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을 앞두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요한 바오로 2세를 시복했다. 물론 시복과정이란 것이 이런 교회정치적 포석과 상관없는 것일지라도, 유례없는 단기간에, 그것도 선종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요한 바오로 2세를 시복해야 했던 베네딕토 교황의 심경이 어떤 것이었는지 가늠할 길이 없다. 다만 추측컨
-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오월이면 늘 습관처럼 빛고을 광주를 떠올리게 된다. 시인 김준태는 그날을 떠올리며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고 노래했다. “내게 충만되어 오신 하느님을/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그런 뒤로 가슴이 터질 듯 부풀었고/세상 사람들 누구나가 좋아졌다/내 몸뚱이가 능금처럼 붉어지고/사람들이
우리가 주로 한 일은 그릇을 씻는 일이었다. 한 마을에 사는 진희 누나의 친구가 경기도 여주에서 도자기 전시장을 운영하는데 일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아 뒷집 영미씨와 우리 식구가 진희 누나를 따라서 여주까지 온 것이다. 예전에 우리 마을에 놀러 왔을 때 한번 얼굴을 익히고 술을 마신 적이 있었던 이들 부부는 전통 도자기를 직접 구워내는 일을 하였는데, 최
간밤의 바람은 말을 하였고 고궁의 탑도 말을 하였고 할미의 패인 눈도 말을 했으나 말 같지 않은 말에 지친 내 귀가 말들을 모두 잊어 듣지 못했네 여인의 손길은 말을 하였고 거리의 거지도 말을 하였고 죄수의 푸른 옷도 말을 했으나 말 같지 않은 말에 지친 내 귀가 말들을 모두 잊어 듣지 못했네 잘리운 가로수는 말을 하였고 무너진 돌담도 말을 하였고 빼앗긴
그래요, 당신 기다리지만, 내 가고나면 이내 찾아오시는 분. 길 없어 길 잃어 밤새 헤매는 동안 한밤을 깨어 날 기다리시고 언덕에 풀이 납작하게 내려앉을 때까지 그렇게 앉아서 절 헤아리실 분. 멀쩡한 생각의 갈피에 끼어들어 성가시게 뛰놀다 가시고 난삽한 삶의 그늘에 끼어들어 고요한 바다를 건네주시는 분. 이리 가려하면 저 길을 보여주고 저리 가려하면 이 길
내 눈이 밝아지는 날 내 눈에 시퍼런 물이 들어 하늘도 바다도 내 안에 들어와 앉는 겨울날 얼음 빛 푸른 그날. 내 속에 끓고 있던 마음도 은근히 식어 먹기 좋고 마시기 쉬운 그날. 발바닥이 몸의 무게를 잃어버리고 손바닥이 상처를 벗어버리고 눈빛이 끝 간 데 없이 맑고도 순하게 빛나는 그날. 나는 없고, 슬픔이 가득한 그곳에만 내가 있고, 기쁨이 묻어나는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죠. 그 착한 눈매가 서글퍼 그를 미워할 수도 없는 그에게 달겨들 수도 없는 그래서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만 겉사람뿐 아니라 내 속사람까지 모두 읽고 계시는 그 눈빛만으로 나를 온전히 정복하신 당신. 당신은 내 두려움을 아시고 내 약함을 드러내시면서도 보잘것 없는 내 안에서 환히 빛나는 당신의 모습을 또한 찾아주시는
그분은 폭풍우 속에 찬란한 햇살 무더기 속에만 계신 게 아니었다. 문풍지 흔드는 잔잔한 떨림 속에 싱크대 위에 내려앉은 엷은 햇살 속에 낙숫물 떨어지는 처마 끝에 흙을 매만지는 조심스러운 신발 밑창에도 있었다. 그분은 사그락사그락 오셨고 그분은 허렁허렁 오셨고 아무 소리 들은 적 없는 한밤 내 내리고 쌓여 세상을 덮은 그런 흰 눈발처럼 오셨다. 일상이 쌓여
2010년, 그래요, 2010는 한 해는 가슴 아픈 일이 많았습니다. 이럴 때 통감(痛感)이란 표현을 써야 하더군요. 사전에는 "마음에 사무치게 느낌"이라 적혀 있네요. 정말 용두사미 격으로 용산참사 문제가 타결이 되고, 4대강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319일째 천주교연대 신부님들이 두물머리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했지만 도무지 해결 기미
한시에는 신새벽 건너오는 바람이더니 세시에는 적막을 뒤흔드는 대숲이더니 다섯시에는 만년설봉 타오르는 햇님이더니 일곱시에는 강물 위에 어리는 들판이더니 아홉시에는 길따라 손잡은 마을이더니 열한시에는 첫눈 내린 날의 석탄불이더니 열세시에는 더운 눈물 따라 붓는 술잔이더니 열다섯시에는 기다림 끌고 가는 썰물이더니 열일곱시에는 깃발 끝에 걸리는 노을이더니 열아홉시
“아침에 제이와 함께 일라이어스 수사를 찾아갔다. 즐거운 나들이였다. 오전 7시 15분에 숲길을 걸어 오두막으로 갔다. 자연이 막 깨어나는 참이었다. 구름은 무겁게 깔리고 오솔길은 큰비에 쓸려 가지에서 떨어진 낙엽에 덮였다.” 헨리나웬이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쓴 일기를 묶어 낸 가운데 한토막입니다. 나웬이 찾
1987년 봄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개봉된 영화가 한 편 있었지요. 입니다. 어느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힘주어 누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난 삼아 그걸 ‘영적 체험’이었다고 말하곤 하는데, 정말 그 때는 “아, 나더러 이 길로 가라는 것이군!” 하였답니다. 영화
