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열의 음악과 나 - 3]

같은 곡이라도 누가 불렀는가에 따라 곡이 주는 느낌은 같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느껴지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음역대가 다르고, 목소리의 특징도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페라 가수마다 자신의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배역이 있지만,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늘려감으로써 목소리가 가진 가능성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가수도 있었습니다.

오페라 가수들 중에는 베르곤치처럼 바리톤으로 시작했다가 테너로 바꾼 가수도 있었고, 슈타데처럼 콘트랄로로 시작했다가 메조소프라노로 바꾼 가수나, 서덜랜드처럼 메조소프라노로 시작했다가 소프라노로 바꾼 가수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성부를 도중에 바꾼 가수들은 제 자리를 찾기까지 숱한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곧 가수들은 타고난 자질 못지않게 그들을 이끌어줄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제자의 목소리가 어떤 음역과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배역이 잘 어울리는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연습시킬 것인지, 스승의 판단에 달렸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1991년의 미렐라 프레니 (사진 출처 / 유튜브 동영상 ‘Mirella Freni - The Metropolitan Opera Gala 1991’ 갈무리)
미렐라 프레니는 동네 음악 선생에게서 배우다가 캄포갈리아니를 찾았는데, 그는 파바로티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프레니와 파바로티 두 사람 다 세계적인 가수가 된 후에도 악보를 읽지 못한다는 소문이 따라다녔던 것을 보면, 캄포갈리아니는 다른 선생들과 달리 두 사람에게 악보를 읽는 법부터 배우도록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니는 귀로 듣고 따라하는 것이 악보를 읽으며 노래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감정을 살릴 수 있는 것을 스승이 알고서, 굳이 악보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파바로티는 음악학교를 나오지 않았던 탓에, 개인 교습에 의존해 목소리를 터득해갔는데, 캄포갈리아니를 만나서는 악보보다는 음악적 감흥에 따라 노래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악보를 읽을 줄 몰랐지만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세기가 낳은 3대 테너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딕션(* 성악에 사용되는 시를 노래하는 방법)이 명료하고 가사의 운율을 리드미컬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에, 벨칸토 오페라에서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 다 캄포갈리아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한 생각도 듭니다. 캄포갈리아니는 베르곤치와 테발디도 가르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러 가수들이 캄포갈리아니를 거치면서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던 것을 보면, 그는 매우 뛰어난 스승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풍부한 성량, 아름다운 음성, 독특한 창법, 그리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러시아 오페라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던 베이스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 샬리아핀이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가 철도원이 되었을 때, 그는 우사토프라는 테너를 만났습니다. 우사토프는 샬리아핀에게서 가수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발견하고, 수업료를 받지 않고 음악을 가르쳤으며, 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필요한 교육과 경제적인 도움까지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단에 입단할 수 있도록 그를 추천해줌으로써 샬리아핀의 음악 인생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사토프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샬리아핀은 오페라 가수가 아닌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미망인에게 평생 생활비를 지급했을 정도로 스승의 고마움을 잊지 못했다고 합니다.

델모나코는 바이올린 전공으로 음악원에 입학했다가, 중도에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었지만, 그래도 자신과 맞지 않아 음악원을 그만두고, 멜로키 창법으로 알려진 멜로키 선생에게서 개인 레슨을 받았습니다. 6년을 배운 후에 로마 오페라 예비학교에 들어갔지만, 학교의 발성법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자, 다시 멜로키 선생을 찾았습니다.

코렐리는 멜로키 선생에게서 직접 레슨을 받지 않았으나, 멜로키 선생에게 배우던 친구로부터 멜로키 창법을 조언 받아 드라마티코(* 관객을 압도하는 힘과 박력이 넘치는 소리로 노래하는 가수)로 무대에 섰습니다.

델모나코와 코렐리 모두 멜로키 발성법으로 세계적인 드라마티코가 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본인의 자질 못지않게 스승의 가르침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괴짜 스승도 있었는데, 몽세라 카바예의 스승 케메니는 육상선수 출신으로, 카바예가 음악원에 입학했을 때, 1년 동안 노래는 가르치지 않고 호흡법만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다음해에도 호흡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레슨의 전부였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 최대한 길게 끌면서 서서히 내쉬는 훈련을, 육상선수가 호흡법을 훈련하듯 스톱워치로 재 가면서 반복한 결과, 카바예가 메차 보체 테크닉(* 고음에서 점차 음량을 줄여 여리고 부드럽게 노래하는 기법)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었던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케메니는 ‘정신 나간 성악교수’라는 말을 들어야 했지요.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가 어머니와 딸 이상의 친밀한 관계를 평생 유지했던 가수도 있었습니다. 테레사 베르간사의 스승은 롤라 로드리게스였는데, 베르간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나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며, 내가 맡을 배역과 노래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주셨고, 내 목소리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언제든지 해결책을 제시해주셨다.’

음역별로 균일한 음색을 가져갈 것과, 다른 파트의 음악까지 이해하라고 한 조언에 따라 열심히 공부한 결과, 베르간사는 악보 읽기와 음악적 판단, 가사의 해석에 있어서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철두철미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동서고금의 차이는 있으나,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으로 모시면서, 함께 길을 갈 때도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했던 과거 우리 선조들의 모습 또한 그들에게서 발견하곤 합니다.
 

 
 

이광열
학교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줄곧 국내외 현장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종교와 나>, <건설 현장과 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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