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정부가 경제, 안보 핑계로 인간 존엄성, 헌법적 권리 유린해”

▲ 30일 저녁,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천주교 평신도 시국기도회가 열렸다. ⓒ문양효숙 기자

“진정한 평화는 시끄러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가슴 속 이야기를 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에 반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권력자들은 ‘평화’와 ‘행복’을 이야기하며 입을 닫으라고 합니다. 저는 이런 ‘무덤 속 평화’를 반대합니다.”

30일 저녁,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천주교 평신도 시국기도회’에서 표창원(이보) 전 경찰대 교수는 현 정부가 “경제와 안보를 핑계로 인간의 존엄성과 헌법적 권리를 유린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표 전 교수는 현 정부를 연쇄살인범에 비유하며, “다른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그들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영철, 강호순 같은 연쇄살인범들은 검거되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살인을 멈추지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욕구 체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연쇄살인범들은 추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연쇄살인보다 치밀하고 심각한 연쇄살인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 연쇄살인범은 아주 특별한 피해자만 공격합니다. 바로 공무원이죠. 그것도 평생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공무원, 양심에 따라, 법과 원칙에 따라 살며, 압력과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오던 공직자들입니다.

이 살해범은 생명을 빼앗지 않고 인격을 살해합니다. 첫 번째 피해자 이름은 권은희, 두 번째 피해자는 채동욱, 세 번째 피해자의 이름은 윤석열입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피해자가 계속 나올 것입니다. 더 나오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잡아서 그 연쇄살인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천주교 평신도 시국기도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그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진실과 정의뿐’이라며, 외압에 영향 받지 않는 독립적 수사를 위한 특검을 요구했다. 또한 특검이 흔들리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면 현재의 내각을 해체하고, 국민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중립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 전 교수는 “가난과 불의에 맞서 싸우지 않는 곳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언급하며, “진실 없이는 결코 타협도, 침묵도, 동조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아궁이에 정의라는 불씨를 지필 며느리가 필요하며, 그 불씨는 바로 여러분이 들고 계신 촛불이다. 언제까지나, 힘들고 지치더라도, 끝까지 그 촛불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 표창원(이보) 전 경찰대 교수 발언 (동영상 제공 / 쿱미디어)

성서학자 주원준 박사는 이날 복음서 말씀인 루카 복음서 13장을 해석하며, “세상의 눈으로 보면 권력자는 영원할 것 같고,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것을 위해 온몸과 영혼을 바치지만,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그런 삶은 불행하다”고 말했다. 주 박사는 “신앙인은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라며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지금 첫째는 영원히 첫째가 아니고 꼴찌도 영원히 꼴찌가 아니다. 예수님도 오늘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고, 그들이 웃는 잔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실천하는 여러분들을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인 신부(예수회)는 “그깟 댓글 몇 개라고 우기던 것이 국정원뿐 아니라 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선거관리위원회까지 엮여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며, 국정원은 “박근혜 씨가 말하는 ‘셀프 개혁’이 불가능한 거짓 집단”이라고 말했다. 박 신부는 “지난 시국기도회에서 한 수녀님이 국정원 해체를 넘어 박근혜 씨의 하야를 말씀하셨을 때,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걱정했으나 근래 밝혀지는 사실들을 보니 박근혜 율리아나 자매님은 자연인으로 돌아와 우리와 신앙생활의 즐거움을 찾으셔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 천주교 평신도 시국기도회에서 박종인 신부(예수회)가 발언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기도회는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2차 천주교 시국선언문’ 낭독으로 마무리됐다. 시국선언문에서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 추진위원회’는 ▲지난 대선에 불법 개입한 국가기관 특검 실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불법 선거 개입 인정 및 사과 ▲검찰 수사에 대한 외압 중단 ▲불법 행위의 수혜자가 된 박근혜 대통령이 실질적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400여 명의 신자와 사제, 수도자가 함께 촛불을 들고 대선 개입 문제 진상규명과 특검 실시를 요구했다. 기도회를 마친 뒤 참가자들은 묵주기도를 하며 대한문까지 행진했고, 행진 도중 피켓과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며 길을 막아서는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언론에서 도무지 알려주지 않아 내 눈으로 직접 현장을 확인하려고 조카와 함께 참석했다”는 양귀자 씨(광주대교구 옥암동성당)는 “기도회 내내 말하는 사람들의 진실성을 느낄 수 있었다. 주위에서는 기도는 교회 안에서 해도 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라고 하는데, 직접 나와 보니 많은 이들이 뜻을 함께하고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 추진위원회는 11월 16일, 모든 이들이 참석할 수 있는 만민공동회를 열어 시국회의 구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양효숙 기자

