 다녀가시고 우리 교회가 우리의 존재장에 남았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에 비추어서 우리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들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이 땅에서 우리의 역사를 복음적으로 살아가는 데 요청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저는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8월 17일 아시아 교회 주교님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시아의 풍요로운 종교 전통과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과의 대화에 대해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다른 이들과, 또 다른 문화와 대화를 시도할 때, 무엇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까? 또 목표 지점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근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분명 우리의 정체성, 곧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공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로,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 지난 17일 충남 서산시 해미 순교 성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아시아 주교들이 만나고 있다. ⓒ교황방한위원회

교황님은 대화는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공감과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뿌리내린 정체성이라고 보십니다. 그런데 이 정체성은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생활적인 것입니다. 교황님이 같은 자리에서 정체성의 한 차원으로 “열매 맺는 것”을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은 “우리의 정체성은, 주님과 대화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은총으로부터 생겨나고 그 은총으로 자라나기 때문에, 정의와 선과 평화의 열매를 맺는다”면서, 구체적으로 아시아 교회의 주교님들에게 이렇게 질문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의 삶에서, 또 여러분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삶에서 맺고 있는 열매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진행되는 교리 교육이나 청소년 사목에서, 번창하는 사회의 변두리에서 신음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서, 그리고 사제직과 수도 생활에 대한 성소를 키워 내는 노력들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드러나고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정체성을 증거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교회의 번창이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신앙생활은 프란치스코 교황께, 그리고 그분과 우리의 공동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질문 받게 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교황님은 우리에게 복음살이의 제1 원칙으로 “말씀대로” “예수님처럼”을 강조하시는데, 이것은 바로 이 원칙을 달리 표현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 정체성과 공감과 대화와 열매, 이 네 가지를 복음적 신앙 실천의 핵심 요소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정체성을 자신의 믿음의 뿌리로 삼고, 한 존재장을 공유하는 너를 너로 보고 만날 줄 아는 공감을 타고, 존재와 존재가 교류하는 대화를 통하여, 정의와 선과 평화의 열매를 맺는 과정. 이것이 우리의 복음살이 여정이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그리스도 정체성과 시복식 제단

정체성에 대한 교황님의 이해에 비추어 보자면, 자신의 정체성이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너의 정체성을 지켜줄 가능성이 커집니다. 일례로 교황님은 시복식 미사를 위해서 광화문에 제단을 마련할 때, 제단 규모를 작고 낮고 검소하게 준비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실제로 제단이 크지 않고 높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제단 뒤편에 있는 경복궁 남문의 모습은 물론, 그 뒤로 청와대도, 그 뒤로 인왕산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제단 뒤편으로 “광화문” 현판 글씨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봉헌된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 ⓒ교황방한위원회

정약용은 한문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 짧은 시를 쓰면서,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 것은 가깝고 멀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읊은 적이 있습니다. 신앙의 위엄을 높인다면서 자신의 존재장에 폭력적인 경우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 역사에서요. 그런데 이렇게 한국 가톨릭인들의 존재장에 폭력적이지 않을 수 있는 제단 규모와 제단 형태를 보면서, 저는 참으로 기뻤습니다. 우리 국민의 청와대와 청와대에 지금 있는 사람들, 우리 국민의 대통령과 지금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한편으로는 이어 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분해 볼 줄 아는 시민의식이 필요한데, 저는 지금 이런 의식에 근거해서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복식 제대는 오늘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단이 높지 않은 데서 한국의 문물 앞에서 자기를 낮춘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요르단 강물에 잠겨 세례를 받으신 것에 비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제를 낮게 설치한 데서 신자들과 좀 더 가깝게 어울릴 수 있고자 하는 열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교황님이 이 땅에 도착하신 첫날부터 마지막 가시는 날까지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신 우리 민족, 우리 교회, 이 땅의 가난하고 억울한 일 당한 사람들과 가깝게 그들 가운데 함께 머무신 모습이 여기에 이미 프로그램화되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교황님과 우리 가톨릭교회가 우리 한국 교회와 함께 그만큼 더 그리스도에 건강하게 뿌리 내리게 하는 원천이 되어 주고 그 과정에서 방향타가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참으로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민중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을 통해서 광화문광장으로 상징되는 이 세계와 우리의 존재장에, ‘광화문’으로 상징되는 한국 문화에, 청와대와 인왕산으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에 복음적으로 응답하고 질문하며 비전을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정체성과 공감력

자기 정체성은 공감력의 깊이와 규모로 표출됩니다. 건강한 자기 정체성은 깊고 넓은 공감력을 발생시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공감력은 비행기에서 내리신 그때부터 바로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황님을 환영하기 위하여 마중 나갔던 많은 이들 가운데 아픔은 아픔으로 기쁨은 기쁨으로 반겨 맞아주시는 교황님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스러웠습니다.