"큰 교회 안에서는 의식변화가 느리므로, 교회의 의식은 일반 신자들에게서나 직무담당자들에게서나 그리스도교적 사랑에 의하여 요청되는 사회비판적, 사회개혁적 과제에 대해여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철저하고 민감하다기엔 아직도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의식화 없이는 적어도 매우 널리 일반화되어 있는, 교회는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보수세력일 뿐이라는 혐의에 대해 아무런
교황청 평신도평의회가 주최한 아시아평신도대회가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동안에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성당에 찾아와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노 사제가 있다. 문정현 신부. 전주교구 소속의 문정현 신부는 지팡이에 의지해 지친 발걸음을 어두운 성당 안에서 여전히 빛나는 감실 앞으로 끌어간다. 마치 아직도 이 성당 안에 그분께서 머무시는 지 확인이라도 하려
최근 대구대교구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6월 22일에는 벌써 다섯번째로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대구생명평화미사'가 대구대교구 대현성당에서 봉헌되었고, 이 자리에 대구대교구 김영호(사목국장) 정홍규 신부 등 9명의 사제가 참여했다. 이들은 "강은 어머니의 품과 같다"며 "철없는 자식이 어머니 품을 파헤쳐 어머니를 욕되게 하
서울대교구에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시복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6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0회 가톨릭포럼에서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는 "안 의사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모범"이라며, 안중근 의사가 "순교자"는 아니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신앙 고백함으로써 의연한 신앙의 자세를 견지한 증거자"라고 밝혔다. 염 주교는 안중근
오늘로 965일째 남의 사유지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김동애 선생과 김영곤 씨가 그들이다. 이들은 국회 앞에 있는 국민은행 앞에서 텐트를 치고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들이 3년 가까이 은행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하는 동안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를 전후해서 구청과 경찰이 한 차례 씩 텐트
를 언론사에 등록하고 서울시에서 필증을 받은 날은 2009년 3월 24일이었다. 그날 호적신고를 하였으니, 이번 26일은 첫돌을 맞는 생일잔치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모든 아기들은 출산에 앞서 아홉달 동안 어머니의 태내에서 성장해야 한다. 거기서 어미의 양분을 나눠먹고, 간간이 발길질도 해가며 호흡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첫돌에 연필이며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안중근 의사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진석 추기경 주례로 오는 3월 26일 오후 6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하고, 한·중·일 천주교 신자들은 묵주기도 100만 단 봉헌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가 주관해서 공식적으로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가 명동성당에서 봉헌되는 것은 이번이 처
누가 그들의 벗인가?오랜 기다림과 안타까움 속에서 해를 넘긴 2010년 1월 9일 용산참사로 죽어간 영혼들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망루에 올랐던 다섯 분의 시신이 냉동고에서 해방되어 부드러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유족들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삶에 대한 희망의 한끝을 잡을 수 있었다. 1월 20일 새벽 참사 이후 284일 동안 용산참사 현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