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광화문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제안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대통령의 회개, 책임 있는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단식기도회가 25일 시작됐다.

단식기도회는 사제 100여 명, 수도자와 평신도, 일반 시민 7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뤄졌으며, 오후 3시 광화문 광장에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고 오후 6시 30분에는 미사를 봉헌했다.

▲ 8월 25일 광화문에서 천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 800여 명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단식기도회를 시작했다. ⓒ정현진 기자

기도회 시작 전, 경찰이 광장에 모여드는 참가자들을 막아 충돌을 일으켰으며, 세월호 가족들이 항의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우리와 세월호 가족들이 간절히 원하는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지금 울고 있는 이 가족들의 눈물이 마를 수 있을까요?”

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는 단식 기도회의 의의에 대해 “한번 상처입은 가슴, 슬픔에 젖은 심장이 특별법 제정으로 괜찮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기도회를 하는 것은 상처와 슬픔이 있다는 것, 누군가 울고 있음을 보고 함께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 신부는 “단식기도회를 하는 것은 교황이 와서 세월호 가족을 위로하고, 가톨릭 교회가 힘이 세져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가장 약하고 상처입은 이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나누자는 것이며, 함께 기도하면 이들의 슬픔이 조금이나마 빨리 녹지 않을까 하는 마음일 뿐이다. 더 얻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워내고 가진 것을 내놓을 때, 같은 하느님의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욱 애통한 현실은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울어줄 양심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사 강론을 맡은 수원교구 한만삼 신부는 “지금 누가, 무엇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라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물음을 상기하면서, “세월호 가족들의 상처는 그들만의 상처가 아니라 나의 상처, 온 국민의 상처”라고 말했다.

“선의 결핍이 악입니다. 그리고 양심이 이완되면 악으로 기울게 됩니다. 악은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선과 진리를 듣기보다는 자기의 말과 거짓말만 되풀이 하여 선을 질식시켜 버리고 싶어 합니다.”

한 신부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그만 하라”는 목소리, 특별법의 내용을 왜곡하는 언론 등에 일침하듯, “이웃의 고통에 울어줄 줄 모르는 악은 아주 평범하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 악은 내 이익이 먼저라고 속삭이고 세상의 고통이 나랑 상관없으며 무관심 하라 하며,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참된 것이지 고뇌하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단원고 희생자 고(故) 유예은 양의 어머니 박은희 씨는 단식기도회 참석자들을 향해 “세월호 가족들이 가장 어려울 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주셨다”며 인사했다.

▲고 유예은 양 어머니 박은희 씨 ⓒ정현진 기자

박은희 씨는 사고 전에 스스로 착한 사마리아 인으로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고를 겪고 보니 스스로 레위인, 제사장이 아니었나 생각된다면서, “유가족들은 지금 강도만난 이가 되어 이 자리에 있다. 제발 지나치지 말고 한 번만 돌아봐 달라, 그리고 우리처럼 아픈 이들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미사가 끝난 후, 단식 기도회 참가자들은 광화문 광장에 천막 한 동을 치고 노숙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 기도가 진행되는 동안 같은 장소에서 오후 12시 낮기도, 1시 30분과 3시 묵주기도 그리고 5시 45분 성무일도가 진행되며, 매일 6시 30분 미사가 봉헌될 예정이다.

 ⓒ정현진 기자

강론에서 한 신부는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정의는 불의를 극복해나가는 덕목이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주려는 결의와 노력이라면서, “진실을 두려워하는 정의는 거짓된 선이며, 위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만삼 신부는 한국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의 전구를 청하면서, 세월호의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양심을 외면하지 말고 감춰진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진실을 밝히기 위한 단식으로 생명이 꺼져가는 유민이 아빠를 구하기 위한 연대를 촉구했다.

그는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순교자들은 시대가 아무리 요구해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을 분리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기도 했다.

▲ 미사가 끝난 후, 30여 명의 사제와 수도자가 광화문에서 노숙 단식을 이어갔다. (사진제공/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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