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신부의 복음과 세상 이야기]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관한 단락들이 많지는 않지만 더러 있다. 그 중 일부는 마리아에 관한 역사적 정보를 제공하나, 나머지 대부분은 마리아를 받들어 섬긴 신심을 써놓은 것이다. 루카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집필한 사람, 그리고 요한복음서를 쓴 사람이 돈독한 마리아 신심을 지닌 분들이고, 이런 분들의 영향으로 정교회와 천주교회와 성공회에서 마리아 신심과 신행이 날로 발전하였다.

이 글에서는 우선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마리아에 관한 신빙성 있는 역사적 사료들을 살펴본 다음, 역시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마리아 심신을 추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약성서 시대 이후의 마리아 교리를 개관한 다음 나름대로 해석학적 반성을 시도코자 한다.

1,성서학적 고찰

1) 역사의 마리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실상을 드러내는 신빙성있는 사료들로는 마르 6,1-6; 3,20-21.31-35; 루카 11,27-28을 꼽겠다. 이 단락들을 차례차례 점검하겠다.

가. “마리아의 아들 아닌가”(마르 6,1-6)

▲ Maria Nicopeia, Venice, Italy
예수께서는 27년경에 출가하여 한동안 객지에서 활동하시다가 언젠가 한 번 고향 나자렛에 들른 적이 있으시다. 마침 안식일이 되어 고향 회당 예배 모임에서 설교를 하셨다. 예수의 설교 형식과 내용이 너무나 파격적인 데 놀란 나머지 동향인들은 연속해서 다섯 가지 질문을 퍼부었다.

“이 사람한테 이런 일이 어디서 내렸을까? 이 사람한테 내린 지혜는 어떤 것일까? 그의 손으로 기적들조차 이루어지다니? 이 사람은 장인이요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의 동기 아니가? 또한 그의 누이들도 여기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가?”(2-3절)

평소 예수가 자기네와 함께 살던 때는 손재주로 밥벌이하던 장인에 불과 했는데, 객지 물을 먹고 귀향해서는 너무나도 확신에 차서 파격적인 설교를 하니까 보인 반응이다. 이스라엘의 관행에 따르면 “요셉의 아들 아닌가” 하고 물어 마땅한데, “마리아의 아들 아닌가” 하고 물었을 법하다(Mary in the NT, 64-65).

그리고 예수께는 남자 형제 넷에다 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 형제자매들이라고 하면 친동기를 뜻하기도 하고 그냥 가까운 친족을 뜻하기도 한다. 종교개혁 이후 470여 년에 걸쳐 개신교계에서는 이들을 친동기로 알아듣고, 천주교계에서는 이들을 친동기 아닌 친족으로 알아들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셨다고 믿어온 까닭에,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을 친동기권 밖으로 몰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일 마리아의 평생 동정 신조가 없었다면 자연스레 친동기로 이해했을 것이다(R. Pesch, Mk I, 322-325). 어쨌거나, 타향에서는 존경을 받던 예수님이셨지만 고향에서는 친척들과 집안에서 조차 배척을 당했다고 한다(3-6절). 예수님의 아우들조차도 그분을 불신했다는 말씀(요한 7,5)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나.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 (마르 3,20-21.31-35)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다음부터 고향, 친족, 직업을 팽개치고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이스라엘의 회개를 부르짖으셨다. 그러자 친족들은 예수님을 정신병자 취급을 하고 강제로라도 붙잡아 고향으로 데려오려고 출동했다(21절). 친족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분들도 있었다(31절).

그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전해 듣고 예수께서는 반기기는 고사하고 정나미가 뚝 떨어질 만큼 매정하게 답변하셨다. “누가 내 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33절)

감리교 신학대 윤성범 교수가 작고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글 제목이 “모름지기 예수는 효자였느니라”였던가. 천말의 말씀이다. 순 인간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예수님은 불효막심했다고 할 것이다. 육친을 물리치신 다음에 하신 말씀을 눈여겨 보자.

“그러고서는 당신 주위에 둥글게 앉아 있는 이들을 둘러보시면서 말씀하셨다. ‘보시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그런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34-35절).

