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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야, 미안해[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 - 31]

   
▲ 무성하던 콩잎은 어디로 갔을까? 앙상한 콩대를 바라보며 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청라

귀농 첫 해 빼고는 된장을 손수 담가 먹어보지 못했다. 해마다 야생동물 때문에 콩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콩나물 대가리 같은 싹이 얼굴을 내밀 때는 비둘기가, 잎이 어느 정도 자라기 시작하면 고라니나 토끼가 콩잎을 죄다 뜯어먹는 통에 씨나 건지면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그러니 된장이나 청국장 담가 먹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고, 푸지게 두부 한번 못해 먹어봤다. 남들은 콩 농사가 가장 쉽다지만 우리에겐 그야말로 남 얘기라 다른 집 콩밭 앞을 지날 때마다 마냥 부러운 눈길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신랑이 콩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겠다며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비둘기로부터 콩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애초에 콩을 모종으로 해서 옮기고, 엉성하지만 대나무로 울타리도 둘렀다. 심지어 지난해 우리 콩밭을 단골로 드나들었던 토끼를 위해, 울타리 밖에 토끼가 먹을 콩도 꽤 많이 심었다. ‘울타리 밖에 있는 것은 얼마든지 먹어도 좋다. 그러나 안에 있는 것은 건드리지 말라’ 하는 염원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이 정도 마음을 냈으면 토끼도 사정을 봐주겠지’ 했는데, 천만에! 토끼는 울타리 밖의 것은 두고 안에 있는 것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식성이 어찌나 좋은지 하룻밤 사이에 콩밭이 숭숭 비었다. 이파리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알뜰하게 뜯어 먹으니 콩은 더 자라려야 자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뿐인가. 이 녀석은 마치 약을 올리려고 일부러 그런 것처럼 콩밭 한가운데 푸지게 똥까지 누고 갔다. 그걸 보는 우리 신랑 마음이 어떻겠나. 그동안 콩밭에서 코를 박고 살며 온갖 정성을 들였는데 또 다시 토끼에게 지고 말았으니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 콩밭을 지키기 위해 특별 파견된 곰별이. 그런데 토끼가 곰별이를 별로 안 무서워하는 것 같다. ⓒ정청라

결국 좀 더 크면 밭으로 보내려 했던 강아지 곰별이를 그날 즉시 밭으로 파견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배달해야 한다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그 정도야 뭐. 부디 곰별이가 무섭게 짖어 토끼를 쫓아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날 밤에 토끼가 또 흔적을 남겼다. 곰별이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콩잎을 뜯어 먹은 것이다. 전보다는 덜 먹었지만 어찌 되었건 곰별이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때문에 뒤늦게 허수아비도 세우고 콩밭에 날마다 목초액도 뿌리고 큰 돈 들여 철망을 사서 그전보다 번듯하게 울타리도 둘렀다. 하지만 하루 이틀은 안 먹는 것 같더니 또다시 야금야금 먹어가는 흔적이 발견되었다.

“짐승들 땀시 농사 못해먹는당께. 콩잎에다 약 놔. 하얀 가리 뿌리면 안 먹을 텐디. 아니면 덫을 놔서 잡아블어.”

이웃집 아주머니가 안타까움에 겨워 도움말을 주셨다. 그 얘길 들으니 정말 콩잎에 약이라도 뿌리고 싶고 덫으로 토끼 녀석들을 잡아서 무섭게 응징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때마침 다울이가 도서관에서 <피터 래빗>이라는 책을 빌렸는데,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려진 토끼가 더 이상 곱게 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맞닥뜨린 토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약탈자요 된장 담그는 꿈을 산산이 부서뜨리려고 하는 원수였으니 말이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내내 주인공인 토끼 편이 아니라 울타리 안 농장 주인의 편이 되어 있는 내 자신을 보고는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다. 예전에는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뭐냐고 물으면 ‘토끼’라고 대답할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내가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고운 눈길 대신 쌍심지를 켜고 있다니,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사이가 어그러졌을까?

마을 어른들에게 들으니 옛날에는 야생동물 피해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건 동물과 사람 사이 관계가 지금보다 순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들에서 밥을 먹으면 ‘고시레!’ 하면서 동물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남겨 주기도 했고, 야생동물에게 농사를 도와달라고 하며 부탁하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니까. 돌이켜보면 옛 사람들의 삶에는 야생동물을 위한 자리가 있었고, 그와 같은 배려를 동물들도 따스함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콩밭에서 콩잎을 먹더라도 솎아주는 정도로 조금씩 먹었겠지. 지금처럼 콩밭을 아작 내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리고 우리에게는 애초에 동물을 생명이며 이웃으로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없다. 동물을 사랑하자는 외침은 애완동물이라는 한정된 울타리 안에 갇혀 있거나 추상적인 구호 속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와 같은 마음자리가 토끼에게 악한 감정을 품게 하지는 않았을까? 울타리 밖에 있는 콩을 두고 굳이 안에 있는 콩을 먹고 있는 토끼는 어쩌면 ‘네 울타리 안에 나도 들어가고 싶다’며 거세게 울부짖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 밭에서 콩잎을 뜯어 먹는 토끼와 만나게 된다면, 토끼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토끼야, 미안해. 울타리 밖에 콩을 심으면서도 진정으로 너를 위하지는 않았어.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얕은 속임수일 뿐이었지. 이제라도 너를 생명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진정으로 위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다시 온다면 좋겠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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