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명동성당에서 안중근 순국 100주년 기념미사를 기다리며

▲ 안중근 엽서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안중근 의사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진석 추기경 주례로 오는 3월 26일 오후 6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하고, 한·중·일 천주교 신자들은 묵주기도 100만 단 봉헌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가 주관해서 공식적으로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가 명동성당에서 봉헌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미사 강론을 통해 정진석 추기경은 안중근 의사가 철저한 가톨릭 신앙인이었으며 동양의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를 꿈꿔온 숭고한 정신을 기릴 예정"이라고 한다.

묵주기도 100만 단 봉헌을 벌이고 있는 곳은 해외선교를 후원하는 평신도 모임인 ‘직암선교후원회’, 안중근 의사가 투옥됐던 뤼순 감옥 인근의 중국 다렌(大蓮) 한인성당, 일본 오타시 성당 신자들이며,  직암선교회의 발표에 따르면, 이 운동에 참가한 이들의 묵주기도는 2월 25일 현재 100만 단을 훌쩍 넘어 1,538,643단이 모였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일제의 식민지 강점기에 한국천주교회가 행한 친일행적에 대한 사죄에 인색하고, 안중근 의사의 공로 역시 백안시하던 태도를 바꾸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경성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 사건 직후 처음에는 안중근이 천주교인이라는 사실마저 부인하였고, 나중에는 안중근이 살인자라는 이유로 종부성사마저 거부했다. 그런데 정진석 추기경은 그를 "철저한 가톨릭신앙인"이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최초 공식반응, 노기남 대주교에게서

한국교회는 일제시기에 일관되게 친일적 행동을 해왔으며, 철저히 민족운동을 단죄해 왔다. 1994년에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개최한 ‘일제하 한국천주교회의 민족운동’이란 학술 심포지엄에서 최석우 신부는 발표를 통해 “평신도들의 항일운동에 대해 교회 당국은 ‘안악사건’의 안명근을 일제 당국에 고발하고, ‘105인사건’의 이기당을 파문시켜 교회에서 제적시키는 등의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상해 임시정부의 수립과 함께 천주교회 내에서 독립운동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특히 윤예원 신부는 임시 정부와 연락을 취하며 신자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도록 권고하고 지도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윤예원 신부는 교회 당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려면 사제직을 버리라는 강요를 받음으로써 결국 독립운동을 중단하고 말았다."고 전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중근 문제가 공식으로 튀어나온 것은 역설적이게도 노기남 대주교를 통해서였다. 1979년 9월 2일 명동성당에서 ‘안 의사 탄신 1백주년 기념 준비위원회’(위원장 이은상)의 기념축전의 일환으로 진행된 미사에서 노기남 대주교는 “안 의사의 의거는 사사로운 원한이 아니라 조국과 동양 전체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안중근 의사 탄생 100돌(1979년)을 기념해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벌였으며, 이순신 장군과 함께 안중근 의사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일제하 한국교회의 친일문제를 다룬 <깨물지 못한 혀>의 저자 김유철 씨(경남 민언련 이사)는 "결국 박 대통령은 그해 10월 26일 김재규의 권총에 맞아 숨졌다"면서 "그 날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오를 저격하던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는 두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노기남 대주교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5년에 발족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정을 받았고, 지난 해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두기 어렵다.

▲ 2009년 10월 26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100주년 기념미사

김수환 추기경, 사과 하라면 사과하고, 속죄하라면 속죄해야..

안중근 의사에 대한 교회 내 재평가와 관련해서 의미있는 사건은 1993년 8월 21일 김수환 추기경이 혜화동 교리신학원 성당에서 집전한 안중근 추모미사였다. 김 추기경은 당시 강론에서 “일제 치하의 당시 한국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림으로써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한데 대해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연대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일제 당시의 제도교회가 올바르게 하느님 백성을 인도했다고 보기 힘든, 한국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친일적인 행위가 있었음을 한국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 아파합니다. 이 모든 과오에 대해서 교회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과를 하라면 사과를 할 것이며 속죄를 해야 된다면 속죄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16년 만인 2009년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인 명동성당에서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한 것은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었다. 이날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이 미사에 참석하지 않고 관변단체로 알려진 안중근의사 숭모회와 조선일보가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 안중근 유묵전시회에 참석해서 김수환 추기경이 이미 말한 것을 되뇌었다.  

이에 대해 김유철 씨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게재한 11월 2일자 '교회와 언론' 칼럼에서 "진정 한국천주교회와 당시 안중근을 단죄했던 경성교구장의 후계자인 서울대교구장이 그의 의거에 대하여 할 말이 있다면 주교좌에서, 특별사목서한과 같은 가시적 문서로서 안중근의 의거를 만천하에 의로운 전쟁으로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치 여기에 응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번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에는 명동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직접 추모미사를 봉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뒤늦은 발심(發心)이지만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숙제는 남아 있다. 지난 100년동안 안중근 의사와 관련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공식적인 한국천주교회가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제외하고는 지난 해 '의거' 100주년에는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추모미사를 하겠다고 나선 배경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가톨릭, '안중근 껴안기’ …“친일 반성이 먼저"