핏줄로 맺어진 혈연관계를 물리치는 말씀이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영적관계를 선양하는 명언이다. 혈연 가족을 버리고 영적 가족을 만드시겠다는 선언이다. 영적 가족에는 하느님 아버지 말고 또 다른 어버지란 있을 수 없음을 명심하라(마르 10,30; 마태 23,9).

다. “오히려 복되도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루카 11,27-28)

언제 어디서였는지 알 길이 없으나 어느 부인이 예수님의 설교에 감복한 나머지 소리 높이 예수님의 어머니의 행복을 선언했다. “복되도다, 당신을 배신 태와 당신이 빠신 젖은!” 유대인들은 신체의 일부로써 인격을 가리키는 표현을 즐겨 썼다. 그처럼 멋진 설교를 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는 복되다는 부인의 행복선언을 예수께서는 기꺼이 받아들이셨나? 천만의 말씀이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생모가 복되지 않고 “오히려 복되도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 이라고 하신다. 이 답변의 본래 뜻을 정직하게 풀이한다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 축에 끼이지 못했다고 봐야 하겠다. 거칠기 짝이 없는 이 말씀을 채록한 루카야 물론 정반대로 알아들었지만 말이다. 루가의 이해에 관해선 다음 단락에서 논하겠다

역사의 마리아를 정직하게 살펴본다면, 어머니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들은 어머니를 멀리했다고 하겠다. 아무래도 두 분의 관계는 소원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2) 신앙의 성모님

마리아의 역사적 실상이 어쨌든 간에 그리스도인들 절대 대다수는 신약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로 받들어 섬긴다. 마태오복음서 필자, 루카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쓴 사람, 그리고 예수께서 각별히 아끼신 애제자의 전승을 이어 받아 요한복음서를 쓴 사람은 분명히 마리아를 높이 받들었다. 개신교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그리스도교계(정교회·천주교·성공회)에서 마리아를 어느 성인들보다도 더 높이 섬기는데, 이런 신심은 마태오와 루카와 요한에게서 비롯하기에 우선 그들의 마리아 신심부터 살펴 마땅하다.

가. “동정녀가 몸가져 아들을 낳으리니”(마태 1,18-25; 루가 1,26-38)

마리아가 동정으로서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이야기는 신약성서를 통틀어 오직 루카 1,34-35; 마태 1,18-25에만 있다. 그러니까 문헌상으로 볼 때 동정녀 잉태 신앙은 신약시대 모든 교회의 공동신앙이 아니었고, 루카와 마태오가 소속한 교회들의 신앙인 셈이다.

오늘날, 동정녀 잉태 신앙을 두고 역사적 진술로 보는 설, 그리스도 신앙의 진술로 보는 설이 팽팽히 맞서 있다. 동정녀 잉태 신앙의 논조와 의미는 분명하다. 이는 결코 마리아의 생리적 이변을 다루는 마리아론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예수님은 메시아시고(루카 1,32-33; 마태 2,15) 하느님의 아들이심을(루카 1,32.35; 마태 2,15) 강조하는 그리스도론이다.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느님 다음가는 지존이시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존이시다. 그러니 그분의 공생애, 죽음, 부활은 말할 나위도 없고 아주 소급해서 그분의 잉태도 빼어날 수밖에 없다는 신학논리가 동정녀 잉태 이야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예수님 이전의 이스라엘 위인들의 잉태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이사악의 어머니 사래(창세 11,30; 17,17; 18,11-14)는 석녀인데다 노파였고, 야곱과 에사오의 어머니 리브가(창세 25,21), 삼손의 어머니(판관 13,2-3)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1사무 1,5)도 석녀였으며, 요한 세례자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석녀인데다가 나이도 많았다(루카 1,7.3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느님의 각별한 섭리로 이스라엘의 위인들을 잉태하고 출산했다고 한다.

이제 이스라엘 역사상, 아니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존이신 메시아가 잉태되시는 데는 더더욱 지극한 섭리가 없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루카 1,35; 마태 1,18.20) 동정녀가 잉태하고 출산했다는 이야기는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라 하겠다. 더군다나 동정녀가 메시아를 잉태하고 출산하리라는 구약의 예언이 있었음에랴.

