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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맞이 대청소[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43]

   
 ⓒ정청라

예년 같으면 2월이나 3월이 되어야 트랙터나 경운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올해는 1월부터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산에 오르다보면 볕이 잘 드는 길가엔 벌써부터 쑥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벌써 봄이 온 건가? 이런 식으로 겨울이 짧아져버리려나?

마을 분들은 겨울이 춥지 않으니 올해 농사가 더 힘들어지겠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겨울이 겨울답게 춥지 않으면 그해에는 병해충이 극성을 부린다고 한다.) 메주가 쩍쩍 갈라지면 날이 가문데 올해는 이 집 저 집 메주가 쩍쩍 갈라진다면서 가뭄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메주도 많이 갈라진 것 같은데, 올해 농사는 어찌 되려나.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뒤로 하고, 우선은 새해와 새봄부터 새롭게 맞이하고 싶다.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한다면 그 어떤 시련인들 무서울쏘냐. 시련만 한 배움의 기회는 없다.’ 이런 담대한 자세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것이다. 그러자면 일단은 집 안팎 대청소가 큰 숙제다. 정리되지 않은 너저분한 것들을 쌓아둔 채로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도서관에 갔다가 <봄맞이 대청소>란 그림책도 빌렸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봄맞이 대청소>, 코이데 탄 지음 , 코이데 야스코 그림, 한림출판사, 2004, 본문 그림
“빨간 지붕 집에 살고 있는 쥐 세 마리가 봄을 맞아 대청소를 한다. 먼저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밖에 내다 놓고 구석구석 쓸고 닦는데, 지나가던 이웃들이 밖에 나와 있는 물건들을 부러워하면 주저함 없이 가져가라고 줘버린다. 다람쥐 엄마에겐 커튼을, 토끼들에겐 시계를, 여우 아주머니에겐 흔들의자를, 너구리 가족에겐 탁자와 의자를. 자기들은 또 있다면서, 없으면 다시 만들면 된다면서 인심 좋게 나누어 준다. 그렇게 하여 청소를 마치고 쉬고 있는데 오소리가 나타나 집을 탐내는 듯하더니, 이 집에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장미 묘목 몇 그루를 심어 주고 간다. 장미꽃이 활짝 피어나면 이 집에 놀러 와서 꽃을 보며 차를 마시겠다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빨간 장미꽃이 만발한 어느 날, 빨간 지붕 집엔 오소리를 비롯한 여러 이웃들이 모인다. 그들은 차와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정말이지 아기자기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쓸고 닦고 버리고 나누는 가운데 내 집이 우리 모두의 집이 되는 이야기! 다울이와 나는 이 책을 몇 번씩 읽고 또 읽으며 청소 의지를 불태웠다. 깨끗이 쓸어 내고 닦아 내고 비워 내어 우리 집을 모두가 쉬어 가고 싶은 아름다운 장소로 만들 수 있다면!

“엄마, 우리 집이 생쥐 집처럼 되면 좋겠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집을 잘 가꾸면 우리 집도 이렇게 될 수 있어.”
“우와, 신난다. 우리도 대청소하자!”

그렇게 해서 대청소를 시작하게 됐는데 막상 하려고 보니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뭐가 이렇게 많고 많은지 말이다. 누군가 주니까 거절 못 하고 받아놓은 것에다가 언젠가 쓸 데가 있을 거라 여겨서 따로 쟁여놓은 것, 지나간 추억이 깃들어 있어 소중하게 간직해둔 것까지, 잡다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다 보니 물건은 물건대로 자기답게 살지 못하고, 나는 나대로 뒤죽박죽으로 뒤엉킨 채 무거운 몸과 맘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알고 보니 내 집 안팎의 상태가 내 존재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 복잡한 머릿속과 내 먼지 쌓인 마음속을 청소한다는 기분으로, 느릿느릿 청소를 해 나가고 있다. 다랑이 돌보랴, 밥 하랴, 빨래하랴, 청소 말고도 다른 할 것들이 많아서 청소는 남는 시간에 틈틈이 해야 하지만,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던 곳을 조금씩이나마 정리하고 나면 딱 그만큼씩 내 마음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옛날부터 청소가 큰 공부요 수행이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맑고 깨끗한 자리에 맑고 깨끗한 기운이 깃드는 법! 그러니 군더더기나 먼지 없는 맑은 사람이 되려면 먼저 살고 있는 곳부터 그렇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와 함께 하는 이웃들에게 내 존재를 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청소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쟁이기보다 미련 없이 버리고, 좋은 것은 주저함 없이 나눌 수 있다면,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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