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민 신부, 작은형제회 대화위원회에서 특강

작은형제회 대화위원회 특강이 지난 18일 서울 정동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에서 열렸다. 이날 대화위원회 위원장 오수록 수사는 한국 교회가 다종교 문화 속에서 인터넷이 발달해, 한 종교나 단체가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가 지나갔다며 종교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 수사는 기조강연에서 “예전에는 정보를 많이 가진 이가 귄위를 지니고 있었으나,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권위 쏠림 현상이 사라지고 있으며,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로 나누던 이분법과 배타성보다는 포용하는 태도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불교의 “불법을 믿지 않아도 성불할 수 있다”는 말은 ‘불교 밖에서도 성불할 수 있다’는 말이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받아들인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는 말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 이제민 신부 ⓒ한상봉 기자
이날 ‘다(多)의 발견’이란 주제로 강연을 맡은 이제민 신부(마산교구, 명례성지)는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면 기도 중에 침묵해야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듯이, 자기 소리를 죽여야 상대방의 소리가 들린다”며 “종교간 대화를 위해 타종교에서 먼저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제민 신부는 “복음이란 인생을 기쁘게 사는 비결”이며 그 핵심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우리 가운데로 왔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드러나도록 하신 예수님처럼 내 존재가 하느님을 드러내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어 “모든 이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믿는다면, 무당이든 누구든 하느님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고 여겨야 하는데, 교회는 교회 울타리 안으로 그 가능성을 제한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제민 신부는 ‘순수한 그리스도교’는 없다며, “타종교나 타문화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종교는 없다”고 전제하고, 예수 역시 ‘순수 유다인’이 아니며 이스라엘 성조들도 여러 민족과 피가 섞이면서 계승되어 왔음을 상기시켰다. 예수는 오히려 이방인이었던 백인대장을 보고 “이 사람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역시 처음엔 유다교에서, 이어 그리스, 로마, 게르만 민족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이 신부는 성탄절은 로마 문화권의 태양신 숭배 신앙에서 나왔으며, 동지 즈음부터 낮이 길어지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의 태양인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빛이 많아졌음을 상징한다고 전했다. “부활절에 찐 계란을 주는 게르만 문화가 교회에 들어온 것처럼, 종교는 다양한 문화가 자신 안에 스며들도록 허용해야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이제민 신부는 “현재 가톨릭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것, 미사 전례나 사제직 등도 예수가 와서 보면 모두 생소한 것들”이며 “내가 언제 너희를 사제로, 수녀로 삼았느냐”며 반문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이제민 신부는 싱크리티즘(syncretism)을 ‘종교혼합주의’로 번역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모든 종교는 다른 문화, 종교와 서로 영향을 받으며 토착화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해 왔기 때문에 ‘순수한’ 그리스도교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타종교 안에 이미 현존하는 하느님을 알아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이제민 신부는 “그리스도교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지금처럼 뿌리내린 것처럼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문화를 통해 자신을 계시한다”고 말했다. “실상 가톨릭교회가 보편적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교회가 다르고 한국 교회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계시는 누군가에게만 배타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런 점에서 “타종교 역시 구원의 장소”이며 “어느 종교나 인간에게 행복을 주려고 하며, 종교의 이런 속성 때문에 종교가 지금까지 현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복음서에서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는데 “우리식으로 말하면 좁쌀 하나에도 하느님 나라가 감추어져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좁쌀 한 알에도 신성이 있다는 것이고, 결국 이것을 보는 사람은 복되다는 게 복음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무한한 하느님이 유한한 좁쌀 안에 현존한다는 게 신비이며, 신적인 것이 비신적(非神的)인 것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며, 같은 것이 다른 것 안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같은 진리가 다른 종교 안에도 머물러 있다. 예수님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원수마저 사랑하라고 하신 분이다. 당연히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도 사랑하시는 분이다. 그러니 타종교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안다면, 배타적 신앙은 있을 수 없다.”

이제민 신부는 이처럼, 하느님은 어느 곳 어느 종교 안에서나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며 당신을 계시하시고, 그리스도교 역시 여러 종교와 문화들과 만나면서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대화는 종교에서 본질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바로잡습니다>

기사 중 “오수록 신부”, “오 신부”로 보도된 부분을 각각 “오수록 수사”, “오 수사”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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