실상 이집트의 문화도시 알렉산드리아로 이민가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 탄생 이전에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을 읽으면서 바로 이 구절에 유의했다(마태 1,23). 그러니 임마누엘 메시아인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실 수밖에.¹ 루카복음 저자는 성모영보 이야기 말미에서 마리아를 돈독한 신앙인으로 묘사한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1,38).

루카는 전사(前史 = 1-2장)에서 동정녀 잉태 이야기(1,26-38) 말고도, 엘리사벳 방문 이야기(1,39-45), 마리아의 노래(1,46-55), 예수 성탄 이야기(2,1-21), 예수 아기 봉헌과 속량 및 성모님의 정결례 이야기(2,22-38), 소년 예수의 성전 순례 이야기(2,41-52)를 엮었다. 그러면서 루카는 성모님의 두 가지 성품을 강조했다. 우선, 마리아는 뜻밖의 일을 겪을 때마다 함부로 속단하지 않고 그 일을 마음속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사려 깊은 분이시다(1,29; 2,19.51). 또한 마리아는 영원하신 분의 말씀이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조차 믿으시는 분이시니(1,38.45; 참조 8,19-21; 11,27-28; 사도 1,14) 성모님이야말로 신앙인들의 귀감이시다. 이제 루카 1,39-55 및 2장의 단락들을 차례차례 살펴보고자 한다.

나.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루가 1,39-45)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석녀이던 친척 엘리사벳이 늘그막에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고(36절), 유대 산골에 사는 그녀를 찾아 갔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인사를 받고 “당신은 여자들 가운데서 복받았으며 당신 태중의 아기 또한 복받았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로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이 인사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자 아기가 내 태내에서 신명이 나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여라, 믿으신 분! 주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지리니”(42-45절) 라고 화답하였다. 루가가 손수 만들어 엘리사벳의 입에 담은 이 화답은 별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마리아가 복되고 행복한 까닭은, 그분이 주 예수님의 어머니시기도 하거니와 주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시켜 하신 말씀(35-36절)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 마리아의 노래(루가 1,46-55)

마리아의 노래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인사를 받고 손수 지은 노래도 아니고, 루가가 온전히 작시한 노래도 아니다. 그리스-유대계 그리스도들이 부르던, 예수 구원을 기리던 노래를 루카가 체록했다고 보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Brown, The Birth, 355; Mary in the NT, 140-141).

루가는 이 노래를 채록하면서 마리아의 노래로 만들려고 앞 문맥(38.45절)에 맞추어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이로다. 보라, 이제부터 나를 복되다 하리니”(48절)를 첨언했다. 이 노래의 나머지 부분은 마리아 개인과 관련되는 내용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예수로 말미암아 이룩하신 구원을 총체적으로 거론한다.

이 노래는 형식상으로 한나의 찬양노래(1사무 2,1-10), 그리고 찬양시편 33,47; 48; 113; 117; 135; 136편과 닮았다. 이 노래의 성격을 보면 구약성경과 예수님과 예루살렘 모(母)교회 순으로 면면이 이어진 빈자들(히브리어로 아나빔)의 영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분이 당신 팔로 힘을 행사하시어 / 그 심사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 권세부리는 자들을 권좌에서 내치시고 / 비천한 이들은 들어 올리셨도다. / 굶주린 이들은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 부요한 자들은 빈손으로 떠나 보내셨도다”(51-53절).

비천한 여인이지만 하느님의 총애를 입어 주님의 어머니가 된 마리아는 이제 아나빔의 가수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여 구원자이신 하느님,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을 기린다고 하겠다(Mary in the NT, 142-143).

라. 예수 탄생 이야기(루카 2,1-20)

예수 아기가 조상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때 방에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아기를 구유에 뉘었다고 한다(7절). 그리고 조상 다윗처럼(1사무 16-17장) 양떼를 돌보던 비천한 목자들이 천사의 아룀으로 메시아 아기를 찾아뵈었다. 비천하게 태어나신 메시아 아기를 비천한 이들이 맨 먼저 알아보았던 것이다. 사려 깊은 “마리아는 그 모든 일을 당신 마음속에 새기어 곰곰이 생각하였다”(19절; 참조 1,29; 2,51)고 루카는 적었다.

