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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천국-불신지옥?>

닉네임
김수복
등록일
2010-09-04 14:45:36
조회수
9686
 

<예수천국-불신지옥?>


내 짧은 성서지식, 신학지식으로도,

‘예수천국-불신지옥’ 하고 외쳐대는

광신자들의 복음 설파를

그냥 봐주기 힘들다.

예수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예수를 불신하면

지옥 간다고 을러대면

그 사람들이 무서워서

예수 믿을게요, 할까?

삼년 동안 줄곧 예수를 따라다니고

예수와 함께 살던 열두 제자도

예수가 십자가 매달려 죽을 때까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고

예수가 잡히자 모두들 도망치고 말았는데,

그 제자들이 사람들 심리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무조건 예수를 믿으라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협박을 할 수 있는지,

예수는 모든 사람이 서로 아끼고 섬기면서

함께 사는 아버지의 나라가 어서 오도록

하려고 사회불의, 종교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십자가 사형을 당했다는데,

그 치욕스런 실패가 실은 영광스러운 승리였음을

부활로 증명해 보였다는데,

그런 예수를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믿으라고 하면 아무 소리 않고 믿겠는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 하지 말고

다음 문구 가운데 한 가지씩 선택해서

천주교, 개신교 모든 신자가 선거 후보

띠 두르듯 두르고 아무 소리 내지 말고

그냥 지나다니기면 해도 효과적인

복음 선포가 되지 않을까 수시로 생각했다.

아니면 리본으로라도 달고 다녀도

충분하리라 생각하곤 했다.


‘미움 지옥, 사랑 천국’

‘전쟁 지옥, 평화 천국’

‘독점 지옥, 나눔 천국’

‘경쟁 지옥, 협동 천국’

‘지배 지옥, 섬김 천국’

‘남북분단 지옥, 남북통일 천국’

‘흡수통일 지옥, 평화통일 천국’

‘언론통제 지옥, 언론자유 천국’

‘4대강 죽이기 지옥, 4대강 살리기 천국’


<교회, 예수의 마음을 지녀라> 

[교회는 누구인가]

 2010년 07월 07일 (수) 09:17:09 정중규  mugeoul@hanmail.net 


불교에서는 삼세불(三世佛), 곧 과거불(燃燈佛, Dipakara), 현재불(釋迦佛, Sakyamuni), 미래불(彌勒佛, Maitreya)을 모시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 선재설, 나사렛 사람 예수, 재림주와 같은 예수상에 비슷하게 대칭된다.


그리스도 선재설은 그분께서 한 처음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으로, 교부시대의 성삼론·그리스도론·구원론 등의 교의논쟁과 더불어 믿을 교리의 대부분은 이와 관련된 것이다. 그 다음은 이 땅에 사셨던 사람의 아들 예수로, 초대교회에선 그분의 삶 자체가 더없이 소중했기에 그 기억이 복음서도 낳았지만, 사도시대가 지나면서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의 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재림주 예수인데, 종말을 기다렸던 초대교회 때나 밀레니엄 시대처럼 종말론에 휩쓸리는 때를 제외하곤 주목받지 못한 예수상이다.


이 가운데 어디에 눈길을 주느냐에 따라 신앙과 삶에 담겨질 내용도 달라진다. 하느님의 아들이나 재림주라면 보다 내세지향적이 될 것이고, 사람의 아들이라면 아무래도 지금 여기의 삶을 보다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지난 2천년은 앞의 예수상이 압도적으로 신앙세계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와, 사람의 아들로 30여년 사셨던 갈릴래아 예수의 삶이 새롭게 조명받으며 부활하고 있다. 불교 선사들의 “과거불에 집착 말고 자기 안의 현재불을 찾아 지금 여기의 깨침을 구하라.”는 화두가 문뜩 연상되면서, 무척 반갑기만 하다.


우리는 <신학대전>에서보다, 그 시대의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사시다 돌아가신 그분의 삶과 마음에서 오히려 하느님을 만난다. 교회는 그 마음에서 태어났고, 그분 몸소 당신의 그 마음을 지닌 자, 곧 당신 마음에 두셨던 자들을 제자로 불러 모으자, 그것이 바로 교회가 되었다.


그분께서 지금도 교회 안에 그 마음이 살아 숨쉬기를 바라신다. 그 마음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 여기시는 까닭이다. 인간이 교회의 길인 것도 그분께서 그 마음으로 그 길을 온전히 걸으셨기 때문이다. 교회가 인간을 저버려선 안 되는 까닭도 당신 목숨을 내어놓을 만큼 온전히 사랑하신 그 마음이 그들 안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 길을 교회는 매순간 그리고 나날이 걸어가야 한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세상만이 아니라 교회공동체 구원을 위해서라도 취해야할 길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교회마저 시대의 흐름을 좇아 견고한 보수성(保守城)을 쌓아올리고 가난한 이들이 마음 편하게 어깨 펴고 들어갈 성문(城門)은 폐쇄된지 오래 전이다. 교회의 들판에선 예언적 외침이 들리지 않고 교회의 언덕에선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한국교회에서는 어느 시인의 슬픈 노래처럼 날마다 '서울의 예수'가 쫓겨나고 있다.


잃어버린 교회의 정신과 영혼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다시 마음이다. 예수의 그 마음, 가엾은 죄인들과 병자들을 향해 시도 때도 없이 즉시 열리셨던 측은지심의 그 마음, 그 마음을 다시 교회가 지녀야 한다. 똑똑한 머리가 아니라 착한 마음이다. 스승이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아픔의 이 세상을 온전히 껴안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교회의 생명력도 다시 살아나게 되리라. 과연 그분은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쳐주려 오셨다(전례헌장 5).


정중규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어둠 속에 갇힌 불꽃’(http://cafe.daum.net/bulkot ) 지기,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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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0-09-04 14:45:36 116.125.73.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