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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모의 자격[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예전에 후배가 성당에서 결혼을 할 때 증인을 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부만 가톨릭 신자였고, 그 친구는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결혼한 뒤에 가톨릭 세례를 받게 되어 제가 증인에 이어 대부를 서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그 후배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저에게 유아 영세를 하려는데 대부를 서줄 수 없겠냐고 했습니다. 대자 아들의 대부를 서는 것이 가능한지요?”

어떤 저녁 자리에서 한 지인이 물어온 질문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경우가 교회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어째 그림이 좀 그렇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아버지인 A씨와 그의 아들 B군의 아버지가 동일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대부모의 자격 요건을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세례와 견진성사 때 교회는 대부 한 명만, 또는 대모 한 명만, 혹은 대부와 대모 한 명씩만 두도록 하는 오랜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듯이, 남자는 대부를, 여자는 대모를 모시게 됩니다. 혹은 주로 유럽에 종종 있는 사례처럼 대부와 대모를 한 명씩 다 모실 수도 있습니다.

대부모의 자격과 조건을 교회법은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토대로 위의 사례가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모는,

첫째, 대부모의 임무를 수행할 적성과 의향을 가진 사람입니다.
둘째, 만 16세 이상인 사람(우리나라에서는 만 14세 이상).
셋째,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받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자.
넷째, 합법적으로 선언된 교회의 형벌을 받지 않은 자.
다섯째, 세례를 받는 이의 부모가 아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여섯째, 우리나라에서는 성직자나 수도자는 소속 장상의 허락 없이는 대부모를 설 수 없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교회법전 874조,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 64조)

이 마지막 규정은 성직자, 수도자의 신분상 그들이 서원하는 정결 · 독신의 덕목과 관련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즉, 특정한 사람과 대부모-자녀라는 관계로 매이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첫째로 언급한 대부모의 임무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즉, 세례 받을 어른을 그리스도교 입문 때 도와주는 일, 세례 받을 아기를 부모와 함께 세례에 데려가는 일, 세례 받은 이가 세례에 어울리는 그리스도교인 생활을 하고 이에 결부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돕는 것이 대부모에게 요청됩니다(교회법전 872조).

대부모는 보통 세례성사, 견진성사를 받는 당사자가 알아서 세울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본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 이후에 대부모가 대자녀보다 신앙생활에 열의가 없는 상태가 되지 않는다면, 견진 때 대부모는 아무래도 세례 때 대부모로 정하는 것이 수월할 것입니다. (실제로 대부모가 그 의무를 다 하지 않는 경우를 빈번히 보게 됩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자, 이렇게 검토해 보니, 제 지인의 경우는 교회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대자 아들의 대부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대부모-대자녀 관계를 실제 혈육관계에 빗대어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통문화적 정서상 피하려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그런 질문을 해온 지인이나 저는 머릿속으로 그런 집안 구도에 대해 정서적 거부감을 느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거부감이 가능한 한 없는 구도로 대부모를 설 방법을 찾아봐도 좋겠습니다. 친부모가 아니라면 집안사람들 중 숙부, 숙모 항렬에 걸린 어른들도 바람직합니다. (친부모는 세례자를 키우고 그에게 신앙교육을 시킬 의무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친척들은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냥 이웃보다는 더 있기 때문에 대부모로서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 안팎으로 둘러봐서 대부모가 되어 줄 사람이 없다면, 문화적 정서는 조금 미뤄둬도 좋겠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대부모가 신앙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멋모르고 대부를 서고,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은 대자들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됐습니다. 이젠 얼굴도 이름도 모르게 된 친구들도 있으니…. 이들을 위해, 그리고 무심했던 저를 위해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고자 합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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