마. 할례와 작명, 정결례와 속량, 시므온의 노래와 예언(루가 2,21-40)

마리아의 아기는 태어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아 선민의 일원이 되고 천사가 마리아에게 미리 일러준 대로(1,31) 예수라는 이름을 받았다(21절).

산모의 부정을 벗기는 정결례(레위 12,1-8)에 따라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지 40일만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번제와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22a.24절). 번제와 속죄의 제사 제물로는 본디 일년생 양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를 바치는 법이었으나, 빈자들은 비둘기 두 마리만 바쳐도 되었다. 이를 일컬어 빈자의 제물이라고 했는데 마리아는 이런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또한 맏아들을 물러내는 속량법(출애 13,2. 11-16)에 따라 아기 예수를 속량했다고 한다(22b.23절). 맏아들을 속량할 때면 속전으로 성전에 다섯 세겔을 지불해야만 했다.

시므온은 예수 아기를 두 팔로 안고, 장차 예수께서 이스라엘과 만민을 위해서 이룩하실 평화와 구원과 빛을 마치 미리 본 듯이 노래한다(29-32절). 시므온은 노래를 한 다음에 마리아에게 성모자의 장래를 예언한다.

“두고 보시오, 이 아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또 아기는 배척당하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영혼을 칼이 꿰뚫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속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34-35절).

이스라엘 선민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이들도 더러 있겠지만 그분을 배척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악한) 속생각이 드러날 것이다”(35b절). 이 때문에 성모님은 칼로 꿰뚫리는 듯한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바.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1-52)

마리아와 요셉이 열두 살 된 예수를 데리고 과월절 순례를 갔다가 성전에서 잊어버리고 되찾았다는 이야기는 루가복음서 전사(前史)의 대미이다. 부모가 예수 신동을 찾아내고 나서 주고받은 대담에 역점이 있다.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애야, 우리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 보아라, 네 아버지와 내가 애타게 너를 찾았단다. ’ 그러자 예수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일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48-51절). 마리아와 요셉은 자식 걱정을 늘어놓았는데, 예수 신동은 육친이 아닌 하느님 어버지 일에 신경을 쓰신다. 예수님의 답변은 혈연관계보다 영적 인연을 앞세우시는 말씀으로서, 그 내용이 마르 3,20-21. 31-35, 그리고 루카 11,27-28의 이야기 원형과 신통하리만큼 잘 어울린다.

사.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입니다”(루카 8,19-21)

예수께서 객지에서 전도하실 때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말은 전해 듣고 반기기는 고사하고 혈연관계를 물리치고 신앙 인연을 치켜세우는 말씀을 하셨다(마르 3,20-21. 31-35). 어머니와 형제들이 들었다면 정나미가 뚝 떨어질 매정한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여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 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보시오, 이들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내게는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마르 3,33-35; 1.1). 나 풀이 참조). 루가는 그 말씀의 뜻을 아주 뒤집어서, 성모님과 아우들이야말로 돈독한 신앙인들이라고 하였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루카 8,21). 루카는 앞서 전사에서도 성모님을 돈독한 신앙인으로 묘사하곤 했다(1,38.45; 2,35). 루카에 따르면 성모님과 아우들이야말로 “좋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서 참고 견디는 가운데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8,15).

아. “오히려 복되도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루카 11,27-28)

언젠가 예수께서 너무도 감명 깊이 설교하시니 어느 부인이 “복되도다, 당신을 배신 태와 당신이 빠신 젖은!” 하고 외쳤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오히려 복되도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 하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이 짤막한 대담의 본래 뜻과 루가가 의미한 뜻은 판이하다. 예수께서는 혈육관계보다 신앙 인연을 앞세우신다는 뜻으로 답변하셨다. 잉태하고 길러준 게 대수냐,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지켜야 복되지, 하는 뜻으로 말씀하셨다(1.1).다 풀이 참조). 그러나 루카의 성모관을 고려한다면(1.2).사 풀이 참조), 성모님은 예수를 잉태하고 길렀기 때문에 복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킨 까닭에 더더욱 복되다는 말씀이다.