지난 3월 9일 <한겨레신문>에서 조현 기자가 "가톨릭, '안중근 껴안기’ …“친일 반성이 먼저"라고 지적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진석 추기경과 한국천주교회가 안중근 의사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일제에 협조하며 가톨릭의 성장만을 꾀하던 가톨릭 지도부의 맥을 잇는 한국 가톨릭이 ‘가톨릭에도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인물이 있다’며 안중근을 이용하는 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동안 한국천주교회는 일제하 친일문제로 곤욕을 치러왔다. 그러나 친일문제를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해 오던 교회 입장에서 안중근을 들어 면피하려고 한다면 잘못이다. 먼저 철저한 반성과 참회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지난 2008년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의 교원 기숙사(사제관)를 축성하면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축복식이 진행되었는데, 그 건물 이름을 '노기남관'으로 지은 것은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노기남관은 첫 한국인 주교로 일제강점기에 한국교회를 지켰고, 경향신문 창간 등 교회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고 노기남 대주교의 뜻을 기리기 위해 명명됐다.”라고 덧붙였는데, 당시는 <친일인명사전> 등재 문제로 논란이 가중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울대교구의 꿋꿋한 소신에 당혹스럽다. 그러니 정진석 추기경이 지난 해 관변단체인 안중근의사 숭모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찬물을 끼얹곤 하던 <조선일보>에서 주최한 유묵전에 참석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는 의심을 받을만 하다. 이처럼 친일의 맥락과 안중근 추모미사라는 것이 어떻게 동시에 가능한지 해명을 듣고 싶다.   

한편 서울대교구가 의거 100주년을 소홀히 처신했으면서 순국 100주년에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지 답답하다. 어쩌면 지금 한국교회의 입장이 안중근 의거 당시 빌렘 신부의 입장과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시 빌렘 신부는 경성교구장인 뮈텔 주교의 입장을 무시하고 안중근에게 종부성사를 주러 여순을 방문했다. 이는 안중근과 맺은 각별한 인연 때문이었는데, 빌렘 신부 역시 일본 식민당국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한국인들에게 무력투쟁을 포기하도록 설득해 왔던 사람이다. 다만 빌렘 신부는 안중근이 '살인죄'를 지었지만, 사형집행을 앞둔 그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으로 빌렘 신부와 뮈텔주교는 다를 바 없다. 일제강점기에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교회보호'와 '영혼구제'에만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천주교회의 관심은 유독 '교회'에 집중되어 있다. 교회는 이번 미사를 알리면서 먼저 안중근이 "철저한 가톨릭 신앙인"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안중근이 "동양의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를 꿈꿔온" 숭고한 영혼이었다고 덧붙인다. 한국천주교회는 이런 영웅을 낳은 신앙공동체였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천주교회는 그동안 안중근을 배신해 왔다. 뮈텔 주교는 하얼빈 저격사건 이후 안중근이 천주교인임을 부인하며 "난 그를 모른다"고 발뺌 했으며, 한국교회는 안중근이 꿈꾸던 것을 더불어 꿈꾸지 않았고, 안중근이 제거하려고 했던 정치권력과 야합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부끄러운 역사를 고백하고 참회하지 않고서는 결코 '안중근'이라는 강을 건널 수도 없고, 그를 소유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번에 명동성당에서 치러지는 미사는 안중근을 '교회의 아들'로 칭송하는 자리가 아니라, 눈물로 교회의 잘못을 뉘우치는 참회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안중근 영정 위에서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드는 미사가 아니라, 영정 앞에 무릂 꿇고 사죄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 2009년 10월 22일, 고려대학교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하얼빈의거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안중근이 포기한 교회가 다시 안중근을 부르고 있다

지난 해 10월 22일, 고려대학교 100주년기념관에서는 안중근의사 하얼빈의거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김권정 교수(경희대)는 안중근이 일본의 식민정책의 합법성을 부인하기 위해 교리를 인용하거나 종교에 호소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개인적으로 이토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의병장의 이름으로, 개인적 원한으로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한 정당방위의 행동으로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제도권 교회로서 천주교회에 대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종교에 호소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안중근은 이미 "일제와 정치적 타협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제도권 교회에 대해 더 이상의 미련을 포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안중근은 제도권 천주교회에 대해 여러차례 실망을 거듭했지만, 끝까지 개인적 신앙은 포기하지 않았다며 "안중근은 제도권 교회 신앙과 개인 신앙을 구별하여 접근했다"고 평가했다. 곧 안중근은 "제도권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고통당하는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는 책무를 다하면서도 천주신앙에 대해서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이 포기한 교회가 다시 안중근을 부르고 있다. 안중근이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면, 안중근은 제도권 교회의 부름을 달가와하지 않을 것이다. 참회하지 않는 교회가 봉헌하는 미사라면, 흠향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이제 안중근에 대해 "주교좌에서 말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번들거리는 칭송이 아니라, 묵주기도 100만 단이 아니라, 통절한 '참회록'이다. 

안중근이 갈망했던 것을 더불어 갈망할 마음이 있느냐?

이날 천주교 대전교구에서도 오전 10시 30분에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의 주례로 미사를 봉헌한다고 전한다. 대전교구 관계자는 "안 의사는 사형 집행 전 가족들에게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과 아들(준생, 베네딕토)을 성직자로 키워주길 유언했다. 또한 2,000만 형제자매들이 교육과 실업에 힘써 국권을 회복하고 성직자들은 민족 복음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교우들에게 신앙을 독려할 것을 당부했다”며, 죽는 순간에도 예수님의 성화를 간직한 채 ‘대한 독립 만세’ ‘동양 평화 만세’를 불렀다고 안중근 의사를 설명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조환길 주교)에서도 국립대구박물관(관장: 이내옥)과 공동으로 '순국 100년 安重根' 특별전을 개최하고, 3월 26일 오전 10시에 국립대구박물관 대강당에서 추모미사를 집전한다고 전한다.

대전교구나 대구대교구나 지난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 동참했던 사제들이 거의 없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들 교구에서 교구장 주교가 직접 나서서 미사를 집전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대전교구의 경우엔 지난 해 그동안 교구에 없었던 정의평화위원회를 신설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된다. 중요한 것은 교구마다 안중근을 기리면서 정작 안중근이 갈망했던 것을 더불어 갈망할 마음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 마음을 간절히 기대하면서 추이를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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