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런치박스>, 리테쉬 바트라 감독, 2013년작

▲ <런치박스>, 리테쉬 바트라 감독, 2013년작
어떤 밥은 마음으로 먹는다. 사람을 살리는 밥에는 향기가 있다. 온기보다 맛보다 질감보다 먼저 향이 천 리를 간다. 배고픔보다 마음의 허기에 지친 사람이, 그 향기를 맡는다. 사람이 진실로 허기를 느끼는 순간은, 외로움의 폭넓은 지류 한가운데 서있는 나약한 자신을 어쩌지 못할 때가 아닐까. 혼자 사는 사람의 혼자 먹는 밥이 때로 견딜 수 없이 서글픈 이유는, 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운 사람은 왜 늘 배가 고픈 것인지, 왜 아무리 먹어도 허기는 바닥에 그대로인지, 그럼에도 ‘1인분’ 포장 음식은 왜 먹었다는 든든함으로 이어지지 않는지, 왜 남이 밥 먹는 ‘먹방’(먹는 모습을 방영하는 영상물)이라도 쳐다봐야 식사하는 기분을 억지로라도 느끼는 건지, 그 ‘향’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어쩌면 배부르다는 포만감은 입보다 위장보다 코로 채워야 하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실은 제일 먼저 마음이 알아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 모든 밥은 그런 게 아닐까. 집을 떠나고 어머니 품을 떠난 뒤에야 뒤늦게 뼈아프게 깨닫는 밥의 소중함이다.

그 도시락은 정말 잘못 배달됐을까?

인도 영화 <런치박스>(The Lunchbox, 2013)를 보면 밥에 대한 아주 많은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밥은 곧 정성이고 그리움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했던 순간을 품은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떤 밥의 어떤 향은 그런 수많은 것들을 단번에 맹렬히 불러일으키는 마법의 열쇠였다.

아주, 아주 많은 밥들의 기억이 순식간에 몰려와 코를 어지럽혔다. 아니, 간질였다. 너무나도 기억에 선명한, 하지만 이제는 맡을 수 없는, 그 생생한 내음. 내가 먹고 비웠을 헤아릴 수도 없는 도시락 그릇들, 매일 그걸 싸느라 분주했을 어머니의 새벽녘 부엌, 함께 밥을 먹던 그때의 사람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만들고 싸기도 했던 도시락들…….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그랬다. 그게 내 인생의 풍경들이었다. 밥을 빼고 과연 남는 게 있을까. 그렇게 온통 밥으로 이루어진 기억의 본질을 새삼 마주하고 나니 왈칵 목이 멨다.

 

지금도 생각한다. 그 도시락 가방은 정말 잘못 배달된 것일까? 만약 어떤 일이 6백만분의 1이라는 확률을 가졌음에도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것은 실수인가, 필연인가? 인도의 독특한 도시락 배달 문화인 ‘다바왈라’는 왜 그날 그곳에서 시스템 오류를 일으킨 것일까. 그날의 도시락이 정확히 배달됐다면 그 모든 일은 과연 다르게 흘러갔을까. 정말 그랬을까. 꼭 가 닿아야 할 사람에게 제대로 배달되기 위해 꼬이고 엉켜가며 스스로의 질서를 새로이 만들어낸, 6백만분의 1의 행운은 아니었을까.

뭄바이의 젊은 주부 일라(님랏 카우르 분)는 서먹해진 남편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이다. 어떻게든 회복하고 싶어 거의 최후의 방편으로 도시락에 넣을 특별한 음식을 요리한다.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이며 온갖 기대와 조바심으로 도시락을 싼다. 유일한 대화 상대인 윗집 ‘이모’의 조리법을 전수받은 특별한 반찬은 그런데 엉뚱한 사람 사잔(이르판 칸 분)에게로 간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잘못 배달된 도시락을 한 번의 실수로 그냥 넘기지 않고 꼭꼭 되씹고 음미한 그 남자와 그 여자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는 걸까

아침마다 딸도 학교에 챙겨 보내고 부리나케 남편 도시락도 싸지만 허공에 대고 “왜 사는 걸까” 하고 한숨처럼 내뱉던 일라. 남편은 퇴근 후에도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고, 밥을 먹으면서도 TV만 본다. 다른 여자의 냄새가 밴 셔츠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기까지 한다.

일라의 마음은 빈 도시락 그릇처럼 휑하다. 정성을 들인 도시락이 남편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음을, 심지어 잘못 배달됐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 후 일라는 자기 인생에서 뭔가가 완전히 틀어져버렸음을 깨닫는다. 그런데도 일라는 도시락 싸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예 한 술 더 떠서 얼굴 모르는 그 남자에게, 그릇을 싹싹 핥듯이 비운 그 허기진 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토록 맛있게 먹어준 그 사람이 진정 고맙고 궁금했던 것이다.

사잔은 곧 정년퇴임을 앞둔 회계사다.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산 지 오래다. 외로움이 몸에 배다 못해 감정이라는 게 남아 있는지조차 잊은 듯 살았다. 마지막 일상의 버팀목 같던 직장에서도 곧 은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색다른 도시락을 받는다. 당연히 여느 날처럼 도시락 업체에서 보낸 건 줄 알았는데 웬걸! ‘집밥’의 향기가 났다. 도시락 통을 조금 열어 처음 냄새를 확인하던 남자의 황홀한, 홀연히 잠에서 깨어나는 듯 감정이 엇갈리던 표정은 설렘과 그리움 자체였다. 그날 그가 먹은 밥은, 그렇게 그의 인생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다음날 사잔은 배달된 도시락에서 쪽지를 본다. 편지는 도시락이 잘못 갔으며 어쨌든 남김없이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다. 여전히 맛있는 점심이 들어 있었다. ‘착오’였음을 둘 다 알게 되지만, 묘하게도 도시락 배달은 계속 이어지고 일라는 심지어 사잔이 편지에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적은 가지 요리도 일부러 한다. 일라와 사잔은 도시락 편지로 서로 마음을 이야기하고 걱정해주고 챙겨주며 어느덧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편지를 읽는 일은 점차 경건한 의식(儀式)처럼 변해가고, 밥보다 그 무엇보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되어간다.

만나자는 약속은 그러나 이후에 닥칠 수많은 우여곡절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저 한 번 얼굴 보자던 것이었는데, 약속 장소에서 몰래 젊고 아름다운 일라를 본 사잔은 ‘늙은’ 자신의 현재와 직면하며 번민에 시달린다. 약속은 성사되지 않은 채 이야기는 점점 심각한 인생의 결단을 촉구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그들은 드디어 잘못 배달된 도시락이 무엇을 몰고 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잠시의 꿈처럼 찾아든 이 기회를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 아니, 그들이 만나려면 덜어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채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용기일까. 희망일까. 체념일까. 직면일까.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로 데려다준다’는 바람결 같은 조언은, 그와 그녀를 정말 행복의 나라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 그들의 오랜 서성임은 결국 서로에게 가는 도약대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하면 이 도시락의 뚜껑을 열어보시라. 물론 답은 각자의 몫이다. 관객의 절절함의 정도가 아마 두 사람의 결말에 대한 유일한 풀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맛은 보장할 수 있다. 리테쉬 바트라 감독이 빚어낸 인도식 커리 향이 정말 일품인 영화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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