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사도 1,12-14)

예수께서 올리브산에서 승천하시 다음 사도들은 예루살렘 시내 어느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을 기다렸다. 사도 1,14에선 그 정경을 이렇게 집약했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부인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 사도들과 신도들, 남자들과 여자들이 한 곳에 모여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했다고 하니, 이 아니 이상적인 공동체인가. 루가는 사도 1,14에서 이상적인 교회 모습을 집약해 놓았다. 사도들과 신도들, 남자들과 여자들이 다같이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교회를 창립하는 현장에 성모 마리아께서 계신다. 성모 마리아는 사도 1,14에 마지막으로 등장하고 영영 잠적하신다.

이 구절이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면(Mary in the NT, 175)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겠다. 곧, 마리아는 평소에 아들의 파격적인 처신과 처사를 이해하지 못해서(마르 6,1-6; 3,20-21.31-35; 루가 11,27-28)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아들이 대역죄인으로 처형당한 다음 수시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아들의 부활을 기리는 이들이 30년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여 그리스도 교회를 창립하는 현장에 함께 자리했다고 추리 할 수 있겠다.

그럼 그 후에는 어떻게 되셨나? 솔직히 말해서 전혀 모른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어디 전거가 있어야 무슨 말을 하지. 그러니 추리에 추리를 더한다면, 교회 창립 후 성모 마리아께서는 임종하셨을 법하다. 아들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해서 이승을 떠나 아들 있는 저승으로 가신 것 같다. 그러기에 서간성서에나 사도 교부들의 글에 마리아는 전혀 아타나지 않은 것이리라.

차. “부인,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요한 2,1-11)

볼트만은 1941년, 요한복음 저자는 기적 이야기를 담은 ‘표징출전’을 이용했고, 요한은 거기서 일곱 가지 이야기를 복음서에 옮겨 썼다는 학설을 내세웠는데, 이 설은 이제 학계의 정설이 되었다. 일곱 가지 이적사화(2,1-11; 4,46-54; 6,1-15.16-21; 5,2-9; 9장; 11장) 중 첫째가 가나의 표징 이야기이다(2,1-11).

이 이야기가 요한복음서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그러니까 표징출전에는 4절이 없었던 것 같다. 즉, “예수께서는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부인,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 (4절)가 없었을 것이다. 곧, 4절은 복음서 저자가 덧붙인 가필일 것이다. 4절을 빼고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다. 이야기 전반부(1-3.5-7절)의 원형을 복구하면 대충 이렇다.²

“갈릴래아의 가나에 혼인잔치가 있었는데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셨다.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도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마침 포도주가 없었다. 혼인잔치를 위해서 마련한 포도주를 다 소비했던 것이다. 그분의 어머니는 시중꾼들에게 말하였다. ‘무엇이든지 그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대로 하시오’ 그런데 그곳에는 물을 담는 돌 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그 항아리들은 각각 두세 동이를 담을 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항아리를 물로 채우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가나에서 처음으로 표징을 행하셨다. 그리하여 제지들은 그분을 믿었다.”

표징출전 속에 들어있던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을 옮겨 쓰면서 요한이 4절을 가필함으로 말미암아, 본디 자연스러웠더니 이야기가 매우 부자연스럽게 변질되었다. “부인,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4절)라는 말씀의 세 가지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 아울러 요한이 11절에 덧붙인 첨언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도 유의해 마땅하다.

ㄱ) 이스라엘에서든 지중해 문화권에서든 아들이 친어머니를 보고 부인이라고 부르는 법은 없다. 그러니 자구적으로 본다면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망언이다. 그렇지만 4절의 ‘부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게 신약학계의 통설이다(R. E. Brown, R.Schnackenburg, J. Gnika, X. Leon Dufour 등). 그러니만큼 예수께서 어머니더러 하신 말씀 같지만 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인 것이다. 예수께서 죽음과 부활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시간이 되기 전에, 이스라엘이 예수께 구원을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 들어 있다.

