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법인 설립 25주년 초청강연회 열려
한상봉 편집국장 “복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경제적 변혁을 아울러야”

▲ 20일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강당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정복희 천사노인요양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가 법인 설립 25주년을 맞이해 초청강연회를 열고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배현하 신부(원주교구 사회선교국장)는 “2015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가톨릭사회복지회가 지역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길 바란다”며 “그동안 원주교구는 좁은 의미의 사회사업에 집중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넓은 의미의 사회복지를 위한 사회사목적 관심이 적었던 게 사실”이라고 자평했다.

지난 20일 원주시 봉산동의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법인 강당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정복희 원장(천사노인요양원)은 원주교구 사회복지활동의 역사를 살피면서, 교구가 설립된 1965년부터 1978년까지 원주교구 사회복지활동은 “무엇보다 먼저 지역 주민들의 곤경을 외면하지 않고 즉각 도움을 제공하고, 도움이 필요한 개인과 집단의 욕구를 체계적으로 조사연구한 후 개입을 계획”해 지역 주민의 상황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또한 개입 과정에서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들과 협력해 연대성을 높였으며, 지역사회의 자기 역량 강화에 비중을 두고 보조성의 원칙을 엄밀히 지켰다고 평가했다.

1979년부터 1987년까지는 원주교구 인성회 등이 설립되어 사회복지활동이 좀 더 전문화되었고, 1988년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법인 설립 이후 정부 지원사업으로 규모가 큰 생활시설과 이용시설이 확충되어 복지법상 ‘종합복지사업’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이 모든 일이 지학순 주교 재임기간에 이루어진 일로 “지 주교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의 결실이었다”고 평가했다.

예수님처럼… 사회복지 주체와 대상의 경계 허물어야

‘사회복지 실천의 가치와 가톨릭교회’라는 주제로 초청강연에 나선 한상봉 편집국장(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은 “교회의 과업이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하느님 나라’를 다시 선포하는 것이고, 그 하느님 나라가 ‘복지(福地)’를 뜻하는 것이라면, 사회복지(福祉)는 이 세상을 복지(福地)로 만들려는 모든 노력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사회복지는 “단순히 장애인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와 탈북자, 이주민과 여성, 아동과 청소년, 노동자, 농민들에 대한 돌봄이며,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의 ‘행복 가능성’을 가로막는 우리 사회의 정치 · 경제 · 문화적 측면의 변혁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톨릭 사회복지의 영성적 측면을 다루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예수가 사랑한 사람들을 사랑하려는 이들의 신앙”이라며, 복음서는 예수가 ‘사랑받을 만한’ 그 백성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예수의 신원이 백성의 신원과 다름없다면, “사회복지의 주체와 사회복지의 대상을 구분하는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사회복지는 “예수가 예수를 위해 일하는 거룩한 과업”이라는 것이다.

▲ 한상봉 편집국장 (사진 제공 /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위태로운 ‘미혼모’였으나 요셉의 도움으로 가정을 꾸렸습니다. 예수와 그 가족들은 한때 고향인 나자렛을 떠나 이집트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했던 ‘이주민’이었습니다. 요셉은 ‘이주노동자’로 객지에서 참담한 세월을 견뎌야 했던 것이지요. 요셉이 일찍 죽고 나서, 예수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한부모 가정의 ‘소년 가장’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과부가 할 수 있는 돈벌이는 극히 제한되어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에 속했던 이들은 고아와 이방인과 더불어 ‘과부’였지요.

예수의 아버지는 ‘노동자’였으며, 예수 역시 ‘목수의 작업대 아래서’ 놀면서 성장했으며,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지역에서 ‘농부’로서 농사일을 거들거나 목수 일을 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나자렛이라는 작은 고을에서 목수 일로만 생계를 구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만 나자렛에서 5㎞ 정도 떨어진 세포리스에서 대규모 공사를 하였으므로 ‘잡역부’나 ‘건축노동자’로 살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수는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을 떠나 ‘머리 누일 곳도 없이’ ‘노숙인’처럼 살았고, 수많은 ‘신체적, 지적 장애인’들을 만나고, 이들을 치유해 주었으며, 상처받은 ‘병자’를 고쳐주었으며, 하느님 나라의 ‘설교자’로 살다가, 공권력에 연행되어 감옥에 갇힌 ‘양심수’였으며,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공권력에 의한 희생자’였습니다.”

