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14년 4월 3일은 제주 사람들에게, 아니 한국인 전체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날입니다. 4.3 사건이 일어난 후 66년 만에 국가가 지정한 기념일로 지내게 됐습니다. 4.3에 대해서는 여러 시각이 있고 평가가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4.3이, 좌익 무장대가 제주도 12개 지서를 습격한 하루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6년이 넘는 세월을 두고 남녀노소 3만여 명의 생명을 도륙하고, 유가족 모두를 억압하고, 수십 년을 두고 고통 속에 살게 한 비극으로 확산된 것은 국가가 주도한 일이었습니다.

4.3이 시작된 것은 미군정 시절이었지만,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대가 본격적으로 투입되어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된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군대를 동원해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법적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고, 아무리 비상시라도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였습니다.

오늘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되고, 지금까지 민간인 주도로 이뤄지던 4.3 추도식이 정부의 공식 행사로 이뤄진 것은, 바로 이 4.3이 국가의 책임으로 벌어진 사건이요, 비극임을 만천하에 인정하고 4.3의 모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그 한을 풀어보자는 공적인 선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까지 66년이 걸렸다는 것은, 그 희생자들에게는 너무나 죄송스러운 일이나 그래도 한 발자국 우리의 역사는 앞으로 전진한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4.3 생존자와 유족을 상석에 앉히고
총리나 도지사가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청했다면?

오늘 오전에 저는 4.3 평화공원에서 거행된 정부 주관 추념식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위령제가 이뤄지는 제단 맨 앞에는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검은 정장 차림으로 앉아 있고 제주 지자체장을 비롯한 사회 원로들이 임석하셨습니다. 유가족 대표의 인사가 있은 후, 지자체 대표와 총리의 추념사, 헌화, 분향의 절차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차가 이어지는 동안 저도 그 앞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일반 시민들, 평범한 옷차림으로 오신 어르신들은 이런 절차의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제단 뒤쪽에 위패를 모신 위령동이나 묘역 주변을 참배하고는 마치 어슬렁거리는 구경꾼처럼 공식 추념식에 임하는 고위층 인사들의 행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틀림없이 구경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 친지 중 누군가가 희생됐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온 것입니다. 그 먼 곳까지 구경하기 위해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 요인과 높은 분들이 추념식을 거행하고 정작 유가족이나 시민들은 주변 가장자리로 밀려서 멀찍이 서서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마음이 대단히 편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자리에 앉아 있는 저 자신도 대단히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제대로 한다면, 위령탑 제단 앞 제일 윗자리에, 4.3으로 상처입고 고통받아온 생존자들이 계시다면, 그분들을 맨 위에 회중을 향해 앉게 하고, 그 아랫단에 유가족과 자손들이 회중을 향해 앉고, 그리고 그 두세 단 아래 낮은 곳에 거적이나 멍석을 깔고 총리나 도지사가 유가족들을 향해서 머리를 땅에 대고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청하는 그런 예절을 했다면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추모의 현장이 되었을까. 혼자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 제주교구가 3일 저녁, 교구장 강우일 주교(가운데) 주례로 4.3 사건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사진 제공 / 제주교구)

예수님은 우리를 4.3의 증인으로 초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진실한 4.3 추모식이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4.3의 국가기념일을 지정함으로써 하나의 매듭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4.3의 한이 하루아침에 풀어질 수는 없고, 4.3으로 인해 인생이 절단 난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가 금방 사라질 수도 없고, 4.3 희생자들의 억울하고 무참한 희생의 대가가 하루아침에 금방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더욱, 우리 제주도민들, 그리고 제주의 가톨릭 신자들은 4.3을 추모하더라도 그냥 막연히 “돌아가신 분들 불쌍하게 돌아가셨구나”하고 몇 초간 묵념하는 형식적 추모가 아니라 4.3이 뭔지 우리는 올바로 알고 추모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3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어떤 고통을 겪으면 죽어갔고,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를 감추지 말고 희생자들의 증언을 되살려서 제주 지역사회의 기억을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을 어떻게 무슨 작정으로 허용하신 것인지, 또 이런 비극을 통해 하느님은 우리가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시는지, 또 그 4.3의 비극을 오늘의 우리 현실과 어떻게 연결시키기를 원하시는지 우리는 계속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나서 비로소 우리는 고인들의 영전에서 영원한 안식을 청할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주도민들 중에서도 4.3에 대해서 단편적인 지식밖에 갖고 있지 않고, 정확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롭게 자라나는 후손들은 4.3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이 역사와 단절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더구나 제주도 바깥의 국민들은 거의 백지, 무지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4.3에 대해 아무런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 제주도민들은 그래서 4.3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이 ‘증언’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쓰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권력자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진리를 증언했지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을 통해 증언한다고 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증언하는 사람이었고 예수님 자신도 증언하는 사람으로 오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구체적으로는 38년씩 병마에 시달리며 힘들게 살아왔고 벳사이다의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뛰어들려고 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밀리기만 하는 보잘 것 없는 한 환자의 고통을 예수가 눈여겨보고 연민을 갖고 다가갑니다. 그를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면 안식일 규범을 어기고 유다인들의 미움과 증오를 한 몸에 받게 되더라도 그것으로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증언을 당신의 몸으로 보여주는 그런 증언을 하겠다는 것이 증언자로서 예수님의 의도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 제주도민들에게 이 복음을 통해서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4.3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나서라고 초대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4.3을 올바로 알고 하느님께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4.3의 무엇을 증언하기 원하는지 배우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우리 안에서 먼저 4.3을 충분히 숙성시킨 다음에 하느님이 맡겨주시는 소임을 다해나갈 수 있습니다.


강우일 주교
(베드로)
제주교구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 제주 4.3 사건 66주년 추모미사 강우일 주교 강론 (동영상 제공 / 제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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