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열의 음악과 나 - 23]

이처럼 수많은 문학 작품과 신화, 전설 등이 음악가의 창작활동에 음악적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역으로 음악 작품이 문학 창작에 모티프(작품을 표현하는 동기가 된 중심사상)가 되기도 했습니다.

토마스 만은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모티프를 따와서 단편 <트리스탄>을 썼습니다. 음악이 계기가 되어 바그너가 유부녀 마틸데 베젠동크와 정을 나누었던 것처럼, 바그너의 가극 속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사랑을 나누었고, 토마스 만의 소설 속에서 슈피넬은 클뢰터얀 부인을 연모했습니다. 소설 <트리스탄>에 나오는 음악이 쇼팽의 <야상곡 Op.9 No.2>과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인데,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음악과 문학의 두 갈래 길에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문학으로 방향을 정했던 한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소설 <트리스탄>을 이끌어 가는 쇼팽과 바그너의 음악은 아름다움과 죽음의 양면적인 관계를 통해 ‘아름다움이야말로 예술가가 정신에 이르는 길인가’라는 문제를 던져준다. 이 작품들 속에서 죽음은 본래의 의미를 넘어서는 낭만주의 수사학으로까지 발전되고 있다. 어쩌면 죽음은 자기정체성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인지 모른다.” (서영처 지음, <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 177쪽)

토마스 만의 소설에서 음악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곤 했습니다. <부덴브로크家>, <마의 산>, <파우스트 박사>에서 음악은 중요한 주제였으며,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고, 음악사를 정신사와 결합시켰던 것도 음악이었습니다.

▲ 토마스 만, 톨스토이
토마스 만의 소설은 만연체로 쓰인데다가,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도중에 다른 이야기들이 끼어들어 읽기가 쉽지 않고, 그만큼 친숙해지거나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악 작품만 해도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을 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통찰력은 여느 음악평론가에게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납니다.

<파우스트 박사>에서 그는 중세의 다성음악과 르네상스의 화성음악 간의 대립과 긴장, 해소 관계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 111번>과 <장엄미사>를 통해 풀어가고 있는데, 예술이 종교로부터 벗어난 데 따른 부담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습니다. 바흐에서부터 현대음악가에 이르기까지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음악을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은 경이롭기만 합니다.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묘사도 탁월할 뿐만 아니라,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연상시키는 대목도 있고, 예술가의 고뇌와 더불어, 당시 유럽의 음악계를 풍자하고 있기도 합니다.

베토벤, 바그너, 차이코프스키, 니체에 얽힌 일화를 주인공 아드리안을 통해 재현하고 있는 대목도 있었는데,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 아드리안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 내면의 갈등에 대해 고백하던 중 정신을 잃고, 깨어났을 때 치매 증세를 보입니다. 아드리안이 추구했던 음악과 굴곡 많은 삶은 우리에게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히틀러 치하의 독일 국민의 고통과 전후 독일의 운명에 대해 고뇌하는 토마스 만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토마스 만에게 있어서 문학 작품의 창작은 곧 작곡을 의미했으며, 시간과 공간, 등장인물과 그들의 생각은 음악에서의 모티브와 동일한 기능을 했다.” (아네테 크로이치거헤르 외 엮음, 홍은정 옮김, <클래식 음악에 관한 101가지 질문>, 313쪽)

예순 살이 되던 해, 톨스토이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연주자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를 연주하는 것을 들은 후, 이 곡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어 중편 <크로이처 소나타>를 써서 발표했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톨스토이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두 대의 악기가 자유로운 음역을 넘나들며 숨 가쁘게 엉키는 모습을 통해 남녀의 격렬한 정사 장면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크로이처 소나타>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위험한 음악, 남녀를 불륜으로 치닫게 하는 음악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이 때문에 베토벤의 곡은 본의 아니게 ‘치명적인 사랑을 부추기는 음악’이라는 선정적인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서영처, 앞의 책, 29쪽)

예순 살의 톨스토이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듣고 나서 그런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같은 음악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음악이 가진 여러 가지 속성들 가운데 하나이면서 불가사의한 측면일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열정적이고 자유분방하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두 사람의 내면적 교감과 정서적 일체감을 보고서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겠지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이중주라고 하는 것이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잘 연주될 수 없는 것일 테지만, 강박에 가까운 성격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연주를 계기로 해서 아내를 질투하고 의심하다가 살해하는 이 소설은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심리적 묘사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질투 때문에 아내를 살해한 사내의 고백 형식으로 써내려간 이 작품을 통해, 톨스토이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결혼과 사랑은 별개라는 것을 그렸던 것은 아닐까요. 톨스토이는 1901년에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아내와 자식들과도 좋지 못한 관계였는데, 소설을 읽다 보면 그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열차에서 만난 사람에게 사건의 발단이 된 음악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이렇게 털어놓고 있습니다.

“음악은 영혼을 고양시키지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자극할 뿐입니다. 뭐라고 말할까요? 자기 자신을,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망각하게 하고 자기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음악을 들으면 나는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내가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톨스토이 지음, 이채윤 옮김, <크로이체르 소나타>, 153쪽)

베토벤이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서 영감을 받아 톨스토이가 같은 이름의 소설을 썼지만, 체코의 작곡가 야나체크는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이름의 현악 4중주를 썼고, 프랑스의 에릭 로메르 감독은 이를 영화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는 문학과 음악이지만, 하나의 작품이 다른 작품의 모티프가 되고, 같은 소재와 주제를 각기 다른 음악과 문학이란 형태로 형상화시킬 수 있는 것을 보면, 음악과 문학은 서로 이질적이면서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이광열
학교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줄곧 국내외 현장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종교와 나>, <건설 현장과 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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