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태의 추적! 공자(追跡! 孔子) - 10]

오늘날 크는 아이들에게 장래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여러 가지가 나올 것이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겠고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겠고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 어떤 조사에서도 결코 나오지 않을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성인(聖人)이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정말로 그런 소원을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부모는 아이가 어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병원에라도 데리고 가야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할 것이다. 꼭 아이들만이 아니라 청소년이나 청년에 이르러서도 그런 소원을 제시한다면 누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정신적 상황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고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기가 십상일 것이다.

이렇게 지금은 사라지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밖에 치부되지 않을 소원이 조선 중기의 율곡 선생에게는 모든 배우는 사람이 당연히 지향해야 할 생애의 목표였다. 그는 자신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입지장(立志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세워야 하니 반드시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하고 터럭만큼도 스스로를 작게 여겨 물러나 안이한 데에 몸을 맡길 생각을 말아야 한다.
(初學先須立志, 必以聖人自期, 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

불과 몇 백 년 전만 하더라고 무조건적 타당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주장되던 성인의 이상이 지금은 삶의 지평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저 세월이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졌으니 그에 따라 인간의 희망도 달라진 것 아니냐고 얼버무리고 넘어가기에는 심상치 않은 문제가 있다.

세상은 바야흐로 기능인을 원하고 있다. 산업현장 같은 곳에서는 사람은 단지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그에 맞추어 일정한 기능인으로 육성되고 스스로의 희망도 그에 맞추어 그려지고 있다. 앞서 말한 선생님도 소방관도 대통령도 일종의 기능인이다.

인간이 이렇게 되어서야 되겠는가 하는 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반성이 가장 먼저 나온 곳은 역시 인간을 육성하는 교육 현장이었다. 이른바 전인교육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전인교육은 “지 · 정 · 의(知情意)가 완전히 조화된 원만한 인격자를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다. 공리주의나 경제발전에만 치중하여 인간 생활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 실용적 지식만을 강조하는 현대 교육에 반기를 든 것이 전인교육이었다. 전인교육이 성인의 이상을 담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전체적인 삶 속에서 보다 균형 잡힌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는 이 이념에는 그런대로 볼트나 너트로 육성되고 있는 처참한 인간 현실을 넘어서려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범람 속에서 이젠 이 이념도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400년도 더 전에 율곡 선생이 제시한 성인의 이상이 어떻게 오늘날의 현실에 끼어들어 울림을 형성하고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것인지 막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인 반향을 낳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 버려져야 할 이유는 아닐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말하지도 않고 심지어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지만 성인의 이념은 인간의 이념 안에 살아있다. 어쩌면 이 불활성(不活性)의 이념이 숨죽이고 살아 있기에 아직 인간이라는 이념도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성인이라는 개념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공자가 아닐까 한다. 그리스도교, 그 중에서도 특히 천주교는 셀 수 없이 많은 성인을 양산하였지만 막상 예수를 성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지성의 세계에서 예수는 당연히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호메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현상은 유일신의 개념이 복수(複數)를 전제로 하고 있는 성인의 개념과 잘 부합하지 못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붓다의 경우는 복수 개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 자체의 종교적 특수성이 너무 강해서 역시 일반 개념으로서의 성인의 개념과 잘 공명하지 못 하는 측면이 있는 듯하다. 또 소크라테스는 성인이라는 개념보다는 철인이라는 개념에 더 어울린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안다는 문제가 너무 집중적으로 부각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공자는 유교의 비조로 되어 있지만 유교는 일반적인 종교의 개념에서 비켜서 있고 또 다른 종교나 학문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설정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를 성인으로 호칭하는 데에 별 위화감이 없는 것 같다. 또 그는 생존 시에 이미 자공(子貢) 등 일부 제자들로부터 성인으로 여겨지고 있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아마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한 세기 후에 태어난 맹자가 그를 성인으로 공식 선포한 것일 텐데 그것은 오늘날까지 그를 요지부동의 성인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공자 자신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자신을 성인으로 받아들였을까? 물론 어림없는 일이다. 논어에는 성인과 관련된 공자의 언급이 몇 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 단편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성인의 경지와 어짊의 단계라면 내가 어떻게 감히 이르렀겠느냐. 다만 그것을 추구함에 싫증을 내지 않고 사람을 가르침에 지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7/36

공자는 일관되게 자신이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강조하였다. 인류가 성인이라는 개념을 만든 이후 그 개념에 어쩌면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공자가 스스로는 이토록 손사래를 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여기에서 율곡 선생이 제기한 초학자의 입지(立志)를 다시 생각해 본다. 율곡은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한다(必以聖人自期)”고 했는데 이것이 실제에 있어서 어떤 모습을 가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그것이 막연한 소망이 되어 소위 엽등(躐等), 즉 순서를 뛰어넘는 외람된 일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성인에의 꿈이 단지 엽등의 과제로만 제시된다면 거기에서의 성인은 선생님이나 소방관이나 대통령과 다름없는 한 사람의 기능인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성인에게는 성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체험적인 요소도 없다. 나는 율곡 선생이 차마 그런 차원에서 성인에의 꿈을 제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자가 “그것(聖人)을 추구함에 싫증을 내지 않는다(爲之不厭)”고 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을 추구하는 자는 차라리 현실 속에서 스스로 본받을 만한 사람을 찾고 주시하며 본받아 가는 것, 그 과정에서 실망하는 경우에는 그 실망의 벽을 타고 오르며 스스로 또 한 단계의 방향을 개척해가는 부단한 ‘찾기’가 있을 뿐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세례자 요한을 주목하던 시절의 예수, 아라나 선인을 찾아가던 시절의 싯다르타, 길가는 세 사람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스승을 찾던 공자에서 우리는 그 찾기를 느낄 수 있다.

그 찾기의 요원한 끝에 어쩌면 성인의 이상이 가물거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결코 엽등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과정은 단지 본받고 비껴가면서 타고 오르는 저 재크의 콩나무처럼 한 발 한 발 자신의 길을 쉬지 않고 내딛어가는 가운데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름 위로 오르는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공자에게도 성인에의 꿈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그런 것이지 않았을까 한다. 또 율곡의 단호한 요구도 엽등이 아닌 그런 차원에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날 거친 잡초들이 무성한 가운데에 던져진 하나의 콩이 제대로 발아하여 하늘 높이 솟아오를 수 있을는지 의문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따지고 들면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것이다. 길이 따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의 발에게 다음 행보의 디딜 자리를 물으며 걷는, 순간순간의 무한한 정직성과 성실성 속에 어쩌면 성인의 꿈은 보이지 않게 잠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인은 자세이지 경지가 아니다. 경지로서의 성인은 어쩌면 영원한 이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공자가 스스로 성인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 것은 그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로서의 성인은 영원히 자신을 그 도상(途上)의 존재로 인식한다. 한순간도 “이르렀다”고 말할 수 없는 그 부단한 자세, 찾기 속에 비로소 우리가 그리고자 했던 성인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 아닐까? 공자는 바로 그런 자세에서 만고의 성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수태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 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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