우리가 모두 기억하는 것처럼, 이날 교황님은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셨습니다. 이때 교황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첫날 환영식장에서 교황님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면서 하신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날은 충분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 역시 교황님이시구나 하면서도,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이 말이 얼마나 깊은 일관성을 띠고 있고, 또 얼마나 큰 복음적 공명을 발생시킬지 다 알지 못하였습니다.

교황님은 다음날 대전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시기 전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 가운데 단원고등학교 학생 고 김웅기 군 아버지 김학일 씨와 고 이승현 군 아버지 이호진 씨, 그리고 참사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 2명 등 10명을 만나셨습니다. 이들은 교황님께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죽은 아이들을 살릴 수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왜 죽어갔는지 이유는 알고 싶다”고 호소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진상규명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고, “그래야 죽어서도 아이들을 떳떳하게 볼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10명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라고 청하였습니다.

교황님은 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고개를 끄덕이며 들으시면서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거나 안아주셨다고 했습니다. 교황님은 이 자리에서 김학일 씨와 이호진 씨가 안산 단원고를 출발하여 진도 팽목항까지 갔다가 다시 대전까지 순례하는 동안 짊어지고 온 ‘세월호 십자가’를 선물로 받기도 하셨습니다.

▲ 진도 팽목항 천막 미사 제대에 놓인 세월호 유가족 순례 십자가와 김웅기, 이승현 군의 영정 ⓒ이요한

교황님은 이 자리에서 노란 리본도 선물 받으셨습니다. 가족들이 이 배지의 의미를 교황님께 설명해 드리자, 교황님이 직접 유흥식 주교님께 청하여 당신 가슴에 다셨습니다. 가족들은 교황님의 이런 모습에 깊이 감동하였는데, 교황님은 이 노란 추모 리본을 단 상태로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미사 후에는 삼종기도를 함께 바치면서 직접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존재형 공감과 대화

교황님은 공감을 통해서 대화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교황님이 8월 16일 시복 미사를 집전하기 위하여 광화문광장을 지나실 때였습니다. 광화문광장에는 당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목숨을 걸고 항거 중이었습니다. 전날 대전 미사 전에 교황님을 만난 가족들은 광화문에서 목숨을 걸고 항거 중인 김영오 씨를 안아주시라고 청하였을 때 교황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고 합니다. 교황님은 당신의 끄덕임을 행동으로 확인시켜 주셨는데, 이 장면은 공감과 대화가 행실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거해 준 한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김영오 씨가 교황님을 부르며 자신의 호소에 귀 기울여줄 것을 청하는 모습을 보고 교황님은 그를 향해 다가가셨습니다. 김영오 씨가 교황님의 손을 잡고 친구하며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도와주십시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하며 호소하였습니다. 교황님은 자신의 위로를 손을 통해 전달하기라도 하는 듯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호소를 들으셨습니다. 김영오 씨가 쓴 호소문을 건네자 교황님은 직접 받아서 당신 주머니에 넣어 반드시 읽고 응답할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이렇게 단순히 말로가 아니라 당신의 온 존재를 통하여 이를테면 ‘존재형’ 공감과 대화를 나누어 가셨던 것입니다.

교황님은 대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마치시고 나서 그때 제의 왼쪽 가슴에 달았던 노란 리본을 당신의 평상복에도 옮겨 달고 다니셨습니다. 교황님은 이때도 전날 받으신 노란 리본을 달고 계셨고 김영오 씨는 약간 기울어져 있는 리본을 바로잡아 드렸습니다. 교황님은 이 땅을 떠날 때까지 한결같이 노란 리본을 달고 계셨습니다. 바티칸으로 가시는 비행기 안에서도 교황님은 이 노란 리본을 여전히 달고 계셨습니다. 교황님의 이러한 모습은 복음적 공감이라는 것은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과 연대하고 그들이 바라는 정의를 지켜 가게 하는 원천이라는 사실을 아름답게 증거합니다.