이어 한상봉 국장은 1976년 원주교구 인성회가 조직되고, 1983년에 교구의 대사회 활동을 총괄하는 사회사업국(초대 국장 최기식 신부)이 만들어지면서, 이 안에 사회복지부와 사회개발부가 포함되었지만, 1988년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가 설립되면서 시설 중심의 ‘종합복지사업’으로 발전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국장은 “규모가 커지고 전문역량이 깊어졌다는 의미에서 발전이지만, 본래 가톨릭사회복지회의 모태인 인성회의 설립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사회개발 등 사회사목적 측면이 도외시한 발전”이라고 지적했다.

한 국장은 “이 시점에서 과연 원주교구가 지역의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과 교육, 연대, 문제 해결에 얼마나 심도 있게 접근해 왔는지 성찰해 봐야 한다”면서 “혹시 ‘돈이 되면서 성과도 남는’ 사업에 집중해 온 게 아닌가” 물었다. 이어 “교회는 기본적으로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야 하며,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가 되어 주고, 때로는 행정당국과 마찰을 빚더라도 인권을 위해 투신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한국 사회의 정의평화운동은 ‘정의평화위원회’만의 몫이 아니며, 이주민 문제는 단지 ‘이주사목위원회’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고민거리’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한 국장은 “교구의 모든 본당이 ‘사회복지’뿐 아니라 ‘사회사목’의 전진기지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교구는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신자들을 양성하고, 영적 · 물적 지원을 제공하고,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구에 “사회복지와 사회사목을 통합할 수 있는 구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현재의 사회선교국이 맡을 수도 있고, 사회사목국을 신설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한 국장은 원주교구가 가톨릭신자나 단체가 아니더라도 지역 내 선의의 사람들과 연대하는 게 필요하다며 “가톨릭사회복지회 활동가가 법적 권리투쟁에 나선 장애인단체와 연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교구가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복지뿐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가 시설복지에 목매고 있는 현실에서는, 행정당국과의 마찰을 우려해 ‘시설 내 관리’에 치중할 뿐 클라이언트들의 법적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을 꺼립니다. 어떻게 보면 복지회가 복지 대상자의 ‘복지’를 다른 방식으로 배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를 사회교리에서 강조하는 ‘연대성의 상실’이라고 불러도 좋을까요.”

마지막으로 한 국장은 “각 본당이 이러한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센터가 되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다. 그는 성당 안에 생협이 있듯이, 노동상담소나 무료식당도 있고, 본당 사제와 신자들이 그 지역 안에서 활동하는 다른 종단이나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만나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본당 교리실 등 공간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민을 위한 교육기관의 역할을 본당이 수행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여러 본당의 물적 · 인적 자원을 교류하며 나눌 수 있겠습니다. 이게 친교의 교회이고, 세상을 위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 자신을 위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듯이, 교회는 교회 그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신자들이 삶을 통해, 본당 내 신앙생활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신앙은 취미생활에 머물거나 관념적 신앙에 그칠 것입니다.”

한상봉 국장은 “사회복지는 사회사목의 지평 안에서 완성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그동안 사회사목을 ‘사회복지’로 환원시켜 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물었다. 이어 “가난한 이들의 당장의 필요에 응답하는 ‘복지’와, 가난을 구조화시키는 권력구조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운동’을 통합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는 오는 23일 법인 설립 25주년 감사 미사를 오전 10시 30분에 법인 잔디마당에서 봉헌하고,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의 역사와 미래를 조명하는 홍보관과 복지체험 마당, 사랑 나눔 바자회를 다음날 오후 9시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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