ㄴ)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의 일이요,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말씀이다(2열왕 3,13; 호세 14,8). 정나미가 뚝 덜어지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초월적인 분이시라 영적인 차원에서 처신하시는 반면, 이스라엘은 땅에 붙어사는 백성이라 육적인 차원에서 처신하는 까닭에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장차 죽음과 부활로써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를 생각하시는데, 이스라엘은 당장 포도주를 구할 생각만 한다. 초자연적 예수님과 역사적 이스라엘이 서로 말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제각기 차원이 달라서 사실은 서로 통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기에 요한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심오한 뜻으로 말씀하신 것을 이스라엘이 피상적으로 알아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한복음서에는 이른바 오해양식 또는 곡해양식에 해당하는 단락이 열 번도 넘는다(2,19-22; 3,3-5; 4,10-15.31-34; 6,32-35.41-42.51-53; 7,33-36; 8,21-22.31-33.51-53.56-58).

ㄷ) “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님의 비극적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을 하나로 합쳐서 하나의 영광스러운 사건으로 간주하고, 죽음과 부활의 때를 일컬어 ‘예수님의 시간’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시간이란 죽으시고 부활하실 시간이요, 성부께로 옮겨가실 시간이며(13,1), 영광을 누리실 시간이다(12,23; 17,1). 이런 까닭에 “아직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씀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부께로 옮겨 가시어 영광을 누리실 시간, 그 구원의 시간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시간이 되면 그분은 당신의 어머니(이스라엘)를 애제자(교회)의 어머니로 선언하실 것이다(요한 19,26).

ㄹ) 예수께서 갈릴래아 가나에서 처음으로 표징(기적)을 행하신 사실을 요한복음 저자는 풀이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11절)고 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으로서 당신의 신적인 능력을 처음으로 보여 주셨다는 뜻이다.

카. “부인, 보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요한 19,25-27)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도 애제자도 십자가 아래 없었다. 그러나 요한복음 저자는 성모님과 애제자가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의 임종을 지켜보았다고 써 놓았다(19,25-27). 2,4에서는 예수께서 당신의 시간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모님의 청을 거절하시듯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옮겨 가야 할 당신의 시간이 온 것을 아시고”(13,1) 십자가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애제자의 어머니가 되는 지위를 부여하신다. 이스라엘(성모님)은 교회(애제자)를 아들처럼 아끼고, 교회 또한 이스라엘을 어머니처럼 섬겨 마땅하다는 것이다(장상, ‘요한복음에 나타난 여성의 역할’, 신학사상 67집, 1989 겨울, 861-862쪽 참조).

2. 교의신학적 고찰

1)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 Santa Maria di Siponto, Manfredonia, Foggia, Apulia, Italy
성모님께 드린 지극한 존칭은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직역하면 ‘하느님을 낳으신 분’)이다. 독일 교부학자 알타너에 따르면 이 존칭은 알렉산드리아 신학파에서 유래했다. 문헌상으로는 로마에서 그리스어로 집필한 히플리투스(170년경-236년경),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신학을 익히고 지중해변 가이사리아에서 활약한 오리게네스(185년경-254년경)의 작품들에서 처음으로 나온다.

4세기에 이르면 이 존칭이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동방교회에 널리 퍼졌다. 알렉산드리아 신학파 신학자들 가운데서는 알렉산드로스(+328), 아타나시우스(+373), 소경 디디무스(+398년경)가 이 존칭을 썼으며, 팔레스티나 신학자들 가운데는 시리아 속주 라오디게이아의 주교 아폴리나리우스(+390년경), 다르소의 주교 디오도투스(+394년경)가 이 존칭을 썼으며, 갑바도기아 신학자들 가운데는 가이사리아의 주교 바실리우스(+379), 나지안조의 주교 그레고리우스(+389), 니싸의 주교 그레고리우스(+394)가 존칭을 썼다(Laurentin, 145-146).

이와는 달리 안티오키아 신학파의 신학자 다수는 이 존칭을 달가와 하지 않았다. 이 신학파에 속한 네스토리우스는 이 존칭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여 큰 물의를 일으켰다. 그 경위는 대충 이렇다.