공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자기대로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공감에는 질이 있고 규모가 있습니다. 공감의 규모가 작고 깊이가 얕으면 깊은 공감이 오히려 불편해집니다. 실제로 대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마치고 얼마쯤 지났을 때, 교황님의 공감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목 아래 도전을 받습니다. 교황님이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세월호 재앙을 겪은 가족들에 대한 당신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았느냐”고 질문 받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교황님은 그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물었습니다.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교황님은 자신에게 물었던 그 사람에게 답하신 내용을 이렇게 전해 주셨습니다.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이 직접 겪으셨던 일을 이렇게 덧붙여 설명해 주셨습니다.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였을 때 겪은 일을 기억합니다. 나는 이와 유사한 두 재앙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는 팝음악을 연주하는 댄스홀에서 일어난 화재였습니다. 1993년에 일어난 이 화재로 194명이 죽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열차 사고였는데, 이 재앙으로 120명이 죽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나는 똑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는. 인간의 고통은 강력한데, 그렇게 슬픈 순간에 직면하여 가까이 다가가면, 우리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복음적 공감은 복음적 행동을 발생시킨다는 말씀이십니다.

세월호 사건 자체가 정치적인 사건은 아닐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어떻게 응답하는가 하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중립을 위해 리본을 떼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사고의 산물입니다. 교황님은 중립을 앞세워 노란 리본을 뗄 것을 요청한 것이 정치적 행위라는 것을 아십니다. 당신 자신이 추기경이 되고 나서, 1970년대 아르헨티나 정부의 “추악한 전쟁” 당시 중립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저 불의한 정권의 정치 행위들에 침묵함으로써 불의에 협력한 과오를 교회 차원에서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데 앞장선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 같은 직접 체험에 근거해서 교황님이 <복음의 기쁨>에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으셨던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동으로 우리에게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르쳐 주셨는데, “왜 그토록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듭니까? …… 왜 그토록 분명한 것을 구름으로 가립니까? …… 정통 교리의 옹호자들은 가끔 수동적이라거나 특권층이라는 지탄을 받으며, 무참한 불의의 상황과 그 불의를 지속시키는 정치 체제와 관련하여 공모자라는 비난을 받습니다”(194항). 그러나 “종교는 국가 사회 생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말라고, 국가 사회 제도의 안녕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지 말라고, 그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183항).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사회 질서와 공동선 추구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82항).

하지만 교황님은 “중립”이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서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하고 따뜻하게 말씀하십니다. 고통 앞에서 하나가 되는 영혼은 마음이 하라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입니다.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고통에 직면하게 될 때, 당신은 당신의 마음이 하도록 이끄는 것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한 사람을 가리켜서 그가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혹은 다른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 자녀를 잃은 부모들, 형제자매를 잃은 형제자매들, 이들을 생각할 때, 이런 재앙으로 이렇게 큰 고통을 겪는 그들을 생각할 때, 나의 마음은……. 나는 사제입니다. 나는 그들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느낍니다. 이것이 먼저입니다. 나는 알고 있어요. 내가 줄 수 있는 위로, 내 말이 치유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죽은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절박한 때에 인간적 가까움은 우리에게 힘과 연대를 가져다줍니다.”

공감과 공감에 바탕한 존재형 대화, 이것은 언제나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열매를 맺는데, 우리는 이 사실을 아래에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교황님은 떠나시기 전날 아침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 가운데 세월호 십자가를 지고 순례한 이호진 씨에게 세례를 주셨습니다. 이호진 씨는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전에 교황님을 만났을 때, “2000리 180만 보를 한발 한발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디뎠다”면서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교리를 배우지 않았지만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요?” 그러자 교황님이 다른 사제들과 상의한 후에 곧 “자격이 충분하다”고 답하셨습니다. 이호진 씨가 교황님께 직접 세례를 받고 싶다고 하자 교황님이 기쁘게 응낙하셨습니다. 그리하여 8월 17일 아침 일찍 주한교황대사관에서 이호진 씨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기뻐하였습니다. 교황님은 이날 세례식을 마치시고 나서 아직도 세월호 참사로 실종된 이들 10명과 이들의 가족에게 위로의 편지를 쓰시고 직접 서명하셔서 전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아래에 편지 전문을 소개합니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 여러분.

직접 찾아뵙고 위로의 마음 전하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직도 희생자들을 품에 안지 못해 크나큰 고통 속에 계신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위로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실종된 단원고등학교 학생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 황지현, 허다윤,
단원고등학교 교사 고창석, 양승진,
일반승객 권재근, 이영숙, 그리고 일곱 살배기 권혁규 어린이가 하루 빨리 부모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보살펴주옵소서.’

실종자 가족 여러분. 힘내세요!
실종자 가족 여러분, 사랑합니다.

