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765㎸ 송전탑 공사 재개된 밀양 현장

▲ 부북면 평밭마을 127번 현장의 밤 ⓒ장영식

지난 5월 22일, 밀양은 전쟁터였고 생지옥이었다. 10월의 밀양도 다를 바가 없었다. 달라졌다면, 지난 5월 밀양이 철저히 고립된 섬이었다면 지금의 밀양은 언론과 시민단체의 연대가 함께한다는 점이다.

한전과 경찰의 폭력은 지난 5월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밀양 어르신들을 향한 인권유린은 여전했다. 한전 사장은 10월 1일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10월 2일부터 공사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이미 한전과 경찰은 9월 30일 밤부터 장비와 병력을 공사 현장에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밀양 주민들에 대한 한전과 경찰의 겁박에 중재 역할을 해야 할 밀양시청은 기름에 불을 얹은 격으로 현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움막을 대상으로 철거를 시도하였다. 분노한 주민들은 희망버스를 통해 연대 온 시민들과 함께 철거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며 막아냈다. 이 과정에서, 10월 3일까지 9명의 시민이 연행됐다.

단장면 바드리에서부터 시작된 마찰로 인해 주민들의 실신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상동면과 부북면의 경계 지역인 126번 현장에서는 상동면 주민 세 명이 단식을 하며 송전탑 건설에 맞서고 있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김영자 총무는 심각한 저체온 등으로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 126번 현장으로 가는 입구 ⓒ장영식

▲ 126번 현장에서 단식하고 있는 모습 ⓒ장영식

▲ 단식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주민들 ⓒ장영식

▲ 단식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주민들 ⓒ장영식

▲ 단식에 쓰러진 김영자 총무의 모습 ⓒ장영식

▲ 경찰 앞에 큰 절을 하고 울며 공사 중단을 호소하는 주민 ⓒ장영식

126번 고지는 지난 5월의 88번과 89번, 그리고 127번의 현장처럼 철저하게 봉쇄되었고 주민들은 고립되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차가운 밤이슬을 피하기 위해 텐트를 쳤지만, 경찰은 철거하였다. 또한 추위를 피해 불을 피웠지만, 소화기로 불을 끄며 산림법위반으로 연행하겠다고 겁박하기도 하였다.

126번으로 가는 길은 곳곳에 경찰 병력으로 원천봉쇄되었고,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상동역에서부터 산길을 통해 오르내리고 있었다. 뼈밖에 없는 어르신들의 팔과 다리는 시커멓게 멍들어 있었고, 어느 분은 살점에 상처가 드러나기도 하였다. 이 처참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의료진들과 함께 현장을 방문하려고 하였으나, 현장으로 가는 길목의 입구에서부터 봉쇄되었다. 항의와 기도 속에 의료진 두 명의 출입이 허가되었지만.

밀양 765㎸ 송전탑 건설을 위한 자재 야적장이 있는 4공구 현장은 대규모 경찰병력의 보호 속에 헬기가 끊임없이 자재를 실어 날랐고, 이를 지켜보던 주민과 시민들은 공사 중단을 외치며 항의하였다. 4공구 앞에 설치된 움막의 철수를 위해 밀양시청은 10월 2일과 3일, 공무원 70여 명을 투입하여 행정대집행을 실시하였으나 주민과 시민들에 의해 무산되었다. 이로 인해 4공구 현장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실신하여 길거리에 쓰러지기도 하였다.

바드리 입구에는 동화전마을 주민들이 공사를 반대하며 농성하고 있고, 평리마을 입구에는 용회마을 주민들이 농성하고 있다. 특히 평리마을 입구의 농성장에는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반입되어야 할 최소한의 침구류와 음식과 음료 등의 반입을 두고 주민들과 경찰의 극한 대립이 계속되었다.

127번 공사 현장의 움막에는 10여 명의 어르신들이 쇠사슬로 자신들의 몸을 묶고, 무덤까지 만들며 저항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공사가 강행되면 이 자리에서 모두 죽겠다고 한다. 이 기묘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 어떤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온다.

▲ 신부님과 수녀님, 시민들이 의료진과 함께 126번 현장에 가려고 했으나 원천봉쇄됐다. ⓒ장영식

▲ 126번 현장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는 모습 ⓒ장영식

▲ 4공구 자재 야적장은 경찰 병력의 보호 아래 끊임없이 헬기로 자재를 수송하고 있다. ⓒ장영식

▲ 바드리 입구와 평리 입구에서 경찰과 공사차량의 출입을 막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 ⓒ장영식

▲ 바드리 입구와 평리 입구에서 경찰과 공사차량의 출입을 막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 ⓒ장영식

▲ 경찰의 폭력에 새카맣게 멍든 주민의 팔 ⓒ장영식

초고압 765㎸ 송전탑의 인체에 대한 유해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절대 다수의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송전탑 건설에 대해 정부와 한전은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공사가 필요하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주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지중화 건설과 우회로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 한다.

정부와 한전은 형식적인 명분 쌓기에 급급하지 말고 주민들의 생명권과 생존권, 그리고 평생을 다 바쳐 일구어온 재산권을 존중해야 한다. 국가기간산업이란 이름으로 주민들을 이간하고, 대립하고 분열하게 하는 비인간적 행태는 근절되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권과 생존권보다 더 중요한 국책사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밀양 주민들 중에는 송전선로가 지나는 곳에 500년을 지켜온 종산이 포함된 경우도 있다. 조상님으로부터 이어온 종산을 지켜내기 위해 죽음과도 맞바꾸겠다는 할머니들의 절규와 눈물이 배어 있다. 건강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밀양으로 이주하신 분들도 있다. 그곳에 초고압 송전탑이 선다고 한다. 그래서 죽음으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겠다고 한다.

송전탑이 건설되는 곳의 주민들의 대부분은 손이 거칠고 손가락은 새카맣다. 온몸을 바쳐 남의 일을 해주고 받은 세경으로 하나하나 마련한 눈물의 땅이다. 이 땅을 온전한 보상 없이,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던져주며 강탈당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밀양 주민들은 자신의 전 인생을 놓고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와 한전은 더 이상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재고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밀양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화해야 한다. 이제는 주민들을 겁박하며 강제로 주민들을 쫓아내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는가. 이제는 더 이상 공권력으로 국민들을 억압하며 국민들의 생명권과 생존권을 침탈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는가. 정부 스스로도 한 사람의 국민도 소외되지 않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절규에 귀를 열고 눈을 열고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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