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어떤 자매님이 물어왔습니다. ‘어찌하여 가톨릭은 죽은 사람들까지 불러내느냐’고 말입니다. 너무 짧게 질문을 던져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더니, ‘죽은 자들에게까지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미신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겁니다. 일 때문에 종종 만나는 타 교파 신자 분이 그런 질문을 하셨는데, 이 자매님에게는 좀 도전적으로 들렸나봅니다. 아무튼 그래서 생각해 봤지요. 죽은 자들이라…. 아핫! 천국에 간 성인들!

10월 31일은 할로윈〔Halloween : 지금의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브르따뉴 지방의 옛 언어인 켈트어에서 ‘거룩하다(holy)’는 뜻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용이라는 가수를 아는 분들에게는 ‘잊혀진 계절’에 나오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떠오르시겠지만, 여러 나라, 특히 OECD 국가의 젊은이들에는 발렌타인 데이와 함께 큰 연례 축제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그들 중 할로윈이라는 이름의 이 축제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겁니다.

언젠가 고민 많은 동료 수사가 기분전환하자고 해서 밤거리를 걷던 중 홍대 쪽 길로 들어섰다가(당시 제 공동체는 신촌이었습니다. 일부러 향락문화의 거리로 나선 것이 아니니 오해 마시길.) 그 밤에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히는 기현상을 경험하게 됐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청춘 영화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그 쌀쌀한 날, 등이 깊게 파인 하얀 드레스에 머리에 앙증맞은 악마의 뿔을 달고 클럽으로 향하는 늘씬한 아가씨들, 검은 코트를 걸쳐 입고 마찬가지로 뿔을 단 내외국 머스마들.

마치 딴 나라에 온 줄로 착각할 뻔 했지요. 구경거리는 많아서 좋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다가 그날이 시월의 마지막 날, 할로윈이라는 걸 깨달았던 적이 있습니다. 정작 이 친구들이 이 축제의 의미는 알까? 당시 제 안에 올라온 질문이었습니다.

할로윈은 그리스도교의 전례 시기와 켈트 지역의 토속 문화가 만나서 생긴 축제입니다. 그러니까 추수를 마치고 아마도 조상들을 기억했던 전통과 그리스도교가 만나 형성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 전통이 죽은 이들의 영혼(성인들, 순교자들, 돌아가신 신앙인들)을 위한 축제로 승화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현재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전례력에 11월 1일이 ‘모든 성인들의 축일’이고, 2일이 ‘위령의 날’이니 10월 31일 할로윈(죽은 이들을 위한 축제를 여는 전야로서)까지 치면 사흘 연속 이뤄지는 축제인 셈입니다.

이것이 어떤 계기로 변질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저렴하게 말해서, 귀신들을 위한 축제로 인기를 누리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귀신들 중, 좀 더 인상 깊은 유령들, 예를 들어 드라큘라 백작이나 수도사들 복장에 농부의 큰 낫을 들고 설치는 얼굴 없는 귀신같은 존재들, 혹은 목 없는 기사, 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는 해골 등이 단골손님으로 등장합니다. 소품 중에는 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속이 빈 누런 늙은 호박이 그것입니다. 아무래도 상업화의 급물살이 귀신 이야기와 섞여서 축제를 더 자극적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설명했다시피 상업화가 그 본래 의미를 가렸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이 전례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고백을 통해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줍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성인들이란, 교황청에 의해 성인이나 복자품에 오른 이들만이 아니라 이승에서 죽어서 하느님 곁에 먼저 가 있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통공(communion)’은 일치, 하나 됨(union)에 어원을 둔 말로서, 서로 통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통공이란 어려운 말보다는 통교나 소통이 좀 더 알아듣기 편한 말이 될 것입니다. 즉, 이 땅에 살고 있는 신자들과 하느님 곁에 있는 이들이 서로 기도 안에서 통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통공은 현세의 교회와 앞으로 올 미래의 교회가 하느님 안에서 일치로 나간다는 거대한 구도를 보여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를 통해 곧바로 하느님과 소통을 시도해 볼 수도 있고, 동시에 성인들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것을 전방위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느님께 전해 올릴 수도 있습니다.

11월 위령성월이 코앞 입니다. 돌아가신 분들, 특히 연옥 영혼들을 위해 많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잘 토착화된 전례라고 하는 ‘연도’는 사실 ‘연옥영혼들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뜻합니다. 자기 스스로는 연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혼들이 우리의 기도에 힘입어 하느님 곁으로 오릅니다. 그 영혼들이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준 이들을 잊을 리 없다는 것이 우리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믿음 중 하나입니다.

통공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끼리도 서로 기도 부탁을 할 수 있지만, 하느님 곁에 계신 분들께도 기도를 부탁할 수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산 이와 죽은 이는 완전히 분리된 공간 안에 있지 않다고 해야겠습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행사를 축제로 승화시킨 걸 보면, 죽음을 무서워하기보다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잘 준비하는 지혜가 우리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축제 준비 잘 하시길!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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