Servus Servorum(종들의 종) 프란치스코”

공감과 대화의 열매

교황님은 공감은 대화를 낳고 대화는 “정의와 선과 평화”라는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위에서 어떤 사람이 교황님께 요청한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을 가지고 표현하자면, 고통 앞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면서 침묵할 때, 정의와 선과 평화는 이들의 공감력에 비례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감력을 제한해서, 정의와 선과 평화를 자신들의 이익에 종속시킨 채,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끊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더 큰 불의와 더 큰 악과 더 큰 폭행을 겪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은 힘없는 다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결국 자신들 역시 불행을 겪게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가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하는 특별법을 요구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이유를 내세우든 참사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저 희생자 가족들의 요청을 반대하는 그만큼만 알거나 그만큼만 알도록 강요한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만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들과만 대화를 시도합니다. 일반인 유가족들과는 만나도 단원고 학생 유가족들과는 거의 만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내용, 원하지 않는 사실과 증거를 말할 사람들과는 대화 자체를 회피합니다. 이들에게서는 대화의 기준이 자기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대화란 자신들이 말할 내용을 전달할 기회일 따름입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김무성 의원이 새누리당 사람들과 함께 일반적으로 보이는 행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의 대화 상대는 자신들이 듣기를 원하는 것을 말해 줄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존재들은 따돌립니다. 이들에게는 답이 먼저 있고, 듣는 것은 자신들의 답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도구입니다. 이들의 대화에서는 입만 있고 귀는 없습니다. 이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아야 하는 것은 외면합니다.

참으로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감응할 줄 안다는 것은 그들을 자신과 한 가족으로, 자신과 같은 몸으로, 곧 하느님의 한 집안 한 식구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존재의 뿌리이신 하느님에게 가닿을 때, 다른 이웃들 역시 그분에게서 온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표현으로 공감과 자비, 영어로 compassion, sympathy, empathy의 원천입니다. 하느님의 한 집안 한 식구로 받아들일 줄 알면 알수록, 공감력은 깊어지고 그 규모는 커집니다. 여기에서는 선을 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정의를 행하는 것이 기꺼워지며, 평화를 이루는 것이 기뻐집니다. 이들에게서는 대화의 기준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너의, 너희의, 대화 상대자들의 존재 상태입니다. 이들은 먼저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들은 것’에 응답합니다. 공감은 너를 너로 볼 때 발생하는 것이지, 자기 안에 축적해 놓았다가 풀어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황님이 이들과 공감하며 존재형 대화를 나누어 가시는 동안 참으로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화의 열매, 참으로 선과 평화가, 그리고 정의에 대한 기대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수많은 국민 가운데서 피어올랐습니다. 김영오 씨는 자신이 교황님께 호소할 때, “교황이 계속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미소를 보이셨다. 왼쪽 가슴에 달고 온 노란 리본 배지가 약간 삐뚤어져서 바로잡아드리니 웃음을 짓기도 하셨다”면서, 교황님께 너무나도 감사했다고 말했습니다. 교황님이 김영오 씨를 만나는 그의 주변에서 이 순간을 기다렸던 희생자 가족들은 “비바 파파,” “교황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감격해 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응어리졌던 가슴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면서 “교황의 위로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지친 상태였는데 많은 위로가 됐다”면서, “무엇보다 우리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일정 내내 우리를 잊지 않아 주신 것에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교황님이 노란 리본을 달고 미사를 집전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교황님이 “우리랑 한 가족이구나” 하고 느꼈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공감의 뿌리를 한순간에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교황님이 이렇게 관심을 갖고 공감해 주신 것을 계기로 “다시 진상규명을 위해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도 교황님이 세월호 가족들, 특히 김영오 씨와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힐링을 체험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복음적 공감과 대화는 반드시 복음적 결실을 맺습니다.

▲ 지난 25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제안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대통령의 회개, 책임 있는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단식기도회에 참석해 기도하는 신자들 ⓒ정현진 기자

세월호 특별법의 관건: 진실과 공감

세월호 참사로 자녀와 친지를 잃은 가족들이 이 사건의 진실을 철저하게 밝히는 데 필요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이번에는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단식하거나 노숙 중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여러 견해를 피력하며 제각각 응답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는 가족들은 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후 배 안에 있던 304명이라는 수많은 생명이 단 한 사람도 구조되지 못하고 죽어가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피눈물을 흘리며 애간장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상태에서 그대로 다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이 304명의 가족들은 침몰하는 배에 물이 차서 이들이 모두 다 목숨을 잃을 때까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와 언론 매체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보도하였는지 낱낱이 다 지켜보았습니다. 이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열린 국회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에서 청와대와 관련 기관들이 어떻게 처신하였는지 낱낱이 다 보았습니다. 이들은 이 기관보고 과정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행동하였는지 낱낱이 다 보았습니다.

