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열의 음악과 나 - 2]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초상화>, Elias Gottlob Haussmann(1748)
며칠에 나누어 듣다가 보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BWV 846-893> 48곡을 다 듣게 되었습니다(전체 연주시간 4시간 반). 피아노의 중후한 저음과 맑고 투명한 고음이 서로 어우러져, 마치 파도가 해안가로 밀려왔다가 밀려가듯 피아노음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으면, 베토벤이 말했듯이, “바흐는 작은 시냇물(독일어 ‘바흐’의 의미)이 아니라, 거대한 바다”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한 옥타브를 12개의 반음으로 나눈 평균율을 사용해서 만든 모음곡으로, 12개의 음을 장조와 단조로 나눈 다음, 각각 전주곡과 푸가 형태로 만든 48개의 곡(12×2×2)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평균율을 사용함으로써 과거와 달리 한 곡 안에서 다른 조성으로 전주하는 것이 쉬워졌고, 곡의 입체적인 구성이 가능해짐으로써, 대규모 기악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음악은 신을 찬미하는 데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피타고라스 음계에 기초를 둔 수평적인 단선율을 가진 인간의 목소리만 사용할 수 있었고, 기악은 순수하지 못하다고 하여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당시 그레고리오 성가는 강약은 물론 박자와 마디의 구분도 없었고, 선율을 받쳐주는 화성이나 반주도 없이 노래만 있는 단순한 형태의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존 선율과 나란하게 4도, 5도, 8도 차이가 나는 다른 성부가 덧붙어지고, 이러한 독립적인 선율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소리가 더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다성음악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성음악의 복층구조는 가사 전달에 문제가 있었으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가사 전달을 위주로 한 독창성부와 반주 성격의 베이스 저음을 담당하는 기악성부가 결합된 음악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다성음악이 바흐에 의해 대위법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바흐는 수많은 오르간곡, 오라토리오, 실내악곡 등의 걸작을 썼고, 피아노의 연주기법을 현대화시켰으며, 12평균율 음계를 기초로 한 화성법을 확립시켰던 업적으로, 오늘날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바흐가 음악가로서 원숙미를 더해가던 서른일곱 살 무렵, 라이프치히 시의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에 지원했지만, 시의회는 바흐를 제쳐놓고, 다른 음악가를 영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음악가들이 소속되어 있던 궁정이나 교회에서 그들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바흐를 그 자리에 임명했을 정도로, 바흐는 당시 사람들에게, 오늘날 거의 잊히다시피 한 동시대의 다른 음악가들보다 못한 그저 평범한 작곡가였으며,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바흐가 세상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오늘날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바흐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50년이 지난 1801년에야 오늘날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라고 불리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 출간되었고, 독일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바흐의 전기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에 대하여>가 1802년 포르켈에 의해 출간될 수 있었으며, <마태수난곡 BWV 244>은 만들어지고 난 후 백 년 만인 1829년에 멘델스존의 지휘로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바흐는 생존해 있을 당시 지극히 평범한 존재여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가, 사후 오십 년, 백 년이 지나면서 그의 음악의 진정한 가치가 사람들에게 하나 둘씩 알려지게 된 음악가였습니다.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에 대하여>에서, 포르켈은 바흐를 이렇게 평하고 있습니다.

“한순간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을 넘어서, 들으면 들을수록 알면 알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하며, 작품 속에 축적되어 있는 거대한 악상의 풍부함이 그 작품을 수없이 음미한 다음에도 새로운 것을 남겨 우리로 하여금 감탄하게 한다.”

바흐는 생전에 동시대 음악가들의 곡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고, 당시의 음악을 집대성한 음악가였습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비롯하여, 수많은 칸타타와 관현악 모음곡, 클라비어 협주곡, 토카타와 푸가, 모테트 등 현재까지 알려진 곡만 1,126곡을 남겼습니다.

바흐가 남긴 수많은 곡들 중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 대해서는 숱한 일화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접하고 나서 작곡의 기초를 다시 공부하였다고 하며, 쇼팽은 연주회를 앞두고 있을 때면 이 곡을 연주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고 하고, 베를린필의 초대 상임 지휘자였던 뷜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피아노 음악의 신약성서’라고 한다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48곡은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고, 시바이처는 이 곡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감화를 준다고 했던 것을 보면, 이 곡이 후세 음악가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정경화도 한 인터뷰에서 “바이올린을 잡은 후 단 하루도 바흐를 연주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고, 이보다 더 아름답고 깊이 있는 음악은 없을 정도로 모든 음악의 으뜸이며, 자신이 죽으면 틀어주길 바라는 음악이 바흐의 음악”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부활절 칸타타를 준비하면서, 바흐의 모테트 <예수, 나의 기쁨과 소망 BWV 147> 중 6곡인 ‘ 예수, 인간의 소망 기쁨(jesu, joy of man’s desiring)’을 칸타타 중간 곡으로 포함시켜 연습 후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수개월 동안 칸타타 연습을 했던 탓인지는 모르나, 이 곡의 선율이 오르간의 반주와 더불어,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흐의 작품으로 알려진 1,126곡을 다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나, 한 곡 두 곡 듣다 보면 바흐에 대해 그만큼 알아갈 수 있겠지요. 바흐로부터 서양 음악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들을 수 있는 한 그의 음악을 하나씩 들어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이광열
학교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줄곧 국내외 현장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종교와 나>, <건설 현장과 나> 등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