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 인터뷰
“가톨릭은 믿는 게 아니라 사는 겁니다”[인터뷰] 이탈리아 초등학교 가톨릭 종교 교사, 장수희 씨

“가톨릭을 학문으로만 알았던 저에게, 종교와 삶이 연결된 이탈리아의 문화는 큰 충격이었어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톨릭 종교 교사로 일하는 장수희 씨가 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다.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는 ‘가톨릭 종교 교육’을 초등학교에서는 필수, 중 · 고등학교에서는 선택 과목으로 두고 있다. 수업 내용은 우리나라의 도덕이나 윤리 수업과 비슷하다. 2천년동안 이탈리아의 문화와 철학의 근간이 된 가톨릭의 윤리에 따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장 씨는 인터뷰에 앞서 “13년간 초등학교에서 가톨릭 종교 교사로 일하며 배우고 느낀 점을 한국의 교우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장 씨가 알기로는 이탈리아에서 같은 직업을 가진 한국인은 본인뿐이다. 그는 1986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선교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지인과 결혼해 완전히 이탈리아에 정착한 뒤로는 수년간 본당 교리교사로 활동했고, 2001년 가톨릭 종교 교사 시험을 통과해 자격을 얻었다.

장 씨는 공부와 교사 활동을 통해 “인간의 종교적 심성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삶으로 연결되는지를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까지 장 씨에게 가톨릭이란 ‘학문적 관심’, 그리고 ‘낯선 문화에 대한 동경’이었다.

   
▲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초등학교 가톨릭 종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장수희 씨 ⓒ한수진 기자

전형적인 유교가정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에서 가톨릭학생회를 통해 가톨릭을 접했다. 처음 접한 낯선 문화는 한창 자신의 존재와 미래를 고민하던 20대 여대생의 세상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했다. 졸업 즈음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기로 결정한 장 씨는 본격적으로 가톨릭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느꼈다. 그는 취업이나 결혼 대신 편입을 택했다.

그의 두 번째 대학인 서강대 종교학과는 당시에 평신도들이 가톨릭 신학을 접할 수 있던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교수와 학생들에게서 느낀 가톨릭 문화와 분위기는 그의 공부 욕심을 계속 자극했다. 그를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오르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탈리아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가톨릭의 유산이 역사와 예술, 문화, 철학에 녹아있어요. 그 속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공동체가 움직여왔죠. 한국에선 특정한 계기로 가톨릭을 접한 뒤,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일지 여부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가톨릭을 삶의 모든 부분과 완전히 연결하기가 어려워요. 삶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런 점은 장 씨에게도 걸림돌이 될 뻔 했다. 가톨릭 종교 교사 자격시험에 응시하려고 밀라노 교구청을 방문했을 때, 담당 사제는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가톨릭 신자가 적은 유교와 불교의 나라에서 어떻게 가톨릭을 공부했는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했던 거였다. 그럼에도 장 씨는 이탈리아 시민권과 본당 신부 추천서 등 일체의 서류를 완벽하게 제출하고 시험에 합격해 자격을 얻었다.

