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열의 음악과 나 - 22]

음악가에게 있어서 음악은 그의 전부일 수 있지만, 철학, 문학, 역사 등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를 넓힘으로써,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했던 음악가들이 있었습니다.

슈만의 부친은 문학에 관심이 많아 집필도 하면서 출판업도 했는데, 슈만은 그런 부친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독일 낭만 문학에 심취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일곱 살 때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부터 음악 기초 교육을 받으면서 스스로 작곡도 했지만, 어머니의 강요로 대학에서는 법률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클라라의 부친인 비크 교수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설득해서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으나, 무리한 피아노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쳐 피아노 연주자의 길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슈만은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음악신보’를 창간하는 등 평론과 지휘, 작곡을 하면서 슈베르트, 쇼팽, 브람스를 무대에 소개하는 데 전력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모친에게서 물려받은 유전 탓인지 그도 그의 누나처럼 정신병을 앓다가 마흔일곱 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슈만은 여러 시인과 소설가의 작품으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얻어 서정성이 넘치는 수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하이네의 시로부터 영감을 얻어 작곡한 가곡집 <시인의 사랑>과 <두 사람의 척탄병>을 비롯해서, 샤미소의 시를 바탕으로 가곡집 <여자의 사랑과 생애>를 썼을 뿐만 아니라, 괴테, 바이런, 하이네 같은 시인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26곡의 <미르테의 꽃>이란 가곡집을 썼고, 호프만의 소설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읽고서 같은 제목의 피아노곡을 썼습니다.

“슈만은 문학과 음악 사이의 경계를 아무 거리낌 없이 드나든 거의 전무후무한 작곡가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화가들은 베토벤의 교향곡에서 영감을 얻어야 하고, 음악가는 괴테의 문학작품에서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는 또 좋아했던 시인 노발리스의 ‘원래 시인과 사제는 하나였다. 훗날 사람들이 그 둘을 갈라놓았을 뿐. 또한 진정한 시인이란 진정한 화가와 조각가, 그리고 진정한 작곡가와 동의어이다. 즉 그들은 모두 사제이다.’와 같은 발언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김순배, <클래식을 좋아하세요?> 중에서)

풍부한 시적 감정을 가지고 쓴 650여 곡의 가곡을 통해, 이전까지 시의 텍스트 전달에 주력하던 노래와, 시의 운율을 보조하던 피아노 반주 사이의 불균형을 깨고, 노래와 더불어 피아노 반주가 대등하게 시의 내용과 운율을 전달하는 새로운 형식의 가곡을 만들어냈던 슈베르트. 슈베르트보다 3년 먼저 태어나 1년 먼저 세상을 떠난 W. 뮐러의 시를 좋아했던 슈베르트는 그의 시집 <발트호른 주자의 유고에 의한 시집> 1권과 2권의 내용을 가지고, 각각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를 썼습니다.

슈베르트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에서 방랑과 정착, 사랑, 눈물, 실연, 질투, 체념, 죽음을, <겨울 나그네>에서는 이별과 방랑, 절망, 죽음에 대한 상념, 거리의 악사를 그렸는데, <겨울 나그네>에 실려 있는 ‘보리수’, ‘봄의 꿈’, ‘우편마차’, ‘거리의 악사’ 등은 곡의 제목처럼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비제는 알퐁스 도데의 단편 <아를의 여인>을 읽고 음악적 영감을 얻어 같은 이름의 모음곡을 썼습니다. <제1모음곡>의 ‘전주곡’과 <제2모음곡>의 ‘파랑돌’에는 프로방스의 활달한 민요조의 선율을 사용했으며, <제2모음곡>의 미뉴에트에서는 격조 있으면서도 우아한 멜로디를 플루트가 연주하게 하는 곡을 썼습니다.

비제는 또한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을 바탕으로 같은 이름의 오페라를 썼는데,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과 결별하고 난 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보고나서 ‘사실주의적이고 모순으로 가득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표현한 리얼리티와 박진감 넘치고 간결한 표현의 결정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사라사테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주요 선율을 가지고 스페인풍의 관능적인 선율을 최대한 살린 바이올린 곡 <카르멘 환상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는데, ‘바이올린 주법의 묘기를 다해 현의 변화무쌍한 정취를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바그너도 13세기 문학을 기초로 해서 16세기에 쓰인 <탄호이저의 노래>와 하이네의 시 <탄호이저 이야기>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어 가극 <탄호이저>를 썼습니다. 관능적인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와 쾌락에 빠졌던 탄호이저가 교황에게 죄를 빌러 갔지만, 교황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지 못하자, 다시 쾌락을 즐기기로 하고 베누스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이 원작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바그너는 ‘여성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예술가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의 음악적 가치관에 기초해서, 이야기의 결말을 ‘엘리자베트의 변치 않는 사랑과 죽음으로 쾌락에 빠졌던 탄호이저가 죽고 나서 용서와 구원을 받는’ 것으로 그렸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가극 <탄호이저>는 원작의 결말마저 과감하게 바꾸어버리는 바그너의 가치관과 강한 개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그너는 그밖에도 하이네의 발라드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어 가극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썼고,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예수의 피를 받았다고 하는 ‘성배의 전설’을 토대로 가극 <로엔그린>을 썼습니다. 그는 또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게르만적인 북유럽 신화에 깊은 흥미를 갖고 28년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하나씩 완성해 갔습니다.

마스네도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 <무희 타이스>를 텍스트로 하여 오페라 <타이스>를 만들었는데, 2막 1장에 나오는 ‘거울의 노래’와 3막의 ‘타이스의 명상곡’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뒤카는 괴테의 <마법사의 제자>를 관현악곡으로 썼고, 드뷔시는 말라르메의 시집 <목신의 오후>를 바탕으로 같은 이름의 관현악 전주곡을 썼습니다.

멘델스존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나서 피아노곡을 썼고, 나중에 관현악곡으로 편곡했으며, 차이코프스키 역시 샤를 페로의 동화를 가지고 발레 음악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썼습니다. (계속)
 

 
이광열
학교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줄곧 국내외 현장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종교와 나>, <건설 현장과 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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