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행동은 절대로 대립적이거나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행동 없는 기도는 힘이 없는 신심주의로 흐르고,기도 없는 행동은 수상쩍은 조작으로 전락해 버린다.기도가 우리를 연민이 가득한 그리스도와 더 깊은 일치로 이끈다면,기도는 또한 항상 우리에게 구체적인 섬김의 행동을 하도록 부추길 것이다.그리고 구체적인 섬김의 행동이 참으로 우리를가난한 이들
엄마가 없다 -박춘식 며칠 전, 집 나간 엄마 때문에 아프다 시골 중학교 선생님의 쨍쨍한 수업 소리 그 말씀이 들렸다 안 들렸다 한다 — 학생 일어섯 — 왜 집중 안 하는 거야 부르르 떨면서 무겁게 일어서는 여학생은 선생님을 노려보더니 외친다 또박또박 — 나 는 엄 마 가 엄 따 꽉 막힌 목울대, 교실 밖을 나선다 집으로 가
가톨릭일꾼운동의 기적들은, 있는 자와 없는 자가 한 식탁에 앉으며, 사회의 버림받은 자들이 서로에게 봉사하며, 낯선 사람들도 두려움이나 조롱받지 않고 환영받으며, ‘이웃 사랑’이 전쟁대신 일어나고,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그 변화 위에 놓고 자신의 영혼의 약함보다 다른 이들의 약함을 더 의식하게 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고 확신하는 개혁자는 나가서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은 변화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유혹을 받는다. 개혁이 필요한 똑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신을 보는 대신 개혁자는 그
20세기의 트라피스트 수도승인 토머스 머튼은 오늘날 남녀의 필요에 응답하는 영성과 신비주의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 그의 대표적인 책들과 논술들 안에서 머튼은 사막의 교부들,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 현대심리학, 가톨릭, 비잔틴, 개신교 신학, 동방종교, 젠, 예술, 시, 문학, 실존주의, 그리고 사회 문제들을 언급하였다. 그의 저서들은 수도적인 전통
오늘은 페루의 쿠즈코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죤, 캐시, 나는 주위의 찬란한 잉카유적과 교회들, 박물관 등을 찾아보았다. 그 어떤 때보다도 나는 잉카제국 건물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감명을 받았다. 거대한 신전들, 감시탑, 그리고 세례대들은 “거짓말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그리고 게으르지 말라”라는 규칙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들의 작품이
서구의 종교적 감각이 너무나 개인화되어 “뉘우치는 마음”이란 개념이 오로지 개인적인 죄의 체험과 그것을 보속하고자 하는 의지만을 뜻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은 너무 비극적인 일이다. 생각, 말, 행동의 불순함에 대한 자각은 실제로 우리를 후회스럽게 할 수 있고 용서하는 태도에 대한 희망을 우리 안에 자라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시대의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관한 단락들이 많지는 않지만 더러 있다. 그 중 일부는 마리아에 관한 역사적 정보를 제공하나, 나머지 대부분은 마리아를 받들어 섬긴 신심을 써놓은 것이다. 루카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집필한 사람, 그리고 요한복음서를 쓴 사람이 돈독한 마리아 신심을 지닌 분들이고, 이런 분들의 영향으로 정교회와 천주교회와 성공회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너희는 가지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이사야서는 하느님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다.”(5,2)고 말하고, 예레미아서는 하느님이 “특종 포도나무를 진종으로 골라 심었다.”(2,21)고 말합니다. 시편은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지켜 주소서.”(80
희열에 넘치는 삶은 안전하고 안정된 친숙한 장소를 기꺼이 떠나 자신의 안전이 위험에 처해도 다른 이들에게 끊임없이 뻗어 나가는 삶을 의미한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것은 “우리나라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훨씬 넘어서는 외교 정책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고려하고 기꺼이 국가적 희생을 감수하
새로운 질서를 그리다 그리스도인이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에 끊임없이 비판적인 질문들을 묻고 계속하여 개인의 차원뿐만 아니라 세계차원의 회심이 필요함을 강조할 때에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리스도인이란 안락한 휴식 속에 안주하지 않도록 자신과 다른 사람을 깨어있게 할 때에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기존의 상황에 항상 만족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을 만나면 -박춘식 느닷없이 어느 날 하느님을 만나게 되면 나자렛 아씨를 생각해야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복음서 1:38) 끝없는 하늘을 땅으로 끌어 내린 이 말씀 마리아, 예쁜 아씨 고이 모은 두 손안에 빛나는 성시(聖詩) 빛나는 겸손 겸손이 하심에게, 박춘식, 들숨날숨, 167쪽
어제 나는 죤 유데스와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에 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그는 나의 생각들을 확인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연민이 관상적 삶의 중심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나의 생각을 더 넓혀주었다.우리가 다른 이가 되고그래서 하느님의 현존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우리는 참으로 관상가들이다.진정한 관상가들은 그러므로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물러나는 사람들
에서는 의 허락을 얻어, 1994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매리 출판사에서 발간된 웨인 심직의 편역본을 연재합니다. 이 글은 여러분에게 영적 여정을 위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입니다. -편집자음식이 인간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처럼 동반자도 그
독일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시사주간지 (1998년 7월 20일)에 희한한 사건이 특집으로 실려 있다. 회교도 부인이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리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사 발령을 받지 못한 사건이다. 구체적으로 독일 가톨릭 중앙위원회 부회장 겸 바덴 비르템베르크 주 교육부 장관인 안네테 샤반(기독교 민주당)여사가 아프가니스탄 출신 회교도로서
감사는 사명에 있어 기본적인 것이다. 감사는 본래 다른 이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당신이 당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고마움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명의 중심적인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자신이 받은 선물을 경험할 때에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는 우리자신이 주는 쪽에 있을 수 있도록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 해
사명은 단지 가서 다른 이들에게 부활한 주님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파견된 사람들로부터 그 증언을 또한 받는 것이다. 자주 사명은 오로지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되지만, 참다운 사명은 또한 받는 것이다. 참으로 예수의 성령이 원하는 곳으로 불고 있다면, 그 성령을 줄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기적으로 생각해서, 사명은 주는 것만큼 받고 보살피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목자에 비유하고 양들이 드나드는 문에도 비유하였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목자이십니다. 도둑이나 강도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갑니다.’ 그러나 목자는 문으로 들어가고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며,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목자
새로운 보편공의회가 필요해! 1959년 1월 25일 로마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는 교황 요한 23세와 추기경들, 가톨릭 주교들, 갈라진 그리스도교 형제들, 성 바오로 수도원의 베네딕도회원들과 신자들이 임석한 가운데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회가 열렸다. 이 기도모임은 1908년에 성공회에 속한 프란치스코 형제회와 자매회가 주축이 되어 뉴욕에서 시작되었는데,
사명에 관해 생각 할 때 도움이 되는 두 가지 말들은 “연민”과 “감사”이다. 사명은 우리가 함께 존재하는 신비에 참여할 때에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와 함께 하는 하느님, 임마누엘, 육화전체는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보살핌이란 “함께 울부짖는 것”을 의미한다. 연민은 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