네스토리우스는 시리아에서 수도회에 입회하여 신학을 공부한 다음 명 설교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의 총애를 받아 428년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로 발탁되었다. 그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존칭 대신 그리스도의 어머니(크리스토코스; 직역하면 ‘그리스도를 낳으신 분’)라는 존칭을 쓰자고 설교하곤 하였다. 그의 논리인즉, 성모께서 오직 인간 예수만을 낳으셨으니 인간 예수의 어머니는 될지언정, 절대로 신 예수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네스토리우스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는 안티오키아 신학파의 기독론을 따라 위와 같은 주장을 했던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치릴루스는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을 전해 듣고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치릴루스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이 한 위격으로 합치(henosis kath' hypostasin)되었다는 알렉산드리아 신학파의 기독론을 따랐던 것이다. 마리아께서 비록 예수의 인성만 낳으셨을지라도 예수의 인성과 신성은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한 위격으로 결합된 까닭에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도 되신다는 것이었다.

양대 신학파가 대결하자 동로마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430년 11월 19일자로 에페소 공의회 소집 공한을 지중해 주교들에게 발송했다. 431년 6월 22일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치릴루스와 에페소의 주교 멤논이 주축이 되어 공의회를 개최하고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함과 아울러 네스토리우스를 단죄하였다. 이들은 로마 사절단과 네스토리우스에게 호의적인 시리아 주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서둘러 위와 같이 의결하고 주교 197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에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요한과 시리아 주교단은 뒤늦게 에페소에 도착하여 자기네에게 동조하는 주교들과 함께 50여 명이 6월 26일 따로 공의회를 열고 치릴루스와 멤논을 단죄했다.

6월말경 황제는 명을 내려 모든 주교들이 참석하여 새로 공의회를 열도록 했다. 그러나 치릴루스 일당과 로마 사절 3명은 7월 17일 제5차 회의에서 요한과 그 동조자들의 출교를 의결했다. 이처럼 서로 싸우자 9월에 황제는 양편을 콘스탄티노플 맞은편 칼케톤으로 불러 친히 화해를 종용했으나 성과가 없어 공의회 폐회를 선언하고 네스트리우스를 직위 해제했다. 네스트리우스는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한동안 지내다가, 436년 이집트 남부로 유배가서 451년경 거기서 죽었다.

2) 평생 동정이신 성모님

마리아 평생 동정 신앙은 문헌상으로 150년경에 씌어진 “야고버의 원복음서”에 처음으로 나온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으신 다음에도 종신토록 동정으로 사셨다고 본 교부들을 열거하면 오리게네스(185년경- 254년경),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베드로 1세(311년 순교)와 아타나시우스(296년경-373), 키프로스의 실라미스 주교 에피파니우스(315년경-403), 힙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노(354-430 등이다.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평생 동정녀이신 마리아”라는 표현을 썼다(D 422.427).

3) 가없이 거룩하고 원죄조차 없으신 성모님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마리아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으시다고 교의를 확정한 데 이어(D833), 1854년 12월 8일에는 비오 9세 교황이 성모무염시태 교의를 선포했다(D 1641).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모무염시태 교리를 배척한다.

4) 영육으로 승천하신 성모님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승천 교의를 선포했는데 선포문은 이렇다. “원죄 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이승의 삶을 마치신 다음 영혼 육신 모두 하늘의 영광으로 들려지셨다”(D 2333). 동방 정교회에서는 이 교리도 배척한다.

5) 인류를 위한 중재자요 전구자이신 성모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4년 11월 21일자로 반포한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8장 성모님은 인류를 위한 중재자시오 전구자이심을 강조했다(58, 60, 62, 69항).