▲ 천주교 평신도 시국기도회에서 ‘2차 천주교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묵주기도를 하며 대한문으로 행진하는 시국기도회 참가자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시국기도회를 마친 뒤 대한문까지 묵주기도를 하며 행진하는 시국기도회 참가자들 ⓒ문양효숙 기자

ⓒ문양효숙 기자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2차 천주교 신자 시국선언

박근혜 정부는 국가기관 불법 대선개입에 대한 특검을 실시하라!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루카 13,27)

천주교 신자이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벼랑 끝에 내몰려 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가깝게는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군사독재에서 구출한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의해 이처럼 무참하게 훼손된 사실에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지금 국정원은 일반 국민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 등 국기기관조차 눈치를 봐야 했던 유신시대의 중앙정보부를 연상시킨다.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을 조사하던 검찰이 외압에 시달리고, 국정원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한 검찰총장이 물러났다. 특별수사팀장이 검찰 고위층 및 법무부와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수사팀에서 배제되는 대한민국이다.

국정원 뿐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국군사이버사령부와 국가보훈처가 대선개입에 나섰으며, 심지어 정부부처인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마저도 대선개입에 연루되는 등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 의혹이 드러나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보훈처는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종북’으로 매도하는 안보교육 디브이디(DVD)를 정부부처와 시도교육청, 예비군훈련장에 대량 배포해 상영케 했다. 행안부 역시 박정희 유신독재를 칭송하는 내용이 담긴 안보교육 표준교재를 만들어 배포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새누리당은 대선 당시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행위’가 현 정부와 상관없는 일이라도 발뺌하고 있지만, 이 범죄행위를 수사하는 과정 전체를 방해하고, 외압을 가해 온 주체가 법무부와 국정원, 군과 경찰, 검찰의 고위층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가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현 정부가 대선 불법개입을 자행했던 이명박 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새누리당 정권이라는 점에서 연대책임을 져야한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가기관들의 대선개입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모든 시도를 중단하고 불법 대선개입이 자행되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에 협조하고, 응분한 사과와 국가기관의 국기문란 행위 근절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참에 우리는 전두환 정권의 ‘박종철 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으로 6월 민주화운동이 터져 나온 역사적 교훈을 박근혜 정부가 기억하기를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는 사랑의 사회적 표현’이라며 교회와 신자들에게 공동선을 위해 투신하라고 오늘도 다그치고 계신다. 지난 대선에 국가기관의 불법적 개입이 있었다면, 당연히 신자들은 이 불의에 항거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불의를 일삼는 자들과 불의를 모른 체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를 모른다”(루카 13,27)고 대답하실 것이다. 진실을 따라 걷는 사람들만이 하느님 나라 안에 있을 것이며, 불의를 일삼는 자들은 밖으로 쫓겨나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우리는 국정원 사태와 민주주의를 훼손한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을 지켜보면서, 이 문제에 대해 한국천주교회의 성직자, 수도자를 비롯한 모든 신자들이 관심을 갖고 민주회복을 위해 나서주기를 호소한다. 특별히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복음의 빛으로 현 시국에 대한 입장을 밝혀 주십사 청하며, 박근혜 정부와 국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박근혜 정부와 국회는 국정원 등 지난 대선에 불법 개입한 국가기관에 대한 특검을 즉각 실시하라.
2.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가기관을 통한 불법 선거개입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라.
3. 박근혜 정부는 불법 선거개입을 자행한 국가기관 검찰 수사에 대한 모든 외압을 중단하라.
4. 박근혜 대통령은 이 모든 불법적 행위의 책임과 그 수혜자로서,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한다.

2013년 10월 30일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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