가톨릭 종교 교육에서 평신도의 역할 커
종교교육은 가톨릭국가 시민이 가져야 할 윤리 중심 

가톨릭 종교 교사의 양성은 각 교구 신학교에서 이뤄진다. 자격 요건 중의 하나가 대학 수준의 신학교육 수료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일반 대학에 신학과가 없는 대신 교구 신학교에서 평신도를 대상으로 한 학위과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 과목과 교수진은 사제양성을 위한 신학교 과정과 차이가 없다. 장 씨는 “종교 교사를 준비하는 평신도를 위해 심리학과 교육학, 사회학이 더 첨부되기도 하고, 다문화시대를 맞아 불교와 이슬람 등 다른 종교를 다룬 과목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수업 시간은 직업이 있는 평신도도 수강할 수 있도록 오후나 주말에 배치되지만, 전체 과정은 5년으로 일반 학부과정과 같은 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가톨릭 종교 교사 중에는 성직자와 수도자보다 평신도의 수가 많다. 이전에는 사제들이 가톨릭 종교 교사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점차 평신도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교구에서도 평신도 교사 양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 씨는 “평신도는 사제들이 닿을 수 없는 생활에까지 밀착되어 있어 가르침의 폭이 훨씬 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제들은 본당 소임을 겸하고 있어 수업시간 외에 학생 상담과 학교 운영에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가톨릭 종교 수업의 교과 과정은 교육부가 정한 국공립학교 교육 목표에 맞게 주교회의에서 만든다. 교재와 교수법 연구에는 신학자들이 대거 참여한다. 수업의 목표는 분명하다. 가톨릭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윤리적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하느님의 존재, 선과 악의 구분, 다른 종교와의 공존 등 기본적인 개념을 가르치고, 고등학교에서는 기아와 질병, 부정부패, 안락사, 전쟁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어느 날 학생들이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고 하루 종일 슬퍼하고 울었어요. 그래서 한 학생에게 그렇게 울면 하늘나라에 가신 너희 할아버지도 속상해하신다고 말했더니, 나중에 아이가 ‘우리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해서 힘들어하셨는데, 하늘나라에서는 담배를 마음대로 필 수 있겠네요’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천국의 개념을 배운 거예요.”

장 씨는 “학교 교육을 통해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건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일이라 새로웠다”고 말했다. 어른들도 논하기 어려운 주제이지만, 학생들의 나이와 주변 환경 등 구체적인 생활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각자의 수준에 맞게 이해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단계까지 이를 수 있다.

“교사들이 바라는 건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야할지 자신에게 질문하는 능력이 생기는 거예요.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향해 사는가, 이런 질문들을요.”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고민이 생기면 학교에 있는 전문 상담가를 찾기도 하지만, 가톨릭 종교 교사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장 씨는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다 보니 일반 상담으로는 성이 안차나보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탈리아 아이들, 학교 안이든 밖이든 교회의 보살핌 받을 수 있어
청소년 공간 ‘오라토리오’(Oratorio)에서 놀면서 관계망 형성


학교의 행정과 운영에도 가톨릭 종교 교사들은 다른 과목 교사들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예를 들어, 학교가 학생의 퇴학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가톨릭 종교 교사가 학교와의 대립을 불사하면서까지 학생의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지역 본당의 교리교사들과 정보를 공유해 학교 밖에서도 학생들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교구 차원에서 교구 내 가톨릭 종교 교사와 교리교사가 모이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마련하기는 하지만, 가톨릭 종교 교사는 거주 지역 내 학교에 배치되기 때문에 어차피 교리교사들과 한 동네 사람이라 자연스레 소통이 이뤄진다.

또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동네 성당에 있는 청소년 공간 ‘오라토리오’(Oratorio)에서 놀면서 교리교사나 청년 봉사자들과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오라토리오는 19세기에 돈 보스코 성인이 시작한 청소년 사목 프로그램으로, 이탈리아 교회에 뿌리 깊이 정착해 동네 어린이 · 청소년들의 방과 후 교실이자 놀이터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학교 안에서든 밖이든 교회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성당을 안 나가고 냉담을 하더라도 가정과 학교에서 가톨릭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을 전수받아요. … 하느님이 누구인지 알려면 먼저 인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러다보면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쳐갈 수 없는 거죠. 인본주의에 가치를 둔 인성이 깊게 깔려있는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이탈리아 사람이 학교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 씨는 그가 만난 이탈리아의 선한 이웃들에게서 평생에 걸쳐 뿌리내린 가톨릭의 정신을 볼 수 있었다.

이주민 이웃들을 집으로 불러 언어를 가르쳐주고 그들 자녀들의 학교 숙제를 도와주는 학부모, 난민들과 공동체를 꾸려 한 집에 살면서 온 몸으로 가난한 삶을 실천하는 신학대학교 교수, 부모 없는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는 것을 삶의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는 부부. 거창한 일이라기보다 누구나 하느님에게서 받은 ‘삶’이라는 선물을 이웃과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는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이들처럼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착한 이웃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성인처럼 기적을 일으키지는 않았어도 평범한 신자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눈부신지 몰라요. 특별한 영성을 키워서 뭔가 이루겠다는 생각보다, 하느님이 주신 삶 자체를 귀중히 여기면서 가난하지만 밝고 투명하게 사는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한수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