3. 해석학적 반성

▲ Czarna Madonna, Częstochowa, Silesia, Poland.
가톨릭 교회는 위에서 약술한 마리아 교리를 만들었다. 마리아는 원죄없이 잉태되시고 한평생 거룩한 동정녀로 사셨으며 마침내 부활 승천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비록 인간 예수를 낳으셨지만, 예수께서는 인성과 신성을 겸비한 분이시므로 하느님의 어머니시라는 것이다. 지중해 그리스도인들이 만든 저 교리들을 오늘 한반도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1) 신학적 성찰

마리아에 대한 역사적 정보는 지극히 빈약했다. 성모님에 대한 신앙적 언급은 선약성서에 제법 있으나 넉넉하지는 않다. 카톨릭 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교리를 만들었다. 마리아의 잉태부터 승천까지의 신앙 밑바탕에 깔린 논리는 이런 것 같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가장 가까운 분들이다. 따라서 ‘두 분은 팔자가 같아, 운명공동체다’라는 의식·무의식적 통찰에서 두 분의 일생을 같은 모양으로 꾸몄다고 생각된다. 결국 마리아 교리는 예수의 일생을 바탕 삼아 마리아의 일생을 가늠한 신앙 유추라 하겠다.

2) 종교적 성찰

아울러 신화의 영향도 고려할 일이다. 언젠가 안병무 선생이 사석에서 이르기를, 인류의 종교 대부분이 다신교이고 다신교에는 부드러운 여신들이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여신들에 대한 향수가 있는데 이게 마리아 신심으로 발전한 것 같다고 했는데 경청할 만한 말인 것 같다. 이를 뒷받침하는 생생한 사례로 에페소인들은 본디 아나톨리아 토속 여신 퀴벨레를 섬겼는데, 그리스인들이 도래하면서 그리스 여신 아르테미스를 극진히 받들었고,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자 마침내 성모 마리아를 높이 받들었다. 교우들이 다른 어느 신심 행사보다 성모의 밤을 반기는 까닭을 이런 데서 찾을 수 있겠다.

3) 바람직한 마리아론

가. 마리아의 실상에서 출발하자

마리아와 예수의 성모자 관계는 의기투합하기는 고사하고 서로 소원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고향을 등지고 직업을 팽개치고 가족 부양을 저버리고서 객지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친족과 함께 모처럼 아들을 찾아갔건만, 아들은 어머니와 친족을 반기기커녕, 혈연관계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신앙의 인연을 높이는 말을 하였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그런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마르 3,35).

어느 부인이 당신 어머니를 칭송하자 예수께서는 “오히려 복되도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고쳐 말했다(루카 11,28). 이처럼 마리아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어 여느 어머니들 못지않게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사도 1,14에 나오는 집성문이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면, 마리아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신 결과 아들이 종생한 다음 비로소 아들을 이해했다고 하겠다.

나. 루카의 성모관을 눈여겨 보자

신약 작가들 가운데서 성모 마리아를 두고 가장 많이, 그리고 골똘히 생각한 사람은 루카이다. 루카가 그린 성모 마리아상은 이렇다.

ㄱ) 마리아는 율법을 곧이곧대로 지킨 돈독한 이스라엘 부인이었다(2,21.22.23.24.39.41).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세속적으로는 못났지만 신심만은 탁월한 이들을 가리켜 아나빔(빈자들)이라고 했는데, 마리아는 오롯이 아나빔 영성대로 살았다(1,38.46-55; 2,7.8-20.24). 마리아야말로 아나빔 영성의 아름다운 꽃이다.

ㄴ)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조차도 믿었다(1,38.45). 당장 알아들을 수 없는 일이라도 함부로 속단하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사려 깊은 신앙인이었다(1,29; 2,19.51). 또한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뿐 아니라, 그대로 지키고 행동하는 신앙인 이었다(8,19-21; 11,27-28).

ㄷ) 사도 1,14을 전후문맥에 따라 유의해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창교 되는 현장에 성모 마리아가 있었다고 루가는 생각한 것 같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그리스도 신앙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창립 멤버인 셈이다. 아니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ㄹ) 이스라엘은 역사의 예수를 배척했고 신앙의 그리스도조차 거부했다. 예수와 교회를 다 배척했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두고 “당신의 영혼을 칼이 꿰뚫을 것입니다”라고 루카는 예언조로 말했다(루카 2,35). 그러니 마리아는 통고의 어머니(Mater dolorosa)이기도 하다.

정양모 신부

   
193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에서 유학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70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 가톨릭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지냈다. 2005년부터는 다석학회 회장을 맡아 다석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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