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희의 이탈리아 종교 수업 이야기 - 1]

이탈리아에서는 초등학교 여자 교사를 ‘마에스트라’라고 부른다. (남자 교사는 마에스트로.) 이 말은 라틴어 ‘마기스터(Magister)’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의미는 ‘가르치는 사람’, 즉 ‘교사’를 의미한다.

종교교사는 아이들 혹은 중 ·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특별한 이미지로 부각되는데, 수업을 통해 삶의 의미를 질문하게 하고 그 답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도와주며 아이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어머니 혹은 친구 같은 존재가 된다. 다음은 초등학교 4학년 학급에서 ‘종교와 삶’이라는 주제로 열린 첫 번째 수업이다.

선생님은 칠판에 커다란 물음표를 그리고, ‘왜’ ‘어떻게’라는 단어를 썼다. 아이들은 모두 의아해하는 눈으로 서로들 쳐다본다.

“자, 오늘은 우리 모두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 살고 있는 자연과 세계에 대해 커다란 질문을 해보기로 합시다. 여러분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어떤 생각과 기쁨, 행복 등을 느끼나요?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지면 왜 계절이 바뀌고 잎이 떨어지는지,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만약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거나 지진이 일어나면 여러분은 무섭고 두려움을 느끼겠지요?

이러한 자연에 변화에 대해 인간은 어떤 생각과 행동들을 할까요? 당연히 기쁨과 행복을 누리려고 하고, 두려움에 대해서는 누군가 그들보다 큰 힘에 의지하려 하겠지요? 더불어 ‘누가 이러한 대단한 힘을 보냈을까? 그리고 왜 인간은 이러한 힘에 대해 약한 존재 일까?’ 등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할 수 있지요. 그럼 오늘 여러분도 나처럼 이런 생각들을 해보고 각자 할 수 있는 질문들을 해 보기로 합시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머리에 문득 스치는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왜 갓난아기인 내 여동생은 밤새도록 울어대죠? 왜 내 친구는 나와 눈 색깔, 머리색이 다르죠? 왜 나는 수학 공부가 그렇게 싫을까요? 전쟁은 왜 일어나고요? 나는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나요? 정말 인간의 기원은 원숭이로 거슬러 올라가나요?”

아이들은 신이 나서 내기라도 하듯, 그러나 사뭇 진지하게 머리를 갸우뚱대며 질문을 퍼붓는다. 마치 철학자들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정말 여러분은 훌륭한 생각들을 갖고 있어요. 맞아요. 이런 모든 궁금한 것에 대해, 이제부터 나와 함께 해답을 찾아가 보도록 합시다.”

교사의 칭찬에 아이들은 모두 으쓱해 한다. 아이들은 주변에 널려있는 무수한 자연현상과 생활, 세상에 대해 그들 나름대로의 많은 의문들을 갖고 있으나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보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마치 어느 누군가 이미 계획하고 생각한 것을 쫓아가는 것이 당연하듯이, 즉 남의 삶을 살 듯 자신의 삶을 사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나는 왜 친구들과 다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가 없는 생활을 하기 때문인 것이다.

▲ 이탈리아 어느 성당에서 열린 세례식에 참석한 소년이 세례 받는 동생을 위한 촛불을 들고 있다. (* 사진은 칼럼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김용길

종교수업은 이렇게 아이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연과 세상, 삶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그 의미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자연, 과학 수업을 통해 이 세상과 인간의 기원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오늘 선생님이 요구하는 질문과 대답은 사뭇 다름을 깨닫는다.

“자, 오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자연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각자가 질문을 던져 보기로 해요. 난 어떻게 해서 세상에 태어났는지? 물론 아빠, 엄마가 아니었으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리 없겠죠?”

그 순간 한 꼬마가 손을 번쩍 들며 말한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난 엄마, 아빠가 나를 낳게 하기 위해 어떤 분에게 늘 기도했는데 그분이 작은 씨앗을 우리 엄마 뱃속에 넣어 주셨대요. 그 씨앗이 커서 내가 되었대요.” 아이들은 깔깔대고 웃음을 터트리며 “그럼 넌 씨앗에서 왔니?” 하고 맞장구를 친다.

“난 우리 엄마가 아빠와 함께 자면서 생겨나게 됐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난 그런 것들을 하나도 안 믿어. 너희들은 참 무식해.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실험실에서 태어난다고 하던데?”

한 아이는 과학자라도 된듯 으스대면서 대답한다. 아이들의 토론이지만 매우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과학과 종교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물음 속에서 이미 과학적 사고로 삶을 바라볼 뿐, 그 이상의 생각들은 해 보지도, 들어 본 적도 없다.

마에스트라는 한참 동안 생각한 뒤, “어떤 보이지 않는 지혜로운 분이 엄마, 아빠에게 큰 사랑을 불어넣어 주셔서 너를 태어나게 했다”라고 설명한다. 아이들에게는 놀라운 발견이다. 즉 ‘그분’이란 말.

마에스트라는 인간의 탄생은 단지 생물학적 · 진화론적인 이유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분의 은총임을 설명한다. 부모님들은 이러한 은총의 협력자이며 그들의 탄생은 곧 생물학적 결합의 탄생만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이다.

질문을 하는 아이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진지하다 못해 심각하기까지 하다. 그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의 존재감을 느끼는 듯 신나고 행복해 한다. 서로 비판을 시작하고 자기 주장이 옳다고 우기기도 하며 나름대로 토론을 시작한다. 교실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지자 마에스트라는 시선을 집중시킨다.

질문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과정임을 설명한다. 물론 아이들이 모든 질문을 잘 할 수 있지는 않다. 질문의 내용도 앞뒤 구분이 없고 논리도 엉망이다. 선생님은 질문을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가 질문을 찾아본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종교수업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가 주변 환경(세상, 자연, 인간)에 대해 질문을 해보고 거기서 느끼는 원초적인 감정, 생각 등을 통하여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선생님은 질문의 종류와 방법에 따라 해답도 다르며 과정도 다름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삶과 세상에 대해 과학이 할 수 있는 질문(이 세계는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과 종교가 할 수 있는 질문(왜 우리는 살아야 하나? 왜 죽음이 존재하나?)은 다르다고 설명한다. 즉 ‘왜’와 ‘어떻게’와의 차이다.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 또한 다르지만 이 두 가지 길은 모두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유익하고 필요한 것임을 설명한다. 즉, 과학과 종교는 서로 해답을 찾는 길은 다르지만, 각자가 전해주는 진리는 서로 보완성을 갖고 있기에 두 길은 모두 필요한 길임을 설명한다. 과학과 종교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함께 진리를 찾는 길이라고. 예를 들어 세상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방법이 있고 신화나 고고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방법도 있음을 설명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던진 질문을 두 부류로 나누어 다시 정리해준다. 즉 ‘왜’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질문을 구별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질문 ‘어떻게’와 과학을 뛰어넘는 ‘왜’라는 질문의 성격은 다르고, 그 해답을 찾는 방법도 다름을 설명한다. 두 가지 길 중 종교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길임을 설명한다.

아이들은 오늘 집에 돌아가면 부모에게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할 것이다. “엄마, 마에스트라가 그러는데 어떤 분이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를 잘 알고 있었고, 나를 무척 사랑했기에 엄마, 아빠를 통해 세상으로 보내주었고, 마태오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대. 정말일까? 그분은 어떤 분일까?”라고 말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그들의 태어남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다.
 

 
장수희 (헬레나)
이탈리아 국립초등학교 가톨릭 종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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