이렇게 본 사람들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요구한다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이들이 이런 특별법을 요구하는 심정을 헤아려 공감할 줄 아는가 하는 데 관건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이완구, 이정현 같은 의원을 비롯해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부를 믿으라고, 자신들을 믿으라고, 자신들이 추천하는 사람들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조선, 동아, 중앙 세 언론은 법을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경제를 이야기하면서 새누리당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여당과 야당의 합의가 존중되어야 할 때가 있고, 여야 합의가 더 이상 존중받을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의 관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과 공감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데 장애가 될 합의는 존중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폐기되어야 할 따름입니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지금처럼 처신하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논의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지금은 도리어 국가와 국민의 생명의 에너지를 허비하게 만들 따름입니다. 이것은 국회를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의 현주소에 대한 주체적 식별 결과일 뿐입니다.

일본 관리들이 안중근에게 오해해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것이라고 말하면 살려 주겠다고 했었습니다. 이때 안중근은 끝까지 자신은 오해해서가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가 동양의 평화를 해치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 큰 악을 제거하기 위해 그를 저격했을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희생자들이 왜 그렇게 죽어가야 했는지 이유를 밝히는 일에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와 제국주의 세력이 누구인지, 그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보았던 것처럼, 이들은 자녀와 가족들이, 그리고 자기 자신들이 당하는 것을 직접 겪고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이정현 의원 같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한편으로는 알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안중근은 자신의 소신을 지켜 가는 대가로 교수형을 당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 민족이 자신의 혼불을 지켜 가는 데 한 활맥이 되어 주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온 존재를 건, 자신들의 전 생활과 목숨을 건 규명 노력을 통해서 고통은 당하더라도, 그래도 하느님의 선인들과 함께 일어나서, 우리 민족이 진실 위에서 새로운 조국의 삶의 질서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한 거대한 밑돌이 되어 줄 것입니다.

건강한 정치는 국민의 공감과 정비례합니다. 독재 정권이나 불의한 정권은 악하면 악할수록 국민의 공감과 대치됩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그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가족 이외에 가장 잘 아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건의 실체를 가장 잘 알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새누리당 의원들도 아니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도 아닙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한편으로는 알기 때문에도 가로막겠지만, 새정치 의원들의 경우 세월호 특별법을 이렇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가 바로 자신들이 제대로, 온 존재로, 알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언론인들도 일반 시민들도 이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이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존재들은 당시 상황을 낱낱이 보고받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하고 또 그랬을 위치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 정점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고, 그 뒤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습니다. 이들이 이것을 모른다고 말한다면, 이들은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세월호 대재앙에 희생된 당사자들보다, 그리고 이들이 희생되는 과정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 가족들보다 더 정확하게 이 대재앙의 원인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의로우면, 그들은 스스로 진실이 드러나게 하고, 진실이 드러나게 하는 데 협력할 것입니다. 그들이 불의하면, 불의한 그만큼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그들이 희생자 가족들과 공감하는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문제 해결은 쉬워집니다. 그들이 진실을 가리려 하면 할수록 공감 수준은 낮아집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희생자 가족들과 이 사건의 진실을 확인해서 할 수 있는 한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게 하려는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시민들의 탄식은 그만큼 증폭될 것입니다.

9월이 되면 희생자들의 죽음의 원인을 아는 것이 국민의 기본 권리이고 조국의 근본을 세우는 출발점이라는 데 공감하는 학생들이 동참하여 광화문의 항거는 확산될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억울이 자신들의 억울로 이어진다는 것을 아는 시민들의 항거로 광화문 항거가 더욱 증폭되지 않겠습니까. 고등학생들 가운데 세월호 사건도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사건 앞에서 가만히 있는 어른들이 더 이상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마침내 이들 자신이 믿고 살아갈 건강한 사회를 위해 의로운 항거에 합류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청와대로 향하는 공감하는 시민들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실장은, 그리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공감과 대화의 규모가 정치력과 시민사회의 질적 규모가 된다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이,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마태오 복음 25장 심판 이야기가 증거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규모를 설명해 주고 우리 교회의 믿음살이의 진정성의 규모를 증거한다는 것을.
 

 
 
황종렬 (레오)
두물머리 복음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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