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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농성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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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등록일
2010-09-03 12:04:36
조회수
9847

태풍을 비웃다니!

새벽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태풍으로 딸네 아파트도 정전되었다며 걱정이 되어 전화 했단다. 마침 남편의 개강 준비 때문에 어젯밤에 집에 들어 왔던 길이었다. 텐트가 걱정이 되었지만 준비로 다시 시간이 지체 되었다. 여의도 농성텐트 앞 가판점 아주머니가 전화 해 주셨다. 텐트 몸체는 건재한데 주변이 엉망이니 빨리 나와 보란다. 부지런히 준비하여 길에 나갔다.

들은 대로 전철1호선은 끊기었고 택시 타려고 30여분을 기다렸지만 빈 택시가 없었다. 버스 타려고 조금조금 걸어서 부평역까지 도착했다. 차도는 버스 승용차 택시 등으로 꽉 차 있고 인도는 당황스런 사람으로 꽉차있다. 이미 승객이 만원인 버스들은 아예 문을 닫은 채 도로에 오도 가도 못하고 서있다. 전화 부스는 넘어져 길바닥에 누워있었다. 택시나 버스를 타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태풍으로 엉망이 되었을 농성텐트를 생각하니 난감했다. 남편이 집으로 도로 들어가거나 전철이 다닐 때까지 어디 찻집이라도 들어가 앉아있자고 했다.     

그보다  젊은 사람들은 어떤 판단을 할까 싶어 주위에 젊은 사람들이 전화하는 소리를 귀기우려 어 보았다. 누군가 ‘인천 전철은 다닌다는데’ 했다. 순간 ‘그렇지!’ 싶었다. 인천 전철을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방법을 미처 생각 못 했던 것이다.

역구내로 들어와 길에서 동동 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 나 딸에게 전화하여 방송사에 연락을 부탁했다.

인천전철 종점인 계양에서 김포공항철도로 다시 9호선으로 갈아타니 쾌적하게 올 수 있었다. 계양역에서 김포공항 철도로 갈아타며 밖을 내다보니 경인 운하를 넘어가는 다리를 받칠 아주 높게 만든 교각이 보였다. 팔당대교 옆에 새로 만드는 높은 교각과 같은 모습이다.  지난 주 부산과 김해를 다녀오면서 본  낙동강에서 파낸 뻘건 흙더미가 내던져진 처참한 낙동강가도 생각났다.   

그것을 보니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구나 싶었다. 오만한 토건자본이 자연 질서를  마음대로 파괴하면서 만든 '인재'구나. 그런데 갑자기 옆에 서 있던 잘 차린 젊은 여자가 유리창을 확 열어젖힌다.

순간 ‘태풍에 창문을 열다니’ 깜짝 놀라 창문을 바로 닫았다. 젊은 여자는 불쾌하고 못마땅한 시선을 내게 보낸다. 남편도 나이 먹으니 ‘이것저것 참견 하는군’하는 낯빛이다. 지구가 온난화 되며 우리나라도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어 가는데 정작 사회도 개인도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구나 싶었다.   

유학했던 대만은 8월말과 9월이면 태풍이 잦았다. 한번은 홍수와 태풍이 같이 왔다. 아침에 일어 나 보니 건물 2층까지 물에 잠겨 있고 급한 볼일 있는 사람들은 보트를 만들어 밖으로 나갔다. 물이 빠지고 일주일 정도를 기숙사에서 전기 없이 곤욕스럽게 지내기도 했다. 그 외에는 태풍예고가 있으면 건물 관리인들이 유리창 마다 모두 엑스자로 테이프를 부치고 외출을 삼갔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늘 나무가 뽑히고 흉물스러웠지만 최대로 안전을 대비하고 태풍과 정면충돌을 피했다.  

 우리처럼 태풍에 예고도, 또 그 대책도, 준비도 없는 상황이 벌어져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길바닥에서 몇 시간을 우왕좌왕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전화 부스가 넘어져 있고 나무가 송두리째 뽑혀 있는데도 사람들을 길거리에 다 나오게 해 모두 세워놓는 위험한 풍경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내가 이런저런 소리를 계속하자 남편이 처음에는 불쾌해하더니 9시가 넘자 결국 학교에 휴강하겠다고 전화를 했다.  

그래도 농성장에 도착하니 마박사는 넘어져 있고 텐트 한쪽지붕처럼 세워놓았던 스트로폼이 여기저기 날아가 있고 피켓이 바람에 찢겨진 것 외에는 텐트 몸체는 건재했다. 지난 3월 유선생님과 학생이 북경과 군대로 떠나기 전  하루 온종일 걸려 텐트를 리모델링 해 튼튼하게 만들어 준 덕분이다. 이리저리 하루 종일 걸려서야 정리가 끝났다.

 

 

 

작성일:2010-09-03 12:04:36 112.187.22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